첫 만남
초록 신호가 켜져도
매우 당당히 무시하고
밀고 들어오는
오토바이 부대를 어떻게 뚫고 길을 건너냐며
특히나
아이들과 생활하기에 너무 위험하지 않냐며
주변에서 걱정을 대신해 줬었다.
그렇다, '대신' 이다.
나에게는
전혀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아홉 살부터 열다섯 살까지
중국 선전과 광저우, 홍콩을 오가며
노하우를 자연스럽게 습득했다.
이런,
혹시
우리 아버지는 호찌민에서 살게 될 미래의 손주들을 위해 나를 미리 단련시켜 두신 걸까.
아이들 손을 잡고
무덤덤하게 길을 건너다녔더니
그들도 이젠 제법 익숙해진듯하다.
눈치게임에 비기너로 입장하였다.
처음에 아들은
빵빵거리는 경적 소리에
'여기 사람들 왜 이리 무서워.' 했다가
서로 알아서 피해 가며 움직이는 걸 보더니
한국의 오토바이들보다 오히려 더 친절하다고 한다.
아무리 그래도 오토바이는 오토바이다.
응급실 의사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사고가 오토바이 사고라고 하지 않던가.
그래서일까.
중국에서 살던 시절부터
아버지는 오토바이 뒤에 타는 건 절대 안 된다고 으름장을 놓으셨다.
세뇌가 되어
이 나이가 될 때까지 오토바이
또는
마초 미를 뽐내는 바이커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그랬던 내가
Vespa를 만나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