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아무런 나날 000 prologue_미국 뉴욕에서
밖으로 도는 일이 내가 해온 일의 대부분이었다.
지리산의 능선을 첫눈과 함께 걸었고 달빛에 의지해 걷기도 했다. 한여름의 설악 서북릉을 종주하다가 귀때기청봉 너덜지대에서 탈진하기도 했다. 해질 무렵 지나던 해남의 작은 마을에서는 고향과 집 식구들이 떠올라 차를 멈추고 풍경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쌍봉사 철감선사부도 지붕돌의 막새기와에 넋을 잃기도 했고 곰배령에서는 얼레지 보겠다고 쭈그리고 앉아 오도카니 있었다. 통영 앞바다에서 카약을 탈 때는 구름 위를 달리는 기분이었고 오키나와 서쪽 해안을 자전거로 달릴 땐 고래가 심해를 유영하는 기분이 이렇겠지, 싶었다.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를 앞둔 고락셉(5,140m)에서는 죽을 정도로 힘들었지만 아직도 아마다블람(6,812m)의 하얀 실루엣을 보면 미칠 것 같다. 로지를 짓는 판자도 등짐으로 나르는 히말라야와 세계의 자본과 기술과 재화와 인재가 모이는 뉴욕은 같은 지구 상의 공간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은하수보다 반짝이는 맨해튼의 야경은 아름다웠고, 이민자들의 고된 일상에서 비롯된 센트럴파크는 부러워 죽을 지경이었다. 동해안을 따라 걷다 만난 바닷가 국도변의 버스정류장에서는 여행자가 되어 버스를 기다리고 싶었고, 주말마다 찾는 심학산의 나무들은 갈 때마다 계절의 변화를 그라데이션으로 보여주었다. 동네에서 자전거를 타다 길을 잃어 접어든 농로에서 평화란 어떤 건지 깨닫게 되었고, 작업실을 향하거나 집에 돌아오는 버스를 타면 게스트하우스에서 나와 여행을 시작하거나 여행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듯한 착각을 하곤 한다.
이런 여행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지금의 내가 어떤지, 어떤 여행의 어떤 장면 혹은 순간이 그렇게 만들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비가 내려 계곡으로 강으로 흘러 바다로 간다는 정도의 흐름만 느낀다.
대부분의 여행은 길지 않은 산문과 몇 장의 사진으로 정리했다. 처음에는 그게 일이었고 나중엔 자연히 그렇게 되었다. 장작은 팰 때 한 번 땔 때 한 번 사람 몸을 데운다던데 여행은 여행할 때와 정리할 때 두 번에 걸쳐 사람을 만든다. 여행은, 어쩌면, 계획하고 도모할 때까지 세 번 만드는지도 모른다. 장작 이야기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의 것이다.
엄청난 모험과 대단한 여행을 했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목숨을 잃을 뻔한 적은 있지만 목숨을 건 건 아니었다. 어떤 것도 부럽지 않은 경험도 했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다만 이런저런 여행의 순간과 경험들이 내게는 중요하다고 말하는 거다.
그 이야기들을 여기에 모아두려 한다. 기억이 흐려지기 전에, 후일담으로 미화하기 전에. 지난 여행들을 온전히 내 여행을 만들겠다는 뜻이고, 앞으로는 보다 나다운 여행을 하겠다는 거다. 지난 여행을 곱씹을 일과 떠날 여행을 꾸밀 일에 설렌다. 밖으로 도는 건 즐거운데, 여행이라는 게 밖으로 나가는 건지 속으로 들어가는 건지 잘 모르겠다. 어쩌면 둘 다일 수도 있겠다.
마지막으로 짤 하나 얹는다. 뉴욕 맨해튼 거리 헤매다가 만난 거다. 아마 쓰레기통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문구가 마음에 콕 박혔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할수록 의미가 번진다.
'EMBRACE THE ABSURD'
처음엔 낯선 걸 경계하지 말고 포용하자는 뜻으로 읽혔다. 9.11 이후 경계심이 높아진 데 따른 것으로 보였다. 워낙에 다양하고 각양각색의 문화가 뒤섞이는 뉴욕이라 낯설거나 이상한 때론 불합리로 보이는 것도 용인하자는, 뭐 대략 그런. 옆면의 '아무도 두려워하지 마'라는 말은 이걸 좀더 직설적으로 표현한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났고 지난 사진들을 다시 보는데 썸네일의 핑크색이 눈에 들어와 사진을 열었는데 좀 다르게 다가왔다. '어색하고 우스꽝스러운 것도 받아들여 봐.' 단순히 외부에 대한 경계를 허물라는 권고가 아니라 내 안의 어떤 것을 내보여 보라는 속삭임. 뉴욕 시민이 아니라 여행자의 입장에서, 그저 관찰자의 시선에 머물 것이 아니라 주민처럼 혹은 주인공처럼 이 도시를 혹은 이곳에서의 짧은 삶을 즐기라는 부추김. 이제는 '좀 우스꽝스러워도 괜찮아'로 내게 남아 있다. 여행지에서 뭔가를 할까, 말까 망설이다 주춤했던 기억들 때문일 것이다.
어라? 그러고 보니 언젠가부터 '괜찮아'란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괜찮아, 한 번 해 봐'나 '괜찮아, 그럴 때가 있어' 이런 말들. 남에게 다독이던 말이 여행 덕분에 내게로 왔다. 나도 알고 너도 아는 말, 남에게도 나에게도 해주고픈 말.
"괜찮아, 알잖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