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분하게 이별했습니다만

풀리지 않은 의문

by 고라니

또 한 번,

그의 확신 없는 계획에 화가 났다.

영상통화 속 내 얼굴은 실망으로 가득했다.

이런 얼굴을 마주한 것이 처음은 아니다.


수십 번 반복된 질문과 대답 속에 지쳐갔다.

더 이상 우리의 이야기를

예쁘게 포장하여 건넬 자신이 없어,

결국 헤어지자 말했다.


정확히 말하면 아무 말도 못 한 채 울기만 했고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영상통화로 이별을 고한 뒤,

택시를 타고 달려오는 그를 기다렸다.

마지막으로 보낸 짧은 카톡이 아쉬워,

다시 한번 장문의 문자도 보냈다.


우리 사이를 묶어주던 기록들을 삭제해도 답답함은 여전했다.



헤어진 지 5일째 되던 날 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이별의 순간에 많은 말을 하지 않았을까.

그간 쌓여왔던 미움들을 쏟아낼 수 없었다.


헤어지기 위해 간 놀이터에 나란히 앉아있던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기도 했다.


그 정도로,

우리가 왜 헤어져야 하는지에 대해

치열한 대화조차 나누지 못했다.


마지막 순간마저

예견된 운명처럼 차분했다.

그저 현실적인 이유가 우리를 갈라놓았다고 짐작할 뿐이었다.


차마 전하지 못했던 많은 말들을

서로에게 가장 중요한 과정이었을 그 대화를

나는 끝내 생략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