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량이 어떻게 되세요?

by 쿠쑝

그녀가 부모님 몰래 마셨던


첫 술은


레몬 맛 스미노프 아이스였다.


첫 입은 상큼하다가


씁쓸한 보드카에 끝맛이 느껴지는 칵테일인데


당시 홀로 외로운 유학 생활 중이어서 그랬는지


꽤 매력적인 맛으로 다가왔다.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던 유학생이었기에


여러 잔을 마셔야 하는 맥주는 사치였고


바다 건너 넘어온 소주나 막걸리는 감히 넘보지도 못했다.


어느 정도 술을 먹을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


그녀는 이미


보드카 칵테일 전문가였다.


싸구려 보드카에


그날그날 할인하는 마트용 과일주스는


환상적인 커플이었다.


달콤항 인공 과일향을 풍기며


금새 취하게 만들었기에


매우 실용적이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그녀는 여전히 그 흔한 맥주를 잘 못 마신다.


맥주에 찝찌름한 맛은 도통 적응하기 힘들다.


소주는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마시게 되었다.


한국 거래처 분들과 술자리를 갖게 되면서


매우 자연스럽게 소주와 각종 폭탄주를 맛보았다.


즐기자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사회생활 한답시고


열심히 받아 마셨기에


소주에 대해 좋은 기억이 별로 없다.


그런 자리에서 만나게 된


한국 사람들은


대게는


항상


"주량이 어떻게 되세요?" 라며 물어왔고


그녀는 매번 명쾌한 답변을 내놓지 못하였다.


몇 잔을 마실 수 있나 세워봐야지 해도


자리가 자리인지라


분위기 따라


건배 건배를 외치며 마시다 보면


세 잔 이후부터는 숫자가 헷갈렸다.


이게 네 잔 째인지


아까 받아 마신 게 네 잔 째인지


머리만 더 어지러운 느낌이었다.


소주보다 더 싫은 술은 중국 전통주 바이주 (白酒)다.


중국 출장에서 만난 업체들과 저녁 식사를 하게 되면


그리도 무서운 1:1 건배를 요청해 왔다.


다 함께 모였으니 즐겁게 첫 잔을 마시고


그다음부터는


각자 1:1로 한 잔씩 부딪치며 마시는 중국 술문화는 정말 공포스러웠다.


바이주 술잔이 소꿉장난용처럼 앙증맞은 이유가 다 있었던 것이다.


업체에서 세 분이 나왔다면


그녀는 무조건 네 잔은 마시게 되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사회 초년생 때에 그녀는


거절을 잘 못 했고


술잔을 요령껏 비우는 법도 잘 몰랐다.


재빨리 물로 잔을 채우는 법은


아주 먼 훗날


습득하게 되었다.


바이주를 마시는 날이면


호텔방 침대가 아니라 화장실 바닥에서 변기와 함께 자는 날이 많아


지금도 그녀는


바이주 향만 맡으면 정색을 한다.


사케도 소주, 바이주와 비슷한 종류여서 싫다.


그럼 위스키는 어떻냐고?


한 잔 두 잔 즐기자고 마시는 술과


영업을 위해


업체와 함께 마셔야 하는 자리라면


위스키 또한 최악이다.


하긴


그런 자리에서 마시기 좋은 술이 과연 있기는 할까.


위스키는 대부분 도수가 높아


얼음을 넣어도


금방 취한다.


그러면 술이 술을 마시게 되고


위스키 가격이 있다 보니


다른 종류에 술을 시키다 보면


짬뽕이 되어


최악에 시나리오를 맞이하게 된다.


그렇게 업계에서 십 년 정도 일하다가


육아로 일을 그만두었다.


더 이상


등 떠밀려 마실일이 없어졌다.


그녀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술을 선택하여


원하는 만큼 마실 수 있는


사치가 주어졌다.


이런 자유를 누리다


재취업을 하게 되었으니


고민이 되었다.


주량이 얼마나 된다고 답을 해야 할까.


아예 못 마신다고 할까.


그러다가


거짓말인 것이 들통나면 이미지만 더 나빠지지 않을까.


그렇다고


잘 마시지도 못한다.


몸이 예전 몸이 아니다.


나이도 먹었고


출산까지 했으니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다.


갈팡질팡하며


아직 답을 못 정하였는데


업체와에 첫 식사자리가 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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