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살, 처음 맞는 휴직.
불안은 여전히 가끔씩 초인종을 누르지만
이상하게도 집 안 깊숙한 데는 꽤 평온하다.
점심으로 밥에 삶은 계란, 김만 먹고 있을 뿐인데
마치 호텔 조식이라도 된 것처럼
고요한 식탁 위에서 ‘맛’이란 게 또렷하게 느껴진다.
예전엔 회사 메신저 알림에 쫓겨
씹는지 삼키는지도 모르고 넘기던 밥이었는데 말이지.
복직? 글쎄…
다시 회사로 돌아가고 싶진 않다.
물론 회사가 주던 월급의 안정감,
명함에 찍힌 회사 이름이 주던 그 애매하게 달콤한 자부심은
지금도 가끔, 옛 연인처럼 불쑥 떠오른다.
그래도 이제는,
그것 말고 ‘나의 다른 가능성’을 찾고 싶다.
돌아보면, 학교 다닐 땐 부모님 기대 맞추느라 공부만 했다.
대학 졸업 후엔 “남들이 선호한다”는 회사에 들어가기 위해 뛰었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게 뭘까?’
이 질문을 진지하게 던져본 적은 거의 없었고,
하고 싶은 마음이 슬쩍 올라와도
“지금 그런 생각할 여유 없어”라며
꾹꾹 눌러 담는 게 내 특기였다.
이제는,
내가 뭘 좋아하는 사람인지부터 다시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한테 미션을 하나 줬다.
내 돈을 기꺼이 내고라도 배우고 싶은 게 뭔지 찾을 것.
서점에 가서, 발걸음이 자꾸 멈추는 코너와 책이 뭔지 볼 것.
과거에 내가 좋아하고 잘했던 게 뭔지, 나 자신에게 다시 물어볼 것.
일단 “돈 내고 배우고 싶다”에 꽂힌 건 경매,
그중에서도 특수 경매, 지분 경매다.
회사 다니면서 공부할 때,
임차인 있는 물건 같은 특수 물건은
경쟁이 덜해도 돈이 될 수 있다는 걸 맛봤다.
한 번 그 맛을 본 사람답게
이번엔 난이도 조금 더 높은 스테이지로 올라가 보고 싶어졌다.
게임으로 치면, 드디어 ‘노말 모드’에서 ‘하드 모드’로 넘기는 기분.
그리고 서점에 갔다.
문을 딱 열자마자 책 냄새랑 커피 냄새가 섞여서
“어서 와, 천천히 좀 구경해봐”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요즘 육아휴직으로 살짝 움츠러든 탓인지
먼저 눈에 들어온 건
“후회하지마”, “자신감을 가져”
이런 문장이 적힌 책들이었다.
한편으로는
빠듯한 생활비 때문인지
표지에 차트가 그려진 주식 책들도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야, 나도 좀 봐라.”
책장이 나한테 말을 거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좋은 건,
시간이 너무 많다.
그래서… 너무 좋다.
(이 문장을 이렇게 말할 수 있는 날이 올 줄이야.)
아내랑 같이 지하철을 타고
아무 계획 없이 그냥 걷다가 부산대를 갔다.
캠퍼스를 걸으면서 학생들 사이에 끼어 다니는데
우리 둘만 살짝 시간 여행 온 사람들 같았다.
학식 식당에 들어가
정직한 맛의 식판을 들고 마주 앉아 밥을 먹었다.
거기서 문득, 정말 오랜만에
내 대학 친구 이야기를 꺼냈다.
“여보, 친구 이야기 하는 거 처음 듣는 것 같다?”
아내가 놀란 눈으로 나를 봤다.
나도 좀 당황했다.
회사 다니는 동안 나는
늘 팀, 실적, 보고 얘기만 하고 살았지
내 친구, 내 과거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꺼낸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 났다.
회사를 잠시 내려놓으니
예전 친구들이 떠오르고,
그와 함께 예전에 내가 좋아하던 나의 모습들도
물 위로 하나둘 떠오르기 시작했다.
내가 잘하던 공모전,
재밌어하던 경매 공부,
회사에서 관리하던 온라인 몰.
‘아, 나한테도 이런 것들이 있었지.’
나는 분명 뭔가에 몰입하고 좋아하던 사람이었는데
왜 그동안 그걸 애써 무시하고
국비 교육, 안정적인 일자리만 찾아 헤맸을까.
아마도,
“가장”이라는 이름이 주는 책임감 때문이었을 거다.
“1년 안에 꼭 경력을 전환해야 한다.”
이 보이지 않는 줄을 허리에 꽉 묶어두고
스스로를 계속 몰아붙였던 것 같다.
이제는 그 줄을 잠깐 풀어보기로 했다.
‘1년 안에 경력을 전환한다’는 부담 대신,
‘1년 동안 나라는 인간을 탐구한다’는 마음으로.
이렇게 문장을 바꿔 붙였을 뿐인데
같은 하루가 이상하게 좀 더 충만하게 느껴진다.
오늘도 나는
밥 위에 삶은 계란 반쪽, 김 한 장을 올려
한 숟가락 크게 떠서 입에 넣으면서 생각한다.
“그래, 지금은
경력을 키우는 시간보다
나를 키우는 시간이 더 중요할지도 몰라.”
이렇게 천천히,
43살에야 비로소
‘나라는 사람’을 다시 만나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