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김없이 오늘 아침도 도서관에 갔다.
도시락까지 챙겨 갔는데, 하필이면 취식실이 공사 중이었다.
하는 수 없이 가까운 CX편의점에 들러 라면을 먹었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가 “고칠아—” 하고 불렀다.
고등학교 때 별명이다.
돌아보니 동창이 서 있었다.
편의점 영업 관리를 하는 친구였다.
10년 전 제주도 출장에서 우연히 만났을 때,
서로 부둥켜안고 반가워하던 바로 그 친구였다.
“평일에 웬일이고? 회사는?”
잠깐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어… 오늘 연차.”
(도저히 ‘회사 안 나간다’는 말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커피 한 잔 묵자.”
“아니다, 나 회사 가야 된다. 후배 오는 중이다.”
“아니 연차라메.”
“…반차다.”
왜 ‘공부 중이다’라는 말을
그 자리에서 솔직하게 하지 못했을까.
육아휴직은 생각보다
입 밖으로 꺼내기 어려운 시간이다.
휴직 후 나는 시간 부자가 되었다.
아이 하원도 돕고,
여유 있는 저녁을 만들고,
책을 읽고 브런치에 글을 쓰는 일상이
마음에 잔잔한 평온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역시, 돈은 빠듯하다.
무엇을 하려고 해도 물가가 높아 보이고,
회사에서 아침·점심을 해결하던 나는
식당 가격표 앞에서 몇 번이나 멈칫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회사에서 얻었던 자존감이
훅 무너져 내리는 순간이 찾아온다.
‘내가 ○○ 기업에 다녔던 사람인데’
그 무의식이,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깊이에서 나를 지탱하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편의점에서 라면을 먹는
어딘가 처량한 내 모습을 들켜버려
후다닥 자리를 뜬 그 순간,
괜히 나 자신이 미웠다.
요즘은 가끔, 아니 자주
회사를 다시 다니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때의 안정감,
그리고 회사가 주던 자부심이 그립다.
집에서도 아내에게 생활비를 건넬 때
뭔가 단단해지는 느낌이 있었고,
그 사실이 스스로도 놀라울 만큼 크다는 걸 알았다.
휴직 후에는
괜히 아내에게 미안하고,
자격지심처럼 느껴지는 순간도 있다.
아내가 예전만큼 나를 대우해주지 않는다는
혼자만의 서운함도 올라온다.
남자가 육아휴직을 쓰면
복직 후 커리어 손실이 생긴다는 말,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휴직하면 결국 그만두는 건가?” 하고 바라보는 시선.
그 무게도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돌아간다 해도
나는 또 육아휴직을 선택할 것이다.
불안함 속에서도
내 삶을 내가 살아내고 있다는
조용한 충만함이 있으니깐.
산길을 오래 걷다 보면
발자국이 길이 되듯,
나도 내 방향으로 꾸준히 걸어가다 보면
어느 날엔가는
내 길이 분명히 만들어질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