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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oraphic Nov 06. 2023

7년 준비한 독도 공모전에서
대상 받은 이야기

'팔도총도' 독도체인배지와 키링을 머리에서 밖으로 꺼내기


클로이에게 '독도는 우리땅'을 영어로 설명하기


 그의 이름은 클로이. 파리에서 왔다. 아시아 문화에 관심이 많던 그는 여름휴가를 맞추어 한국에 민화를 배우러 왔고, 마침 주말 취미반인 나와 마주칠 수 있었다. 다른 수강생들과 민화 재료를 구입할 겸 인사동 구경을 하며 폭넓은 주제의 많은 대화를 나누었는데. 먼저 그는 겐조 향수 부문의 마케팅 부서에 있어 최근에 론칭한 향수의 광고를 유튜브에서 찾아 보여주었다. 파티에 참석한 한 여성이 건물을 무섭게 종횡무진하며 꽤 오래 춤을 추던 광고로 자신의 작업을 글로벌하게 선보이는 그가 새삼 달라 보였다. 그리고 그는 도대체 네이버가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여기에서 만난 한국인들이 대화를 하다 말문이 막히면 일단 초록색 창을 켜는 것이 인상 깊었나 보다. 그리고 나는 몇 년 전 프랑스의 영부인이었던 카를라 브루니를 mistress로 지칭하는 실수를 범했는데 클로이가 이를 단호하게 바로잡아 주었다. 내가 그들의 관계에 대해 잘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한국의 음식이 맵지 않은지, 그날 덕수궁에서 본 이중섭의 전시를 보고 왜 눈물을 흘렸는지 등을 이야기하다가 그는 어떤 섬에 대해 물어보았다. 섬 하나를 두고 왜 두 나라가 자기의 것이라 하는지, 국제적인 시각은 어떤지 등을 물어봤지만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말은 사실 ‘독도는 우리땅’ 뿐이었다. 독도가 우리땅인 것은 한국인에게 너무나 당연한 것인데 이를 외국인에게 외국어로 처음부터 설명을 하는 것은 생각해 보지 못한 일이었기에 너무나 어려웠다. ‘독도는 우리땅’을 불러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직독직해할 자신 역시 없었다. 여기에서부터 시작이었다. “외국인 친구에게 독도가 한국땅인 것을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머릿속 아이디어, 꺼내도 될까 말까


 서두가 꽤 긴 편이었지만 구상과 제작에 걸린 기간은 더 길었다. 코래픽(KORAPHIC)을 시작한 2018년부터 나만의 독도 프로젝트는 진행형이었다. 단순히 독도를 기억하고 알리는 기념품에서 나아가 ‘다른 언어를 쓰는 이에게 독도가 우리땅인 이유를 쉽고 효과적으로 시작할 수 있는’ 문화상품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에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까지 틈틈이 조사를 했었다. 이미 훌륭한 굿즈들이 많았지만 독도를 형상화하는 것 이상을 생각하던 중, 독도가 그려진 고지도가 발견되었다는 다수의 기사를 읽게 되었다. 사실 ‘독도가 명시된 어느 나라의 고지도 몇 점 발견!’ 이런 류의 기사는 어릴 때부터 접했던 것 같다. 그렇다면 독도가 기록된 가장 오래된 지도는 무엇일까? 클로이 같은 외국인이라면 우리의 고지도를 보여주며 시작하는 이야기에 흥미와 신비로움마저 느끼지 않을까?      



