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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밍줌마 Oct 25. 2023

'92세' 시아버지와의 데이트

'가요무대'보러 여의도 방송국에 다녀왔다.


아들만 3형제인집에 시집간  나는 막내며느리이다.


10여 년 전, 시어머니 돌아가시고, 92세 시아버지 홀로 인천에 사시는데, 아직까진 매우 건강하시다.


시아버지 집안은 병에 대한 나쁜 가족력도 없으시고 워낙 건강체질이시라, 90세 가까운 형제 남매분들 모두 건강하게 장수하신다.


체질도 건강하시지만, 건강식품에도 워낙 관심이 많아, 신문에서건 홈쇼핑에서건 맘에 드는 건강식품은 과하다 싶을 정도로 구입하셔서 방안 가득 보약이 늘 쌓여있다.


운동포함, 건강관리를 스스로 너무너무 잘하신다.


주중에는 날마다 요양보호사가 오셔서, 웬만한 살림과 식사준비도 해주시니 꽤 무난하게 노후를 보내시는 편이다.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워낙 건강하시고 온전하시니, 오히려 심심하다며 자식들에게 어디 놀러 가자고 보채신다.


외국사는 장남 빼고 나머지 둘째 셋째 아들이 주말마다 아버님 모시고 나들이 갈 계획 짜느라 언제나 분주하다.


아무리 봐도 참 효자들이다.




솔직히 며느리로서는, 홀로 된 시아버지 모시고  같이 시간을 보낸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홀로 된 시어머니보다 시아버지가 꽤 맘에 부담이 되는 게 현실이요 ,fact  다.


그래서...

시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그 부담을 행여 껴안을까 봐 꽤 겁을 먹었는데, 시아버지는 의외로 너무 잘 지내시는 거였다.


"혼자 외롭고 고생스럽지 않으시냐?" 여쭤보니,,,,

" 평생, 늘 아파서 누워계셨던 시어머니 간호하느라 과거에 더 많이 힘들었고  솔직히 육체적으로는 편해졌다!"라고 까지 하시는 거다.

   


 한때는, 온몸이 아파 거동을 못하시겠고, 외로워서 혼지 살기 싫다며, 아들들하고 무조건  같이 살겠다고 '선전포고'를 하신 적도 있었다.


당시, 둘째 동서도 나도 직장을 다니던 상황이었고,,,,,

아니, 직장문제가  아니더라도 시아버지를 모시고 살 거라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기에 꽤나 충격이었다.


갑자기 아이처럼 변해 울부짖는 시아버지를 어쩌지 못해 두아들 집에서  10일씩 번갈아가며 모셨다.


하지만, 아들이나 며느리나 모두 직장 나가고 없는 집안에 홀로 머무셨던 시아버지는 이마저도 당연히 만족스럽지 않아 하셨다.


무지하게 부담스럽고 불편한 상황이었지만... 아프고 외로우신 분이라 생각하여....

 '측은지심'에 지극정성 모셔드리니,,,,


"얘야! 난 너하고 같이 살고 싶다! "라고 까지 내게 어필하시는 거다.

그때의 충격이란......ㅠㅠㅠ


그말을 들은후부터 시아버지께 너무 친절해도 안되겠구나!!라는 뾰족하고 못된 생각도 했던게 사실이다.



둘째 며느리인들 어찌 아니겠는가?


 게다가 우리는   며느리도 아닌데...

많은 재산 물려받고 도피하듯 떠나버린 큰집이 야속했다.

외국 계신다고 우리가 모두 떠안게 되는 이 상황이 억울하고 답답했다.


의논 끝에 시설 좋은 '실버타운'을 보여드리며 가시자고 설득해 봐도, 그 연령대 어르신들은 그건 자식들에게서 버림받은 상황이라고 굳게 믿으시며 거절하시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결국, 사람 불러 집안 인테리어  조금 바꾸고 대청소 해드리고, 요양사가 집에 와서 살림을 도와드리는 조건으로 그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대신 "나 외롭지 않게 주말마다 항상 방문하고 여기저기 좋은데 데리고 다녀라!"라는 엄명(?)이 떨어졌다.


그래서, 착한 두 아들은 주말마다 여기저기 드라이브, 맛집탐방, 각종 박물관, 전시회, 시골장터 방문계획을 짜느라 무지하게 바쁘시다.

