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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김 Aug 14. 2024

경쟁과 질투사이-드뷔시&라벨

환영해 나의 열등감-모리스 라벨


매력적인 리듬, 어딘지 모르게 유혹적인 멜로디로 유명한 Boléro의 주인공 모리스 라벨의 이야기입니다.

French composer Maurice Ravel (1875-1937).

20세기 초반 프랑스 음악계를 떠올릴 때, 모리스 라벨과 클로드 드뷔시는 항상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두 인물입니다. 이들은 동시대를 살았지만, 서로 다른 길을 걸으며 프랑스 음악에 깊은 흔적을 남겼습니다. 이 두 위대한 음악가는 친구이자 동료,  때로는 경쟁자, 때로는 서로의 거울로 존재했습니다. 그만큼 둘 사이에는 복잡 미묘한 감정이 뒤얽혀 있었습니다.


드뷔시와의 비교, 그리고 라벨의 방어

라벨은 자신의 음악이 드뷔시와 종종 비교되는 것을 마주하며 불편함을 느낍니다. 1906년, 라벨이 31살 즈음되던 해에 당대 활발히 활동했던 음악 비평가 '피에르 랄로'로부터 받은 편지에서 드뷔시가 피아노 음악의 새로운 경지를 열었다는 평가를 듣게 됩니다. 이에 대해 라벨은 랄로의 그런 찬사에 대해 의문을 제기합니다.



"선생님께서는 드뷔시가 매우 특별한 피아노 작법을 발명했다고 강조하셨습니다. 그런데 Jeux d'eau는 1902년 초에 출판되었고, 당시에는 드뷔시의 Pour le piano 세 곡 외에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작품들에  대해 깊이 감탄하고 있다는 점을 더 말씀드릴 것도 없지요. 그런데 순전히 피아노 작법의 관점에서 보면 이 곡들은 새로운 것은 아니었어요. 참고로, Menuet antique (라벨이 1895년 작곡, 1898년 출판)를 언급하고 싶습니다. 이 작품에서 이미 이러한 시도를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정당한 주장에 대해 양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라벨은 비평가 랄로의 드뷔시에 대한 칭찬에 그만 기분이 상해버린 것이지요. 드뷔시가 특별한 피아노 작곡법을 발명했다는 사실을 그는 정면으로 반박합니다. 이미 앞서 발표된 자신의 작품을 예로 들며 말입니다. 드뷔시보다 약 7년 앞서 발표한 자신의 작품 <고풍스러운 미뉴엣>에서 먼저 그러한 창의적이고 새로운 시도를 볼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며, 라벨 자신 또한 독자적인 음악적 길을 걸어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드뷔시와 라벨은 서로 상당히 가까운 선후배 사이로 알려져 있지만 한편으로는 약 10여 년 뒤에 등장한 후배로서 라벨은 드뷔시를 향해 여러모로 복잡한 감정을 가졌습니다.  제 아무리 노력해도 늘 드뷔시와 비교되는 것을 은근히 꺼려했던 모습이 보입니다.


피에르 랄로의 반박- "라벨은 비난받지 않았지만, 스스로를 변호하고 있다"

이렇게 내심 마음이 상한 라벨을 향해 피에르 랄로는 (어쩌면 지나치게) 솔직한 지적으로 라벨을 자극하는데, 라벨의 편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회신합니다.  


"라벨 선생은 비난받지도 않았으면서 자신을 변호하고 있습니다. 제가 드뷔시의 작품 Jeux d'eau에 나타난 피아노 작법의 혁신에 대해 논할 때 라벨의 음악과 연계를 짓지도 않았습니다."

 

라벨은 그저 자신의 음악적 길이 드뷔시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받고 싶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랄로는 라벨이 그 과정에서 필요 이상으로 자신의 입장을 변호하려 했다고 느낀 것입니다. 차라리 무대응으로 반응했더라면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속내는 들키지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사실 라벨의 이러한 약간의 의문을 던지기는 합니다. 그가 드뷔시에 대한 미묘한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는지, 혹은 단순히 자신의 독창성을 지키려 했던 것인지 궁금해집니다.