 브랜드를 시작하고 나서도 다양한 경험이 여러 겹 쌓인 뒤에야 머릿속에 계속 자리 잡고 있던 독도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온라인으로 주로 선보였던 코래픽(KORAPHIC)의 문화상품들이 DDP디자인스토어와 한국관광공사 그리고 한국문화재재단 수탁공모를 통해 궁궐과 박물관, 인천공항 등에 선보이게 되어 패키지 디자인의 형식이 어느 정도 틀을 갖추었기 때문에 '외국인에게 건네는 선물'이 콘셉트인 독도 굿즈를 본격적으로 제작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코래픽(KORAPHIC)은 현재의 우리에게 의미 있는 전통을 소개하는 브랜드이기에 참고가 될 지도는 우리나라의 고지도여야만 했다. 인쇄본으로 간행된 가장 오래된 우리나라 전도이면서 현존하는 독도가 등장하는 최초의 지도. 이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지도는 단 하나, 팔도총도이다. 기본적인 조사를 마쳤으니 이제부터는 디자이너의 영역이다. 제발 팔도총도가 상업적으로 이용 가능한 저작물이어야 할 텐데... 그리고 팔도총도에 그려진 독도 모양이 문화상품으로 만들 수 있을 만큼 뚜렷하고 멋져야 할 텐데!




독도 없는 독도 굿즈 만들기


 디자인은 무언가를 이쁘게 꾸미는 것이 아니라, 제시하는 콘셉트가 대중으로부터 공감을 받아 선택될 수 있도록 과정 중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독도체인배지와 키링을 디자인할 때에도 역시나 확인해야 할 사항들이 몇 가지 있었다.     


 첫 번째로 팔도총도의 저작권이다. 문화유산의 디자인은 상업적으로 이용해도 괜찮은 걸까? 답은 '문화유산마다 다르다' 이다. 팔도총도(신 증동국여지승람)의 저작권은 공공누리(공공저작물 배포를 허용하는 저작권 라이선스 중 하나) 유형 중에서도 ‘제1유형’이라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및 상업적 이용이 가능해 다행이었다.


     

 두 번째는 팔도총도의 독도 표기가 정작 于山島(우산도)라는 점이다. 당황했다. 독도의 옛 이름이 있었다는 것에 대해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이를 활용해서 문화상품을 만들 때에 직면하니 당황스러웠다. 왜냐하면 이 배지에, 이 키링에 ‘독도’가 어디 있냐는 질문과 댓글이 벌써 달리는 듯했기 때문이다.(실제로 나중에 많은 인용트윗을 확인했다.) 于山島라고 적힌 독도 배지와 키링으로 독도가 우리땅이라는 것을 알릴 수 있을까...? 생각해 본 결과 내 고향 경주를 비롯한 다양한 이름들이 갑자기 떠올랐다. 경주의 옛 이름은 서라벌. 그리고 제주는 탐라, 서울은 한양. 이렇게 지금은 쓰이지 않는 옛 이름을 아직도 기억하고 때때로 활용하는 것처럼. 독도의 옛 명칭이 ‘우산도’ 임을 기억하는 것 역시 독도를 알아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여 옛 표기 그대로를 직경 1cm의 작은 금형에 새겼다.     


 세 번째는 우산도가 연결된 우리나라의 모양을 팔도총도의 반도 모양으로 할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한반도로 할지였다. 팔도총도로부터 디자인을 시작했지만 이 문화상품의 목적은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설명을 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한눈에 보아도 독도가 대한민국의 영토임을 알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현재의 한반도 모양에 우산도 금형을 연결하였다.     


 네 번째는 한반도와 우산도를 연결하는 일이었다. 독도(우산도)가 우리땅이라는 것을 시각적으로 명쾌하게 보여주기 위하여 ‘체인 배지’라는 형식을 결정했는데 이왕이면 연결된 그 위치에도 의미를 주고 싶어 대한민국 행정구역상 독도가 소속된 경상북도 위치에 연결하였다.(참고로 정확한 독도의 주소는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이다.)      



 마지막은 패키지 디자인. 전통을 콘셉트로 전개하는 브랜드에서는 영어를 사용하는 것은 여간 조심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 문화상품은 다른 언어를 쓰는 이에게 독도를 소개하는 콘셉트로 제작되었기에 독도와 팔도총도를 영어로 앞면에서, 뒷면은 한글로 설명하는 형식을 취했다. 참고로 이 패키지에 사용된 부제는 ‘가장 오래된 지도는 답을 알고 있다’인데 처음에는 'The Oldest map knows the Answer’로 표기했었다. 그런데 번역을 위해 다양한 영어문서를 검색하다 ‘오래된 지도’는 the Oldest map이 아닌 the earliest map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것을 알게 되었다. 즐거운 대화의 시작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잘못 번역되어 우스꽝스러운 기념품이 아닌 멋진 문화상품으로 보였으면 하는 바람에 할 수 있는 작은 부분까지 신경 쓰려고 노력하였다.     


