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내의 작은 파열음도 귀 기울일 것
팀원 두 사람이 갑자기 퇴사하겠다고 한다.
아침부터 뭔가 낌새가 이상했다. 느닷없이 울린 카톡은 나의 아침을 깨웠다. 항상 당당했던 말투는 어디로 간건지 문자인데도 우물쭈물한 모습이 보였다. 팀원이 갑자기 잠깐 할 얘기가 있다고 말하는 경우는 종종 있었지만 이런 느낌은 처음이었다. 평소에 회의하듯 마주 앉았지만 분위기는 달랐다. 멋쩍은 그들의 미소 사이로 흐르는 불편한 공기. 그들이 꺼낸 단 한마디는 너무 예상 밖의 이야기였다. (그날의 분위기에는 정말 어울리는 이야기였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돌이켜봐도 퇴사의 낌새는 전혀 없었다. 어제까지만해도 우린 그들이 맡은 프로젝트에 대해 이야기했었다. 회사에서 많은 기대를 걸고 있던 둘이었기에 그들의 결심은 더 충격적이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하나. 퇴사한다는 이야기는 여러 번 해봤어도 듣는 것은 처음이었다. 머릿속이 하얘진다. 정신 차리고 보니 마주 앉은 둘은 내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있었다. 겉도는 여러 얘기로 횡설수설하다 이유를 물으니 여러 가지 대답을 한다. 하지만 들리는 건 하나도 없다.
혹시 나 때문에 퇴사하는 걸까.
불안해진다. 들리지 않았던 대답 속에 나에 관한 건 하나도 없었지만, 대답을 채에 거르니 남은 건 나뿐이었다. 팀장이 퇴사의 이유인 경우는 두 가지다. 내가 회사를 못 다닐 정도의 괴로움을 주는 직접적인 원인이거나 곤란한 그들에게 적절한 도움을 주지 못해 결국 퇴사에 이르게 되는 간접적인 원인. 두 가지 모두 열려있었다. 이 회의실에서 이 퇴사 소식이 갑작스러운 건 나뿐일 것이다. 이들에겐 퇴사를 결심하고 다음 거처를 알아보는 지난한 시간이 있었을 테다. 전 직장에서 동료의 퇴사까지 과정을 생생히 지켜볼 때가 있었다. 여러가지 다양한 이유가 쌓이다가 결국엔 모든 것이 이유가 되어버려 퇴사까지 이어지는 걸 알고 있었다. 물론 나 또한 그랬고. 하지만 결심에는 항상 트리거가 있었다. 퇴사까지 가지 않아도 될 기회들이 있었단 것이다. 기억을 더듬어본다. 대체 어느 순간이 이들에게 결정적인 순간이었을까. 파열음이 분명 새어 나왔을 텐데 왜 듣지 못한 걸까.
본가에서 로봇청소기를 가져왔다. 동생 지인분이 쓰지 않아 주신 물건이었는데 딱히 똑똑하지도 않고 빠르지도 않아 본가에서도 거의 쓰지 않고 있었다. 마침 나는 청소기가 닿지 않는 침대 밑 먼지를 청소할 방법을 찾고 있었다. 로봇청소기의 높이는 그 정도의 틈엔 능숙하게 들어갈 법했다. 충전하고 한번 전원 버튼을 눌러봤다. 우우웅 소리를 내더니 앞으로 가기 시작했다. 열심히 앞에 놓인 먼지와 머리카락을 빨아들였다. 나는 바닥에 엎어져 얼굴을 땅에 대고 침대 밑으로 기어들어 간 로봇청소기를 지켜봤다. 으이구~ 그렇게 맛있어? 하는 표정이었을 것이다. 한번 청소하려면 반나절을 보내야 하는 침대 밑을 알아서 청소해주니 기특했다. 아이코! 앞으로 가던 로봇청소기가 기둥에 머리를 박았다. 박자마자 방향을 틀어 다시 전진한다. 앞에 달린 범퍼가 충격을 감지하면 방향을 트는 듯했다. 언제 박았냐는 듯이 또 열심히 먼지를 먹어댔다. 침대 밑 이곳저곳을 다니다 잠시 밖으로 로봇청소기가 나왔다. 어디서 묻어왔는지 먼지에 뭉친 머리카락을 앞에 달고 나왔다. 귀여운 녀석. 풀밭에서 뛰어놀다가 머리에 나뭇잎 달고 온 반려견을 대하듯 먼지를 떼어주었다.
그의 움직임은 단순해서 소리만 듣고도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 이건 전진하는 소리, 이건 방향을 바꾸는 소리, 이건 어딘가에 부딪힌 소리. 거실로 나와 소파에 걸터앉아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방에서 뭔가 더부룩한 소리가 계속해서 났다. 전진하는 소리지만 어딘가 공허했다. 방에 가보니 바닥에 깔려있어 센서가 감지하지 못하는 전선에 바퀴가 걸려 헛돌고 있었다. 이 친구를 집에 데려온 지 몇 시간도 안 됐는데 가슴이 아파 버린다. 살아있는 생명체도 아닌데 안쓰럽다. 그새 정이 들어버렸다. 미리 로봇청소기가 걸릴만한 부분들을 치워놨어야 했는데.. 결국 나버린 파열음이 내 무신경함을 나무랐다. 고장 나기 전에 로봇청소기를 들어 다시 넓은 곳으로 놓아주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추구하고, 자신들에게 더 맞는 일이 다른 회사에 있기 때문에 퇴사한다고 한다. 퇴사의 당연한 이유였다. 하지만 얼마전까지 미래를 함께 그렸고, 남게 된 사람으로서 마음이 복잡할 따름이다. 장애물을 미리 치워주지 못해 이탈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까지 와버린 나의 무신경함이 원망스러웠다. 사람이 모이면 파열음이 난다. 언제 날지는 모른다. 항상 귀를 기울여야 한다. 더 세심히 들어봐야 하는 건 원인이 어쩌면, 정말 나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불안은 나를 갉아먹는다. 하지만 다른 이의 퇴사가 나 때문은 아닐까 하는 불안은 다르다. 나를 돌아보게 만들고 내 평소를 바꾼다. 유일하게 긍정적인 불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