라벨의 독창성과 위대한 작품들

라벨의 드뷔시와의 비교에서 비롯된 이 복잡한 감정은 단순한 질투 혹은 경쟁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감정은 라벨을 더욱 창의적으로 자극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드뷔시의 그림자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만의 독창적인 음악적 스타일을 더욱 발전시키고자 노력했고, 이 과정에서 탄생한 작품 가운데 <다프니스와 클로에> 그리고 그 유명한 <볼레로>가 있습니다.


프랑수아-루이 프랑세, 다프니스와 클로에가 있는 풍경 (세부), 1872년



1941년 라벨 작품 볼레로의 성공적인 개최를 알리는 신문기사

1941년 12월 31일에 있었던 공연에서 세르게 리파르가 모리스 라벨의 "볼레로"를 바탕으로 안무한 발레가 상연되었다. 위 신문 기사에는 이 공연이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작품의 중요성과 라벨의 음악적 유산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 두 작품 모두 정교한 오케스트라 악기 편성과 혁신적인 리듬이 돋보입니다. 라벨이 자신의 음악적 아이덴티티를 얼마나 고심하며 구축해 나갔는지를 보여줍니다. 드뷔시와 달리, 더 강렬하고 극적인 색채를 부여했으며, 그의 독창성을 분명하게 드러냅니다.

하지만 그 정점에 선 작품은 바로 이야기의 서두 등장했던 그 유명한 <볼레로>입니다. 이 곡은 라벨의 창의성이 극에 달한 작품으로, 반복되는 단순한 리듬과 선율이 오케스트라의 다양한 악기들과 결합하여 점차적으로 고조되는 긴장감을 만들어냅니다.


<볼레로>는 라벨이 드뷔시와의 비교에서 완전히 벗어나, 자신의 음악적 세계를 확고히 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곡입니다. 라벨은 이 작품을 통해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확립했고, 그 결과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클래식 음악의 걸작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결국 당시 음악계와 사교계에서 드뷔시와의 비교에 대한 불편함은 그를 더 위대한 작곡가로 만들어 주는 자극제가 된 것입니다. 누군가와 끊임없이 비교당하는 상황은 결코 즐거운 상황이 아니지만,  때로 이러한 비교가 있었기에 라벨도 자신의 한계를 넘어설 수 계기가 된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당대 음악계에 이미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던 드뷔시와의 경쟁 속에서 자신의 독창성을 발견하고, 그를 뛰어넘는 걸작들을 세상에 내놓게 된 것입니다.


경쟁과 질투의 경계선에서

우리는 늘 끊임없이 누군가와 경쟁하는 세상을 살아갑니다. 특히 대중의 관심과 끝없이 평가받는 위치에 있는 예술가의 삶은 경쟁과 질투가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모리스 라벨과 클로드 드뷔시, 이 위대한 두 음악가는 모두 프랑스 음악을 혁신하려는 열망을 품고 있었지만, 뛰어난 두 음악가의 만남이었기에 둘 사이에는 늘 긴장감이 고조되곤 했습니다.  

드뷔시의 천재성을 인정하면서도, 라벨은 그와 비교되는 것을 불편해했고, 자신의 독창성을 강조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그들 사이에 존재했던 미묘한 질투와 열등감이 그들의 예술적 성취를 더욱 풍부하게 만듭니다.

질투로 인한 열등감, 참 견디기 힘든 감정이지만 이런 열등감이야 말로 바로 위대한 예술가들이 겪는 '위대한 열등감'이 되기도 합니다.


지금 당신은 어떤 위대한 열등감을 견뎌 나아가고 계신가요?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드뷔시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는

<K-POP에서 만난 클래식 예술 살롱>

존재하지 않는 행복이 가져온 고통의 끝

드뷔시 <달빛> 속 숨겨진 시인 폴 베를렌과 랭보의 금지된 사랑이야기

(파멸살롱 편)에서도 만나실 수 있습니다.


K-POP에서 만난 클래식 예술 살롱 - 지나김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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