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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기정 Jan 02. 2019

햄릿은 억울하다

우유부단의 대명사

셰익스피어 작품에서 가장 유명한 주인공은 아마 햄릿일 겁니다. 햄릿은 지성인의 대명사이면서 우유부단형 인간의 상징이기도 하지요. 지성인임에는 이론이 없지만 그가 우유부단형 인물로 스테레오 타입이 된 것은 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러시아의 문호 투르게네프가 돈키호테 형 인간과 햄릿형 인간을 처음으로 얘기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투르게네프는 햄릿을 우유부단한 인물의 전형으로 파악했다는 얘기인데, 단순 돌진형 인물 돈키호테와 대비시키기 위해 성격을 이분법으로 단순화한 것으로 보이지만, 어쩌면 그가 햄릿을 표피적으로만 이해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햄릿은 상당히 복합적인 성격을 가진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햄릿은 자기 삼촌이 부왕을 살해하고 왕위에 오른 것을 알고 복수를 해야 하는 덴마크의 왕자입니다. 그가 우유부단한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는 복수의 대상인 삼촌 클로디어스를 살해하겠다고 결심하고도 실행을 계속 지연시키기 때문입니다. 햄릿이 결심을 하고 첫 번째 기회가 왔을 때 칼을 찔러버렸으면 클로디어스 한 사람의 죽음으로 햄릿의 복수가 간단하게 완성되었을 텐데 결행을 하지 못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햄릿 자신과 어머니를 포함해서 모두 일곱 명이나 죽게 되는 대형 비극이 됩니다.   


햄릿이 복수를 결심하는 과정도 쉽지 않습니다. 아버지의 유령이 나타나서 클로디어스에 대한 복수를 부탁하기 때문에 시해를 알게 되는데, 유령의 말이 사실인지는 확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유령의 존재 자체를 의심하고 있었던 거지요. 사실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왕을 독살하는 연극을 어전에서 상연해서 클로디어스의 반응을 살피는 등 번거로운 과정을 거치는 것이 독자 입장에서는 약간 답답하기도 합니다. 연극 상연 중 클로디어스의 반응을 보고 그가 살해했다는 확신을 얻게 됩니다.  드디어 복수를 결심하고 햄릿이 기회를 노리는데 클로디어스가 기도하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햄릿은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지만 결행하지 못합니다.


지금이 기회다...

"하려면 지금, 기도를 하는 중.

자, 해치워버리자.

아니지, 그러면 천당에 가게 되지.

난 원수를 갚게 된다.

하지만 이건 생각해 볼 일,

아버지를 죽인 놈은 천하의 악당,

그 악당을 오직 하나 남은 자식인 내가

보복으로 천당에 보내준다?

그건 복수가 아니라 보은이지."


괴테는 햄릿의 실패를 유약한 성품으로, 니체는 허무주의로 설명했다고 하는데 세계적인 문호와 철학자의 설명이 설득력이 없어 보이는 건 저만의 생각일까요? 클로디어스는 햄릿이 자기 목숨을 노리고 있는 것을 알고 햄릿을 영국으로 추방시키려고 합니다. 햄릿의 동창 둘에게 호송을 맡기며 중간에 처형하도록 명하는 밀서를 보내는데 이를 눈치챈 햄릿은 밀서를 바꿔치기해서 그 두 친구가 살해되게 합니다. 친구지만 가차 없이 죽게  만드는 걸 보면 햄릿이 유약한 성품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러면 햄릿의 행동 지연의 이유가 무엇일까요? 지성의 특성이기도 한데 햄릿은 중요한 행동을 섣불리 하고 싶지 않았던 겁니다. 복잡한 인간의 고뇌 과정에서 햄릿은 몽상적이기는 하지만 완벽한 복수를 원했던 거지요. 완벽한 복수라는 게 있을 수 있는지는 모르지만 말입니다. 유령의 말만 믿고 복수를 결행하기는 어려웠기 때문에 확인 과정이 필요했던 것이고 원수를 천당에 보낼 수는 없다는 생각에, 보다 완벽한 기회를 얻기 위해 결행을 미루게 되고 나중에는 더 큰 비극으로 확대되는 원인이 됩니다. 이러한 복수의 행위에 대한 고뇌가 인간 존재에 관한  철학적 고뇌와 결합되어 햄릿이라는 작품을 이루는데, 햄릿은 오늘날의 지성인들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어서 유난히 사랑을 받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햄릿이 과연 우유부단하고 유약한 성품인지는 직접 작품을 읽어보고 판단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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