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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밍줌마 Aug 31. 2023

베이고.. 데이고.. 눈물나고..

그놈의 오이소박이 때문에...


요사이 남편이 먹는게 영 시원치가 않았다.

가뜩이나 입맛도 짧은데다, 당뇨도 있으니, 음식을 두루 조심해서 먹어야하는 사람이고..


꽤 무더운 여름탓인지?

정년이 얼마남지않은 60 가까운 나이이니 체력이 딸리는 건지?


여튼 점점 말라가는 형상이 애잔하기도 하다가도..

왜 남자들은 제몸하나 건사못하는지 짜증이 나기도 했다.


홀어미는 혼자 있어도 걱정 안하는데, 홀아비는 혼자 살면 괜히 걱정이 몰려오는 그런 심리라고나 할까?

남자들은 도대체 왜 혼자 제대로 잘 못하냐구!!!
.........ㅠㅠㅠㅠ





솔직히, 같이 맞벌이를 하면서도, 나는 회사일에 살림에 혹여 둘이 같이 쉬는 날에도 거의 내가 전적으로 모든 일을 도맡아 했었다.

두딸도 모든 문제나 상담거리는 내게 들고왔고, 그 일처리도 항상 내가 해야했다.

 

늘 남편밥상을 준비함에도 진정성있고 열성으로 하였다.

(이 부분은 남편도 몹시 고마워 하긴 한다. 물론 말로만, 그리고  속으로만..요즘은 그냥 당연하게..)


당뇨가 있으니, 좀더 신경을 써야했기도 했지만, 웬지 우리 연령대에서는 뭔가 남편을 조금 우대해서 신경써줘야 한다는..뭐..그런게 있었다.

어려서부터 어머니로부터 무의식적으로 배워온 전통적/보수적/가부장적 요소가 내속에 내재되었던 것일까?


이거슨.....분명!!!

요즘 젊은이들이 듣는다면, 팔짝팔짝 뛸.....

아니 내가 생각해봐도 말도 안되는거긴 하다.


솔직히 남자가 체력적으로 좀더 강한자들이고, 요즘처럼 똑같이 맞벌이하는 세상에서 50:50 은 아닐지언정,

60:40 이라도 살림을 짊어져야 하건만, 내삶의 그의 도움은 10-20% 정도가 고작이었다.

 


그는,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몹시 아팠던 서너번 빼고 내게 밥상을 차려준적이 평생 없었다.


물론, 아이들이 어렸을적 내가 회사에 출근한경우, 어쩔수 없이 본인이 할수밖에 없는 상황은 있었겠지만,

그건 내가 눈으로 안봐서 그런가... 진정으로 도움을 받았다는 느낌이 잘 와닿지가 않았다 .


단지, 주부 위주로 집 위치를 잡다보니, 그는 거의 2시간에 걸친 거리의 회사를 다녀야 했다는게 그를 배려해줘야 하는게 특별한 이유이긴 했다.


간호사처럼 교대무를 했던 나와달리, 그는 매일새벽 6시 반경이면, 집을 나서는 삶을 30여년째 하고 있었다.

지하철을 2번이나, 갈아타며 묵묵히 출근을 하고있는 그에게 차마 집안일마저 많이 시킬수는 없었다.

그냥 늘 쨘해보이기만 했었다.


그러다가도, 애들키우며 잠 못자고 힘들땐, 왜 이리 저질체력의 남편을 만나 나혼자 고생인가?라는 생각이 불쑥불쑥 들기도 했다




퇴직을 하고, 본격적인 가정주부가 되었으니, 가족의 건강을 우선 생각하고, 언제나 빨리 돌아오고픈

그들의 안락한 쉼터요 , SWEET HOME 을 만들어 주겠노라고 마음을 굳게 먹었었다.


지난, 27년간, 얼마나 그리웠을 엄마와 아내의 자리이었을까?


하지만, 코로나와 더불어 첫째는 취업준비, 둘째딸은 재수등을 겪으며, 돌아서면 반복되는 '돌밥돌밥'(돌아서면 밥, 돌아서면 밥)이 만만치가 않았다.


재수학원에서는 급식도 중지되어, 도시락까지 싸야했다.


남편의 당뇨식, 두딸의 가끔씩 요구되는 다이어트식, 그 와중에 오묘하게 꽤 다른 식성,,

아직까지도 매우 다른 3명의 아침/저녁 식사시간...