그렇다고, 며느리들에게 동행할 것을  '강요'하거나 그런 것은 절대 없다.

감사한 일이다.


건강하신 시아버지는 "서울 어느 역, 몇번 출구로 몇시까지 오셔요!" 하면 한치 오차 없이 오히려 늘 일찍

신나고 생기 넘치는 모습으로 달려오신다.


일주일 내내 아들들 볼 생각에, 그리고 외출할 생각에 주말만 애타게 기다리시는 것 같았다.


그리고 말씀하신다.

"내 친구들은 모두 죽었거나, 거동을 못하거나 다 그런 상태야! 나처럼 멀쩡한 사람은 없어!

그러니 내가 얼마나 외롭고 심심하겠어? 그래서 난 놀러 가는 주말만 기다리는 거야!"


 



 혼자 계실 때면 유튜브로 음악을 즐겨 듣는 시아버지를 위해 남편이 '가요무대' 방청 신청을 했다고 했다.


세 번이나, 사연을 보낸 끝에 당첨되었고, 4장의 방청권을 받았으니, 시아버지/둘째 형/남편/나 이렇게 같이 가자는 거였다.


여의도 방송국이 울 집에서 가깝기도 하거니와, 굳이 거절하기도 그래서 지난주 다녀왔다.


오후 7시부터 방청시작이었지만, 미리 만나 저녁식사도 하고 여유 있게 가자며, 두 형제는 회사에서 조퇴까지 하였다.


모처럼의 방송국 나들이라, 나도 오랜만에 화장도 좀 진하게 하고, 안 입던 정장도 꺼내 꽃단장을 해봤다.




만나기로 한, 샛강역 2번 출구로 나가보니, 시아버지가 가장 먼저 도착해 계셨다.

한껏 꾸민 나를 보시더니, 얼굴에 환한 미소가 마구마구 피어난다.


시커먼 아들들하고만 다니시다 며느리를 보니, 더 반가우신 건지 평소보다 나를 더 열렬히 반기셨다.

목소리도 한층 더 톤이 올라가시고, 잘 왔다며, 반갑다며..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모른다.

   

두 아들이 도착하고, 치아가 좋지 않은 시아버지를 고려해 근처 생선구이 집으로 가서 저녁식사를 했다.




방청입장을 위해 KBS 별관으로 들어섰고, 나이 지긋한 일반 방청객들이 꽤 많이 줄 서있는 것을 보았다.


우리 네 명은 사연에 당첨된 가족이었으므로, 앞줄 가운데 매우 훌륭한 VIP 관람석으로 배정되었다.





가수 '진성'을 필두로 조항조/ 양지은 /김수찬 (내가 아는 이름은 요정도) ...

그 외 잘 모르겠고 또 나이 있는 가수들이 화려한 무대의상으로 우리 눈을 즐겁게 하고 있었다.


방청객들이 꽤 연령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젊은 가수들이 훠어어얼씬 인기가 많았다.

젊은가수들 볼때마다 흥분하며 좋아하시던 할머니부대가 인상적이었다 ..ㅎㅎㅎ


울 남편도 '양지은 가수' 나왔을 때  실물이 너무 이쁘고 날씬하다며 넋 놓고 있다가 나한테 혼났다.

(너무 진지하게 몰입하여 쳐다보는 거  다 목격함!!)


이래저래 녹화 1시간은 금새 흘렀고, 흐뭇한 표정으로 열심히 손뼉 치며 즐기시는 시아버지를 보니 좋았다.



방청을 마치고 나오신 시아버지는

"난 VIP 명당 좋은 앞자리라, 가수들 얼굴 바로 코앞에서 보는 줄 알고 기대했더니, 집에서 TV로 보는 거보다

가수 얼굴이 더 안 보였어!  소리가 웅장하고 현장감은 있지만, TV 가 얼굴은 다 잘 보인다!"

며 아쉬웠던 말씀을 하셨다.


"네네 맞아요! 아버님!!  실은 저도 그 생각했답니다. 며느리랑 이렇게 여의도 방송국 데이트 한 거로 만족하기로 해요"

라고 나는 대답했다.




위 녹화방송은 10월 30일 월요일 '가요무대'로 방영된다 하오니, 혹여 매우 매우 심심하신 분들은

행여 방청석에서 우연히  비추일수도 있는 저를 한번 찾아보시는 건 어떠신지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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