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공항에 거의 밤 10시 정도 도착 후, 이튿날 새벽에 다시 방콕으로 돌아와야 하는 비행이었다.
'방콕'외의 외국은 처음인 '나'... 게다가 '홍콩'이라니....
"별~들이 소~근대는 홍콩의 밤~ 거리" 이미 내 가슴은 두근두근이었다.
홍콩도착후, 카이탁 공항의 눈부신 야경을 뒤로하고, 우리는 공항 근처 승무원 지정 호텔로 갔다.
이미 시간은 거의 밤 11시.. 선배 태국 승무원 말에 의하면, 이 시간에 우리가 갈 곳은 호텔 근처 '세븐일레븐' 밖에 없다고 했다. 솔직이 당시 한국에는 '세븐일레븐'이라는 편의점도 없던 시절이라, 나는 뭔지도 모른 체 그저 고개만 끄덕거렸다. "좋아 좋아 ..무조건 좋아 !"라며.
단지, 이 비행 이후에 서울 비행이 있으므로, 무조건 가족 및 친구들에게 줄 괜찮은 '선물'을 찾아내야만 한다는 의무감만 창대했다.
세븐일레븐에 도착했고, 그제야 이런 편의점에서 과연 마땅한 '좋은선물'을 찾아낼 수 있으려나 의아해하며
'사냥개 모드'로 돌입했다.
그러던중, 아주 예쁜 색상과 디자인의 조그만 사각 상자를 발견했고, 난
"처음보는 초콜릿 같은데...포장이 독특하네!
홍콩 특산품인가?"
라는 마음으로 천천히 표지의 문구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동료 남자 승무원이 내 등을강하게 후려치더니,
"Hey!
What are you doing? Do you know what this is?"(야! 너 뭐 하니? 너 이게 뭔지 알아?") 라며 쩌렁쩌렁하게 소리를 지르는 게 아닌가?
순간, 주변에 있던 사람들 눈빛이 동시에 내게 꽂혔고, 나는 대역죄인 마냥 '바들바들'떨며
" I don't know. what is this? is this drug? (나 몰라! 도대체 이게 뭔데? 혹시 마약?)
이라고 거의 울듯이 대답했다.
그러자, 그는 "This is condom! Do you need this? (이거 콘돔이라는 거야!, 설마 너 이거 필요해?)
라고 하였다.
솔직이, 당시 나는 콘돔에 관한 한, 꽤 문외한이었다.
학교에서 받는 성교육도 생리정도에 대한 설명이 전부였지, 피임법에 대해 들은적도 없었고, 콘돔을 어디서 구입해야는지도 몰랐던게 사실이었다.
다만,
1989-1990 년경, '20세기 흑사병'이라 불리며, 전 세계를 뒤흔들었던 'AIDS' 때문에
항상!!! 언제나!! 무조건!!꼭!!
'콘돔'을 꼭 사용해야만 한다는 얘기를 여기저기서 들었던게 전부였다.
특히, "태국은 '성매매'가 공공연하게 제약없이 이루어지는 곳이니, 각별히 더 조심해라!"
"너 방콕산다고 AIDS 걸려오면 안된다" 라며 겁을 주는 사람도 많았다.
마치 'AIDS' 환자옆에 서있기만 해도
혹은 손잡고 키스만해도.... 병에 걸린다라고 생각할 정도로 매우 무지하던 시절이었다.
대충 들어는 본 단어였지만, 써본 적도 배워본 적도 아는바도 없을 뿐 아니라, 그 단어를 입에 담는 거 만으로도 큰 잘못을 저지른 거 마냥, 오들오들 떨기만 하였다.
이런 내 모습이 귀여운 건지 어이없는 건지, 동료 승무원들은 " be careful! (조심해!)을 외치며 게다가
저들끼리 히죽히죽 웃어대는데, 너무 부끄러워 죽을 것만 같았다.
잘못한 거도 없는데, 편의점 직원에게 "sorry sorry"를 남발하며 도망치듯 나온 기억이 있다.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