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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밍줌마 Oct 31. 2023

"비행기 기내방송 중 나를 소개하신  기장님"

Good bye. RIP

1993년, 승무원 생활 3년 차... 일 때(얘기랍니다.)

여전히 나는 '방콕'을 베이스로 그곳에 거주하며 타국에서 외로운 '비행생활'을 하고 있었다.


한 달에 7-8회 서울비행을 오기도 했지만, 겨우 1박 2일 호텔에서 잠깐 잠이나 자고 다시 떠나야 하는..

그런 삶이었다.

비행이 어렵고 고된 게 아니라, 진짜 견디기 어려운 건 'homesick''향수병'이었다.


지금처럼 핸드폰으로 다 연결된  글로벌 IT 세상도 아니요, 한국에서 출국하며 '공항 서점'에서 급히

골라온 책 몇 권으로 향수병을 달래던 시절.... 한인타운에서 빌려온 드라마 녹화 비디오테이프를 보며

대리만족을 하고...날마다 바위같은 외로움이 온몸으로 파고들었다.


얼마나, 외로움이 강했는지.. 오히려 비행이 있는 날은 '한국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설렘에 묘하게 설레기까지 했다.


게다가 고향이 제주인 나는, 제 아무리 서울에 와도 부모님을 만날 수 있는 거도 아니었으니...

왜 그리 서럽고 심퉁만 났는지 모르겠다.





그러던, 어느 날 친했던 고향친구가 서귀포에서 결혼을 하니, 왔으면 좋겠다는 전갈이 왔다.

너무너무 가고 싶었던 나는, 급히 휴가를 냈고  직원용 비행기표도 구매했다.


그.. 런... 데...

이런 애타는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서울행 항공기가 만석이라는 거다.

'항공사 직원 티켓'은 거의 공짜이긴 하지만, '대기좌석'이라 이렇게 만석의 경우는 당연히 탑승이 거부된다.


당시, 여러 번 '직원티켓'으로 다녔어도, '탑승거부'당한 경험은  없던지라, 이 상황에 눈물이 터질 듯.. 멘붕이 되어 버렸다.


'울먹울먹'하는 나를 안스러이 보던 한 직원이, "잠시 후 기장이 이곳을 지나갈 테니, 기장에게 한번 자리를 부탁해 봐라. 비행기 칵핏(조종석)에 두어 자리 있는데, 직원승객에 한해서 태워줄 수 있다!"라고 넌지시 알려주는 거였다.


때마침, 인상 좋은 얼굴에 검정  선글라스 낀 기장이 지나갔고, 나는 친한 친구 결혼식에 꼭 참석해야 하니, 부디부디 나 좀 같이 데려가 달라고 읍소했다.


그렁그렁한 내 눈빛이 안쓰러웠는지, 기장님은  "OK"를 외쳤고, 나는 '칵핏'에 앉아 아름다운 하늘을 감상하며 서울까지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사실, 그 비좁은 '조종석'에 누군가가 있다는 건 꽤 불편한 일이고.. 거절할 수도 있는데.. "NO PROBLEM"을 외치며 웃어주시던 그 기장님이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당시, 기장님 가방에 '말보로' 한 보루가 꽂혀 있는 걸 보았고... 어떻게든 '감사함'을 표현하고 싶었던 나는..

기내 면세점에서 '말보로 두 보루'를  급히 사서 선물해 드렸다.(당시는 기내에서 담배 피우던 시절이었다 구용 ㅎㅎ )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좋아하시던 모습이 너무 좋았다.

(참고로 이병헌 OR 주윤발 배우와 비슷한 구강구조로.. 치아 30여개가 다 보이도록 활짝웃어 주는 분이셨다. ㅎㅎ)


  사사로운 대화를 이어가던 중 기장님은 "고향이 어디냐? 서울이냐? 고 물어보셨다.


이에 나는 내 고향은 아름다운 제주 ISLAND이며, 김포공항 도착 후 다시 국내선으로 갈아타야 한다고 대답했다.

그러니 이따 제주도 상공을 지나갈 때는 나 좀 낙하산 태워 내려달라며 맞받아  농담까지 해 보았다.


이런 내가 귀여우셨는지 기장님은 정말로 제주 상공을 지날즈음 나를  급히 불렀고...

"저기 너희 부모님이 손 흔드는 게 보이지 않냐며, 빨리 너도 손 흔들라고 장난스런 재촉도 하셨다.

 



그리고 몇 달 후,,,,


서울 비행이 있어, 비행기에 탔는데, 낯익은 그 얼굴... 위에 언급한 기장님이 내 등을 살짝 치시며 반가운 인사를 건네셨다.

이따, 서울 호텔 도착하면, 맛난 한국 음식 대접하겠다며, 나도 인사드렸고 그렇게 비행기는 서울을 향해 이륙하였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여러분들도 비행기 타시면 느끼겠지만, 가끔씩 기장님들이 하는 방송 멘트가  또박또박 잘 들리지도 않고..

겨우 "This is CAPTAIN speaking.. We flying over 33000 feet.... 블라블라.." 이후 거의 안 들림.....ㅎㅎ)

이런 경험이 많으실 거다.

그래서 우리 같은 한국 승무원들이 그걸 통역해서 정확한 발음으로 다시 방송하는 것이다.


여하튼, 이륙 후, 서울 도착하기 1시간 전쯤 갑자기 기장님이 계획에 없던 안내 방송을 하는 거였다.


" 승객 여러분! 우리는 지금 한국의 아름다운 섬 '제주 island '위를 비행하고 있습니다.

왼쪽에 앉으신 승객분들은  창가 아래를 보시면 눈에 쌓인 '한라산'을 보실 수 있습니다.

정말 정말 아름답습니다.

 지금 우리 비행기에는 'lovely korean air hostess  MS KIM'이 타이항공 승무원들과 같이 일하며 한국 손님들을 도와드리고 있습니다.  그녀의 고향도 '제주'라고 합니다.

그녀는 애국자이며, 우리 동료들도 같이 일하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사실, 실은 '한라산'도 내가  그때 알려드린 걸 기억하셨다가 언급하신 거였다.


당시, 위 방송을 제대로 꼼꼼히  다 들은  승객은 물론, 거의 없어 보였다.


그저 '방송 통역'을 위해 귀 기울여 들었던 나만이 그 세세한 내용을 아직도 다 기억할 정도로 선명히 들었고..

코끝이 시큰거렸다. 눈가도 촉촉해졌다.


지금도 잊지 못할 분 중에 한 분이시다.


(물론..통역방송에서는 내얘기는 빼고 한라산 얘기만 했어요 ㅎ)


실은 가끔씩 '페이스북'등을 통해 과거 친했던 태국 동료 소식을 여전히 접하곤 했다.


그런데.. 오늘..

우연히 그 기장님이 '췌장암'으로 갑자기 먼 곳으로 먼저 가셨음을 알게 되었다.


오랜 기간 연락을 주고받으며 살진 못했지만, 마치 내 식구 일인 거 마냥..

하루종일 가슴이 아파오고 있다.


 "기장님! 아직도 당신의 따스함을 기억합니다. 당신의 '기내방송'도 거의 100% 암송합니다.

너무너무 고마우셨던분... 이제야 인사드려 죄송합니다."


"부디 평안히 잠드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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