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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김 Sep 04. 2024

거대한 그림자 아래 미움받을 용기- 브람스

위대한 열등감

거대한 존재! 베토벤의 그늘 아래


무려 14년의 세월이 흘렀다. 천재적인 음악적 재능을 가진 43세의 한 남자가 그의 첫 교향곡을 작곡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베토벤의 뒤를 잇는 작곡가로 알려진 요하네스 브람스, 그가 교향곡 1번을 완성했을 때, 그에게는 단순히 작품 하나를 세상에 내놓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Johannes Brahms 1853 20세 청년 브람스의 모습

1824년 그 유명한 베토벤 교향곡 9번이 완성된 후 그의 작품은 음악계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고, 위대한 예술가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여전히 후배 음악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거대한 압박의 그림자의 한가운데에 청년 브람스가 있었다. 베토벤을 깊이 존경했던 그였기에, 그의 초기 걸작으로 알려진 레퀴엠에서 피아노 소나타에 이르는 브람스의 작품에서는 베토벤을 닮은 음악적 진지함과 형식이나 구도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언제나 거대한 존재가 뒤에서 행진하는 소리를 들으며 살아가는
 저의 기분이 어떨지 모르실 겁니다.”

40세가 넘은 중년의 남성 브람스가 그의 친구이자 지휘자였던 헤르만 레비에게 편지로 전한 글이다.


21살에 교향곡 작곡을 시작하고자 결심한 이후 약 20여 년이 흐른 43세 그의 친구에게 전한 속내다. 중년의 브람스는 더 이상 애송이 음악가가 아니었다. 15세에 이미 영 피아니스트로 활동한 것을 감안하면 30여 년 경력의 베테랑 예술가였다. 그의 작품을 지속해서 발표하고 인정받았을 뿐 아니라, 당대 유명한 음악가인 슈만이 지지하고 인정한 후배였다. 스타일은 달라도 당대 귀부인을 모조리 휩쓸던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 리스트와도 서로 깊이 존중하는 사이였다.


넘을 수 없는 높은 산 아래 길 잃은 깊은 창작의 고통


하지만 중년의 브람스는 여전히 베토벤의 유산에 대한 존경심과 동시에 깊은 열등감을 느꼈다.

20대부터 교향곡 작곡을 시도했지만, 베토벤의 유산 앞에서 번번이 주저했다.

“옛 작곡가들은 베이스 라인의 테마를 철저히 유지했지요.
작품의 진정한 테마 말이요. 베토벤의 작품은 멜로디, 화음, 리듬이
너무나도 아름답게 변주된단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 같은 후대 작곡가들은 뭔가 테마에 근거하는 듯하지만,
아주 소심하고 자유롭지도 않고 그렇다고 새로운 것을 창작해 내지도
못한다는 말입니다. 오히려 거추장스러운 변주나 만들어 내고
결국에는 테마를 알아볼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르곤 합니다.”

       

브람스가 그의 친구 바이올리니스트 겸 지휘자인 요제프 요아힘에게 1856년 여름에 보낸 편지다.

1856년은 브람스가 교향곡 작업을 시작한 뒤 약 2년 정도가 흐른 뒤다. 그는 초기 스케치를 위해 베토벤의 작품을 깊이 연구하며 베토벤의 엄청난 예술성과 작품성에 감탄하곤 했다.

이후 무려 11년이 지난 1875년 브람스는 그의 친구이자 지휘자였던 프란츠 뷜너에게 보낸 편지에서 첫 교향곡 창작으로 인한 깊은 고통과 절망을 호소한다.


저는 아마도 여기 앉아서,
가끔은 꽤 쓸모없는 것들을 쓰면서 시간이나 때우렵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나의 어두운 교향곡과 얼굴을 마주하지 않도록 말입니다.

바덴바덴에 있는 브람스의 집 내부 모습



브람스는 완벽주의자였고, 그의 작품이 베토벤의 그것에 비견될 수 있어야 한다는 부담을 안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첫 교향곡이 완성되기까지는 초기 스케치 작업부터 거슬러 보면 무려 20년이 걸렸다. 그의 작품에 대해 스스로 "꽤 쓸모없는 것들"이라 칭하며 자신의 실력을 매우 냉정하게 평가했다. 그렇게 초기 스케치 작업을 한 1854년 이후 중단과 수정을 수차례 반복한 뒤, 1876년에 마침내 브람스 교향곡 1번이 완성된다. 작품의 웅장한 서곡과 깊은 감정을 담은 아름다운 테마가 어우러진 걸작은 고전적 엄격함과 낭만적 표현이 조화롭게 담겨 있어 베토벤 교향곡 9번을 떠오르게 한다.


이 교향곡은 1876년 11월 4일에 독일 카를스루에에서 초연되었는데, 마지막 순간까지도 지독한 완벽주의자였던 브람스는 그의 작품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브람스 교향곡 1번 초연 기념 표지판      



제 교향곡은 길고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맨 마지막 순서가 아닌 처음에 하거나 아니면 그다음 정도 순서에…
연주할까 합니다. 1. 서곡, 2. 아리아, 3. 저의 교향곡 그리고 4. 5. 6번으로 이어지게 프로그램을 구성하면 좋겠어요. 성악가 헨셸이 무대를 장악할 테니까요.
바로 다음 순서인 제 교향곡이 실패한다면,
저의 가장 아름다운 음악 중 하나를 연주하지요!


브람스가 그의 초연이 끝난 후 그의 친구이자 지휘자인 카를 라인케에게 전한 그의 심경이다.

그의 첫 교향곡은 발표되자마자 "베토벤의 교향곡 10번"이라는 별명을 얻었지만, 그는 여전히 그의 작품에 대해 만족하지 못했고 대중의 평가에 대해 불안해했다. 공연의 하이라이트인 프로그램의 마지막 순서를 가급적 피하고 싶어 했다. 혹여 자신의 작품이 관객으로부터 혹평을 받고 공연을 망치는 상황이 되면, 당시 큰 인기를 얻고 있던 성악가 헨셸이 무대를 빛낼 것이라는 농담을 던지며 은근하게 편치 않은 속내를 전한다.  


베토벤의 10번째 교향곡이라 불린 교향곡 1번 그리고 미움받을 용기

브람스의 교향곡 1번은 단순한 작품이 아니라, 베토벤과의 음악적 대화이자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그는 베토벤의 유산을 존중하면서도 그 속에서 자신만의 길을 찾아냈다. 브람스의 첫 교향곡은 그래서 더욱 특별하다. 그저 단순한 음악적 작품이 아니라, 한 작곡가의 인간적인 고뇌와 열정,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난 아름다움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브람스 교향곡 1번과 같은 엄청난 대작을 작곡한 예술가 역시 그보다 더 큰 이름의 그늘 아래 스스로를 평생토록 옥죄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대중은 '베토벤의 10번째 작품'이라는 별칭을 붙이며 그의 작품에 찬사를 보냈다. 하지만 이러한 대중의 극찬 덕분에 어쩌면 브람스는 자신을 늘 부족한 예술가로 여겼는지 모르겠다. 또 다른 위인이자 스승인 베토벤이 그에게 결코 뛰어넘을 수 없는 거대한 산이 되어,  평생을 헌신한 그의 걸작에서도 베토벤의 이름을 지울 수 없었으니 말이다.


Brahms: Symphony No. 1 in C Minor, Op. 68 - I. Un poco sostenuto - Allegro (youtube.com)



저의 책 [K-POP에서 만난 클래식 예술 살롱]에서 위대한 열등감 브람스와 슈만과 클라라 슈만의 또 다른 이야기를 만나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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