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가까운 할머니가 이런 하소연을 한다면, 일반인들은 '잉? 뭔 소리야? 호호 할머니가 이렇게 외모에 집착한다고?" 하겠지만, 이제 나도 나이 먹어가는 중년여인이고 비슷한 고민을 하던 차라 가슴 가득 격렬하게 공감이 되었다.
진정, 나이는 숫자가 얹어지며 커져가는 것일뿐....
나도 가끔 20대 같은 감성으로 돌아가지는 경우가 꽤 있으니....
80 노모라고 어찌 그러지 않겠는가?
울엄마도 거울 보며 "맘은 40-50대인데,, 내 얼굴은 언제 이리되었나? 진정 내 얼굴인가?"
라는 생각이 들만도 할 것이다.
울엄마는 22살 어린 나이에 시집와서 첫아이로 나를 낳으신 까닭에... 내 주변 친구엄마들이란 비교해도 항상 젊고 이뻐 보이셨다. 친구들은 "야! 네 엄마는 엄마 아니고 꼭 '큰언니'같아! 울 엄마는 고생도 많이 하시고 내가 막내라 완전 할머니인데 너네 엄마는 말씀도 세련되게 하시고 너랑 '세대차이'도 없어 보이고... 아휴! 부럽다 부러워! " 이런 소리를 꽤 자주 듣곤 했다.
태생이 워낙 부지런한 엄마는 땡볕에서 과수원일을 하시면서도, 아직도 철저하게 선크림 바르시고..
각종 모자며 마스크로 얼굴 꽁꽁 돌려 감으시고 아무리 더워도 절대 얼굴을 노출하지 않으신다.
화장품에도 여간해서 돈을 아끼지 않으시고, 밤마다, 각종 마사지며 팩이며 얼굴 관리도 엄청 열심이시다.
(가끔 엄니가 화나거나 우울할 때 '콜드마사지' 해줄까?라고 하면 금세 웃으셨던 일도 생각난다.)
그리하야....., 여태껏 잘 버텨오신 건데, 이제 한계점에 다다른 걸까?
얼굴만 보면, 우울이 몰려온다며 도와달라고 구조 요청을 하시는 거였다.
"엄마! 그럼 서울 올라가서 강남 유명한 성형외과 가서 수술이든, 시술이든 해볼까?"라고 하니,
수술은 괜히 두렵기도 하고 너무 오버인 거 같으니, 제주 내에서 적당한 '시술'정도를 알아봐 달라는 거였다.
나의 손가락은 다시 바빠지기 시작했다.
'폭풍검색'끝에, 댓글 많고 많이 들어본 듯한 피부시술 전문 클리닉을 찾아냈고, 그 뒷날 엄마와 방문을 하게 되었다.
담당의사는 엄마를 보더니, 연세에 비해 얼굴이 깨끗한 편이고, 더구나 과수원일 하신다는 어르신이 어찌 이리
관리를 잘했냐며 칭찬까지 하셨다.
이에 우쭐해진 엄마는 "저는요, 아무리 덥고 힘들어도 결코 얼굴을 노출하지 않고 일해요. 울 남편이 진짜 독한 여자라고 해요!" 라며 틈새 자랑까지 하신다.
특별히 목주름 때문에 스트레스라는 엄니말에 의사는 '보톡스''필러'를 포함.'슈링크''더마톡신'서마지'등등
내게도 이름이 생소한 시술들을 해주기 시작했다.
그러나,,, 효과는 3개월 정도가 가장 좋을 뿐이니, 가능하면 1년에 3번 정도, 못해도 2번 정도는 오셔서 관리하시면, 노화를 조금이나마 늦출 수 있고 본인 정신건강에도 바람직하다.라고 하시는 거였다.
대략 150 여만원의 시술비를 들으신 엄마는 "아니, 3개월밖에 효과 없다면서 과연 해야 하니?"라며 망설이기 시작했다.
이에 나는
"엄마! 엄마가 지금부터 시술 시작해서 길게 잡아도 10년 정도인데, 뭘 망설이세요?
엄마가 명품옷/명품가방을 드는 것도 아니고, 평생 열심히 일해서 모은 돈 무덤에 가져갈 것도 아니고,
제발 자식들 줄생각 마시고, 본인을 위해 쓰세요. 자식들에게 주름관리에 돈대 달라는 것도 아닌데..
엄마가 엄마돈 쓰는 건데... 충분히 그럴 자격 있으세요!! 당당히 가슴 쫙 펴고 자주자주 하세요! 제발!"
이렇게 나는 몇 번이고 힘주어 외쳐드렸다.
나의 열열한 응원에 힘을 얻으신 엄마는 "OK"를 외치며 시술을 시작하셨고..
"너도 하나 골라서 해라! 내가 쏠게!"라고 하시는 거였다.
마침 우리를 상담해 주었던 상담실장의 얼굴이 깐 달걀처럼 빛나던 것을 떠 울린 나는, 냉큼 그녀에게 달려가 그 시술의 이름을 알아내고 엄니 맘이 바뀌기 전에 (ㅎㅎㅎ)... 덩달아 혜택을 볼 수가 있었다.
시술을 마치고 돌아오며, 엄니는 "딸이 있으니까 이런 도움도 받고 너무 행복하다! 아무리 돈이 있는들 어찌 내가 병원 검색하고 찾아다니며 이런 시술을 받을 수 있겠니? 이런 얘긴 아들에게도 며느리에게도 못해! 딸이 있어서 너무 좋다!"며 칭찬을 멈추지 않으셨다.
집에 돌아온 엄니는 아버지에게 "나 예뻐질라고 주사 맞고 왔다!"며 계속 자랑을 하셨다.
이에 아버지는 "잘했어 잘했어!! 여자는 평생 관리해야 해! 부지런한 여자가 이뻐지는 거야!"
그리고 네 엄마는 그럴 자격 있어!"라며 한술 더 떠가며 칭찬을 하셨다.
(하..... 울 집에 같이 사는 훨씬 젊은 울 남편보다 친정아버지가 더 세련되었다.
울 남편은 이런 거 이해 못 하는 이상한 사람 ㅠㅠ)
시간이 지날수록, 시술의 효과는 슬슬 나타나기 시작했고, 엄마의 외출 횟수는 점점 증가하기 시작했다.
"얘야! 나 오늘 중학교 동창들 만나고 돌아왔는데 다들 내게 젊어졌다며 부러워하더라.. 근데 나 시술받은 거 얘기 안 했어.. 알고 보니 걔들도 다 정기적으로 하면서도 얘기 안 하고 살더라고!" 호호호....
그렇게 다시 7개월 정도 지나가는 지난 10월 초... 엄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얘야! 자꾸 그 병원에서 추석세일 한다고 문자가 와서 오늘 다녀왔어! 마침 얼굴도 다시 엉망이 되어가고..
한번 해보니 마약처럼, 자꾸 하게 되는 거 같아..."
"아유... 너무너무 잘하셨어요... 돈을 들여도 해결 못하는 문제 아니고, 해결 가능하고 잠시라도 엄마가 행복하다면 가치 있는 거예요! 제발... 열번 아니...백번 하세요!"라고 나는 마구마구 응원해 드렸다.ㅎㅎㅎ
그... 런.... 데....
이제 내가 걱정이다.
지난, 몇 개월 엄마의 선물로 잠시 '빛'을 내었던 내 얼굴도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엉엉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