하루에 5-6번의 식사차리기, 설거지 장보기 등등 ... 어느새  3년여를 반복하다보니, 갱년기 예민감성이 추가되어 울컥울컥 하는 순간이 꽤 많았다.


과거 나에게, 딸이라고 너무 많은일을 시켰던 친정엄마가 싫었었다.

( 물론 옛날 그당시에는 삶이 너무 바빠 그랬겠지만..)


그래서 굳이 내딸들에게 집안일을 많이 시키고 싶지않았고, 엄마가 직장다니느라 충분히 못누렸을 '엄마의  의 사랑'을 더 채워주고 싶었고, 그렇게  내가 모두 감당하려고만 해서 힘들었을수도 있었다.




여튼저튼...본론으로 돌아가서...


이눔의 남편은 매우 채식파다.

단백질 결핍이 우려될 정도로, 고기를 안좋아한다.

고기러버인 나와는 여러모로 매우 매우 다른사람... (하,, 내 발등을 내가 찍었다.)


나날이 여위어가는 남편의 얼굴을 보며, 측은지심이 생겨 그가 매우 좋아하는 오이 소박이를 해보기로 했다.

그는 주로 겉절이를 좋아한다. 신김치는 매우 싫어하고 무조건 신선한 /FRESH 한 금방 무친 나물류를 좋아한다.


"아이고 내 팔자야!".  '부엌탈출'을 호시탐탐 노리는 나에게.. 그가 원하는건, 늘 부엌에서 무언가 부지런히 만들어야 하는 것들이다. (미워 죽겠다.. 증말..)



며칠 비가 많이 온탓인지, 오이값도 비쌌다.

5개정도를 6000원을 주고 샀다. 평소의 두배값이다.

아삭한 식감을 위해, 뜨거운 물에 소금을 타고 오이에 듬뿍 샤워시킨후, 양념준비를 위해

유튜브를 되돌려 보았다.



 

실은 최근, 눈독들이던, 야채 탈수기를 샀다.

여기엔 탈수기 외에도, 야채 채칼/슬라이서/야채 돌려깎기 기능등이 추가되어있어, 너무 마음에 들었다.


오이 소박이 만드는데 굳이 그 기능을 쓸일이 없었건만, 괜히 기능을 시험해보고싶어.. 양파를 슬라이서에 신나게 몇번 밀어보았다.


젠장!!

난 워낙에 칼에 잘 베이는 사람이라, 남들보다 더 조심해야 했건만, 결국 사태를 초래하고 말았다.





슬라이서는 매우매우 날렵했고, 3번정도의 컷팅으로는 괜찮을거 같은 양파 두께였건만, 각도를 잘못 틀었던 까닭인지 매우 날카롭고 기분나쁜 통증과 함께 내 엄지손가락은 피를 뿜어냈다.


하.......ㅠㅠㅠㅠ 내 일하는 꼬라지가 늘 이렇지뭐....ㅠㅠ


도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

덤벙대서 하도 자주 데이고 베이는지라.. 남편이 '베임방지 장갑'이라는 것도 사다줄 정도인데.. 그거 꺼내는거 조차 귀찮아서..이런 사태를 또 초래했다.


부리나케 수건을 둘러감고, 힘껏 비틀어 지혈을 해보았지만, 피가 멈출줄을 모른다.

수건이 벌써 발갛게 물들어간다.

피가 하도 많이 나오니, 괜히 빈혈 느낌마저도 강하게 느껴지고 웬지 서러운 감정에 가슴이 뜨거워진다.



"에휴.. 이 인간은 지땜에 내가 피흘리며 요리 하는걸 알기나 할까?"

 요사이 '부부싸움'을 하고 냉전인지라 그 얄미움이 더더 크게만 느껴진다.


내 생각에

상처가 깊다면 병원가서 꼬매기라도 해야지만,

아무래도 슬라이서에 베인거라  깊다기 보다는 그 면적이 넓은탓에 피가 많이 나오는거 같았다.


어수선한, 부엌을 그대로 두고, 일단 소파에 누워 피가 멈추기를 기다렸다.


불현듯 과거 '분리수거'하다가 손가락을 다쳤던일이 떠오르며  다시 가슴이 멜랑꼴리 해왔다.




당시, 울 아파트는 목요일 새벽6시-9시 사이에만 분리수거가 가능했다.


내가 새벽근무인날은 인천공항까지 새벽 5시반 까지 출근을 해야했다.

