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에 대한 단상 _
서울에 위치한 대표적인 조선시대의 궁궐을 5대 궁(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경희궁))으로 부르는데, 접근성과 상징성 등을 고려했을 때 우선적으로 연상되는 궁궐은 경복궁과 덕수궁이 아닐까 한다. 특히 덕수궁은 역사적인 배경이 없는 나 같은 평범한 시민에게도 그 특이함이 한 눈에 분간되는 지점들이 있다.
첫째는 지하철 출구에서 가까운데, 너무 가깝다. 물론 역 이름 자체가 궁 이름인 ‘경복궁’이 있지만 경복궁역 5번 출구로 나오면 입궁한다는 느낌보다는 국립고궁박물관을 들렀다 샛길로 몰래 들어가게 되는 느낌이고,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 역시 문 이름을 딴 지하철역이 있지만. 광화문역 3번 출구로 나와도 실제로 광화문까지 가기에는 걸어서 십 여분이 걸리기에 솔직히 광화문역 보다는 광화문광장역이 역명으로 더 잘 어울리지 않을까. 그런데 덕수궁은 시청역 2번 출구로 나오면 덕수궁의 정문인 대한문이 딱! 있기에 개인적으로는 대중교통(지하철)으로 접하기에 가장 가깝게 느껴지는 궁궐*이다.
*궁궐 : 궁궐이란 용어는 궁(宮)과 궐(闕)의 합성어로서 궁이란 천자나 제왕, 왕족들이 살던 규모가 큰 건물을 일컫고, 궐은 본래 궁의 출입문 좌우에 설치하였던 망루를 지칭한 것으로, 제왕이 살고 있던 건축물이 병존하고 있어서 궁궐이라 일컫게 되었다. 궁궐은 궁전·궁성·궁실 등으로도 불리며, 이들 용어는 넓은 의미로 볼 때 같은 뜻으로 해석되고 있다.(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두 번째로 덕수궁은 유난히 도심 한가운데에 있는 느낌이다. 많은 궁궐이 현대적인 건물과 도로들 사이에 위치할 수밖에 없지만 다른 궁궐들은 정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오면 어느새 시간여행을 하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외부와 분리되었다는 안정감을 느낀다. 요즘 유행하는 사극 로맨스코미디물의 한 장면 속에 들어온 것 같은 망상에 빠질 때도 있다. 코너를 돌면 한복 입은 김유정 배우가 나타날 것 같은. 그런데 덕수궁은 그리 크지 않은 규모 때문인지 서울 생활을 함께하는 느낌이 든다. ‘여기서부터 궁궐입니다’라는 명징한 구분을 하는 경복궁보다는, 경주에서 길을 걷다 갑자기 나타나는 왕릉이나 탑들처럼 도시와 일상에 녹아 들어있는 느낌을 준다. 실제로 개방시간도 밤 9시까지로 넉넉하다.(다른 궁궐들은 6시 안짝으로 닫는다. 입장 마감은 한 시간 전)
셋째로 권역 안에 특이하게 느껴지는 건물이 많다. 단청이 없는 것도 신기한데 목조건물이면서도 2층 구조이기까지 한 석어당. 구름다리의 역할로 보이는 연결통로가 전면으로 보이는 준명당과 즉조당, 이렇게 얕은 관념 속의 옛 궁궐 건물과는 다르게 느껴지는 건물들이 있다.
마지막은 현대적인 건물들 역시 많다. 그리스 신전을 연상시키는 석조전과 국립현대미술관이 있고 대한제국 외국공사접견례가 재현되는 정관헌. 그리고 서양식 분수까지 있다. 덕수궁에 와서 느끼는 시각적인 신선함과 충격은 여기에서 기인할 것 같다. 그리고 최근에는 돈덕전까지 복원되었다.
항온항습이 유지되는 수장고에서, 늘 흰 장갑을 낀 손에 다루어지는 다른 문화유산과는 달리 궁궐은 전면적으로 외부에 노출되어 있다. 그리고 의외로 끊임없이 변화하고 확장된다. 어릴 때 창경궁이 일제 강점기에 창경원 이었다 복원되었다 정도를 책으로 읽은 적은 있지만, 커서 마주한 궁궐들은 그대로 유지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궁궐 자체도 끊임없이 복원을 통해 옛 모습을 찾아가며 확장하고 있다는 사실이 2023년을 사는 나에게 가장 크게 와닿은 것은 덕수궁 내의 돈덕전 복원*이었다.
