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나는, 적어도 업무적인 면에서는 전혀 꿀리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영업 관리 업무는 꽤 재미있었다.
까다롭고 힘든 거래처를 기어코 뚫어냈을 때 오는 그 짜릿한 성취감.
그 맛에 회사를 다녔던 것 같다.
하지만 문제는 엉뚱한 곳에 있었다.
윗사람과의 늦은 술자리, 그리고 보이지 않는 사내 정치.
그건 정말 나와 맞지 않는 옷이었다.
나의 동기는 달랐다.
그는 임원들과 새벽까지 술잔을 기울였고,
주말에는 피곤한 기색도 없이 골프 모임에 나갔다.
체력도, 비위를 맞추는 능력도 그 친구의 스펙이었다.
불안한 마음에 나도 한번 따라 해봤다.
결과는 처참했다.
단순히 술이 약해서가 아니었다.
억지웃음을 짓느라 에너지가 바닥나버려,
정작 다음날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나는 성과를 냈지만 진급은 늦어졌고, 몸과 마음은 점점 지쳐갔다.
나에게 맞지 않는 속도로 달리느라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 기분이었다.
그래서 잠시 멈추기로 했다.
육아 휴직을 냈다.
회사의 시계에서 벗어난 지금, 나는 오전마다 전기 기능사 책을 편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나만의 호흡으로, 매일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문제를 풀고 채점을 한다.
처음엔 비가 내리던 시험지가, 이번 달부터는 합격선을 넘기 시작했다.
윗사람 비위를 맞추지 않아도, 정직하게 땀 흘린 만큼 결과가 나온다는 단순한 사실이 나를 위로했다.
그리고 또 하나, 스마트 스토어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솔직히 내가 이 일을 잘할 수 있을지 아직 확신은 없다.
장사는 또 다른 영역이니까.
하지만 '매일매일 꾸준히 해야 하는 일'이라면, 그건 자신 있다.
성실함만큼은 내 무기니까.
오늘 처음으로 제품 샘플을 주문해봤다.
도착하면 사진도 찍고, 상세페이지도 직접 꾸며볼 생각이다.
한 걸음, 한 걸음씩.
가끔은 동기들이 저 멀리 앞서가는 것 같아 마음이 조급해질 때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제 안다. 남의 보폭을 쫓아가다간 또 넘어질 거라는걸.
그래서 나는 그냥, 나만의 호흡으로 걸어가기로 했다.
이게 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