그러면 적어도 집에서 4시20분정도는 출발해야만 했다.


분리수거인날은, 새벽 3시 정도에 일어나, 경비 아저씨께 우리집의 특수상황을 양해받고 분리수거를 했다.

새벽 6시정도 일어나 출근해야하는 고단한 남편을 배려하는 내맘이었을까? 그냥 내가 좀더 부지런떨면 되는 일이라 생각하고 분리수거도 내가 했었다.


하루는 그속에 깨진 유리컵이 비닐속에 있는걸 모르고 버리다가 , 또 손가락을 깊이 베이는 사고가 발생했다.


솟아오르는 피를 앞치마에  꽁꽁 휘감고, 나머지 한손으로 분리수거를 마치고 엘리베이터를 탄후 깜짝 놀랐다. 피는 앞치마를 흠뻑 적시고도 모자라, 엘리베이터 바닥에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또 웬지모를 서글픔이 몰려왔지만, 굳이 자는 남편을 깨워 호들갑 떨고 싶지는 않았다.

너무도 곤히 자는 그를 손가락이 부러진것도 아닌데 깨울 생각도 못했고, 그가 일어난들 크게 도움될거도 없다고 생각되었다.


출근도 해야하므로,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다.

마른거즈와 솜으로 여러번 돌려감고, 강력한 3M 테이프로도 감고, 라텍스 장갑을끼고 샤워를 했다.

피는 계속 멈출줄 모르니, 결국 라텍스 장갑을 낀채로 출근길에 오른적도 있다.


어디, 베이기만 했던가?


출근전에 급히 요리를 하다가, 팔목등을 데이고도 출근을 하면서.. 그 화끈거림에 어쩔줄 모르고 서러워

출근버스안에서 내내 눈물났던 일까지 와라락 나를 덮쳐왔다.

  

베였다고, 데였다고.. 출근을 안할수는 없지 않은가 말이다.


     



뭔가 피 솟구침이 잠시 줄어들었다고 느껴진순간, 차마 쳐다보긴 무서우니, 다시 솜과 거즈로 손가락을 돌돌말고, 탄성밴드로 꽁꽁 싸맸다. 하도 감아서 뚱뚱해진 손가락은 고무장갑이 들어가기 조차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찌어찌 끼워넣어 불굴의 의지로 오이소박이를 다 만들고, 부엌정리까지 마쳤다.

제 아무리 다쳤다고, 이 상태로 가족들이 돌아올때까지 마냥 기다릴순 없으니 말이다.





가족방에 피흘리는 손가락 사진을 올려보았다.


혹여 놀랄까봐, 다소 피가 멈춘후, 상태가 심각하지 않은사진으로 올려봤다.



큰딸은 퇴근하며, 파상풍 약과 후시딘, 손가락 골무, 성능좋은 탄성밴드등을 사와 묵묵히 내 손가락을 잘 치료해줬다.


이 모습을 보던 남편.."헐 이렇게 많이 다쳤는데 병원 안간거야? 꼬매야 하는거 아냐?"


나는 대답했다.


"나 평생 이렇게 데이고 베이며 살았어! 그렇게 치열하게 살아서 오늘날의 우리가 있는거야!"

병원 안가도 시간이 걸리고 불편해서 그렇지, 결국은 다 아물것이니 걱정 붙들어 매슈!"

그러니 당분간은 당신이 설거지 좀 하시구랴!" 라고 외치며 일침을 가해 보았다.


그 와중에 저녁먹던 큰딸이 외친다.


"엄마! 오이 소박이 넘 맛있어. 팔아도 될거같아!" 라고 ..


"당연하지! 엄마의 귀한피가 같이 버무려졌을테니,, 영양가도 만점이라구!!!"


하... 이젠 진짜 조심해야겠다.

안그래도 오십견때문에 팔한쪽을 제대로 못쓰는데.. 엄지 손가락마저 붕대 감고 살려니..

하루하루 참 불편하도다.


  그나저나...

여전히 식성 다르고, 먹는시간 다르고,

조금만 소홀해도 야위어지며 건강을 상하는..

울집 애물단지들의 식사문제를 우째야할런지 고민이 깊다.


난 아무거나 먹어도, 대충 먹어도 건강히 잘만 사는데,, 그대들은 도대체 왜 그런가요?


난 언제까지 식사준비를 해야하나?

이제 집순이니 사표낼수도 없고 고민이 깊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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