* 이를 재현 또는 재건으로 보는 견해가 있으나 이 글에서는 복원으로 통칭한다.
처음에 돈덕전이 다시 지어진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궁궐 내의 건축이 늘어난다는 인식 자체가 낯설어 중명전처럼 권역 외의 곳에 있는 줄 알았다. 돈덕전이 덕수궁 어디에 있을까, 그 안에 뭐가 더 생길 수 있을까 궁금해하며 일부러 사전지식 없이 덕수궁을 찾아가 보았다. 아기자기한 궁내를 거닐다 보니 ‘이제 진짜 덕수궁 끝인데’라는 생각이 들 때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과 석조전 사이에 새로운 건물이 눈에 띄었다. 멀리서 보이는 돈덕전은 석조전의 본격적인 서양식 외관과는 또 다른 느낌. 한국과 서양의 건축양식이 절충된 정관헌보다는 본격적인 건물이라는 느낌이 들었고 일단 틸 계열의 겹오얏꽃 문양이 먼저 보인다. 솔직한 첫 인상은 ‘오얏꽃 문양이 있다’ 보다 ‘청록색 겹오얏꽃이 쾅쾅 박혀있다’라는 표현이 더 적당하게 느껴질 정도로 아담한 2층 규모의 건물에 비해 크게 여러 개 위치한 겹오얏꽃 문양이 눈에 들어왔다.
‘돈덕(惇德)’이라는 명칭이 낯설어 찾아보니 ‘덕 있는 이를 도탑게 해 어진 이를 믿는다’ 라는 의미라고 한다. 쉽게 머리에 들어오는 표현은 아닌데 ‘덕이 있는 자’는 교류하며 신뢰를 쌓아가야 할 여러 국가를 가리킨다고 한다. 과거 황제가 외국 공사를 만나는 연회장이나 외국 귀빈이 묵는 영빈관으로 사용한 곳이기에 붙여진 이름 같다. 당시에는 명칭의 의미를 어떻게 외국어로 번역했을까 궁금해졌는데 돈덕전 앞 안내판과 궁내 리플렛 등에는 모두 Dondeokjeon 으로 표기되어 돈덕전의 의미까지 외국어로 풀어 안내되었을지는 아쉽게 알기 어려웠다.
빨간 벽돌로 지어진 2층짜리 건물이 지금은 매우 클래식하고 아담한 옛 도서관처럼 느껴지지만 고종 즉위 40년을 기념하여 건립되었고 1907년에는 두 번째 황제인 순종의 즉위식을 열렸다니 국가적 역량이 반영된 최신식 건물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당시에는 얼마나 충격적이었을까 한참을 앞에서 상상하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궁궐의 모습들이 더 확장하고 복원될 여지가 있다는 점에서 설레이면서도 낯설게 느껴진다. 그래서 돈덕전 앞에 선 이 복합적인 감정은 찬성이나 우려보다는 신기함이다. 궁궐 복원 계획의 끝이 어디까지인지는 모르겠으나 전통의 개념과 외연을 확장하며 옛 사람들의 생활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방향으로 향하길 바란다.
사진 출처 모음
1. 에스컬레이터 출구에서 바라본 덕수궁의 정문인 대한문 : 직접촬영
2. 덕수궁 전경 : 덕수궁 궁관리소 홈페이지 https://www.deoksugung.go.kr
3. 석어당 전경 : 직접촬영
4. 덕수궁 내 석조전 전경 : 덕수궁 궁관리소 홈페이지 https://www.deoksugung.go.kr
5.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과 석조전 사이 낯선 붉은 벽돌건물이 보인다 : 직접촬영
6. 덕수궁 내 돈덕전 전경 : 조선일보 https://www.chosun.com/UQKDIFTVSZBWZIH7CMYIWERSBM
7. 40cm는 족히 넘는 큰 청록색 겹오얏꽃이 돈덕전에 150여개가 있다 : 직접촬영
8. 100여년 전 덕수궁 돈덕전 : 국립현대미술관
9. 이전(좌/개인소장)과 돈덕전이 추가된 버전으로 새로 비치된 안내지(중). 영어버전(우)은 아직 제작중으로 보인다 : 직접촬영
10. 돈덕전의 안내판과 언어별 표기 : 직접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