 이렇게 다양한 생각할 거리는 분명한 콘셉트로 명쾌하게 해결할 수 있었다.     




7년에 걸친 기획, 2년에 걸친 꺼내기 _ 크라우드 펀딩과 공모전으로


  “지도는 답을 알고 있다 : '팔도총도' #독도체인배지”의 디자인이 완성되었고, 이를 세상에 알리기 위한 방법을 찾아보다 결정한 것은 크라우드 펀딩과 공모전이었다. 독도와 관련된 공모전이 있다는 것은 이번 디자인을 하며 알게 되었는데 경상북도와 (재)독도재단이 주최하고 대구·경북공예협동조합에서 주관하는 전국 규모의 권위 있는 공모전이라 쉽지는 않겠지만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격년으로 개최되는 만큼 2023년 제8회 공모전 제출과 이를 위한 2022년과 2023년의 크라우드 펀딩을 계획했다. 2022년에는 독도체인배지를 먼저 선 보이고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는다면 키링으로 발전시켜 2023년에 앵콜 펀딩 성격으로 진행한 뒤 배지와 키링을 세트로 공모전에 제출할 예정이었다.      


2022년 선보인 '독도체인배지'의 메인 이미지


 크라우드 펀딩은 제품의 이야기와 디자인 등을 창작자가 가능한 한 범위 내에서 먼저 선보인 뒤 이를 희망하는 분들을 모집하여 수량을 확정 후 제품을 생산하는 방식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렇기에 펀딩을 진행할 때에는 일정 설정도 매우 중요하다. 언제부터 언제까지 선보이고 언제 제품을 전달하는지의 과정이 모두 신뢰의 영역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진행일자를 계획하다 보니 '독도의 날'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이를 고종이 선포했다는 흥미로운 역사적 사실 역시 알게 되었다. 대한제국과 관련된 디자인을 주로 선보인 코래픽(KORAPHIC) 브랜드의 맥락과도 자연스럽게 어울려 좋았다. 참고로 독도의 날은 1900년 10월 25일 고종황제가 대한제국칙령 제41호에 독도를 울릉도의 부속 섬으로 명시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제정한 날이다. 그렇기에 펀딩 종료일을 10월 25일로 설정하여 독도의 날이 있다는 것이 널리 알려졌으면 했다.   


2023년 선보인 '독도키링'의 메인 이미지

  

 

 그렇게 2년여에 걸친 2번의 크라우드 펀딩으로 세상에 나올 수 있었던 “지도는 답을 알고 있다 : '팔도총도' 독도체인배지와 키링”을 제8회 독도(울릉도)기념품·디자인 공모전에 제출했다. 제출 장소는 대구(대구·경북공예협동조합)와 구미(새마을운동테마공원) 2군데였는데, 많이 고민하고 준비한 공모전인 만큼 택배가 아닌 직접 방문하여 접수하고 싶었다. 전화로 문의결과 직접 설치할 수 있는 장소는 구미라고 하여 itx를 타고 구미를 다녀왔다.      



제8회 독도(울릉도)기념품·디자인 공모전 대상 수상작



 독도의 현재 모습이 아닌 고지도의 표기에서 시작된 디자인, 그리고 앞면이 영어로 되어 있는 패키지 등이 얼마나 공감을 얻을 수 있을지가 가늠이 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제품만 달랑 얹어놓고 오기보다는 패키지와 제품이 각자 돋보일 수 있도록 배지와 키링의 거치대를 별도로 디자인하였고, 크라우드 펀딩의 스토리 부분을 정리하여 처음 이 문화상품을 보는 사람도 콘셉트와 맥락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하고자 노력하였다. 입상이라도 할 수 있다면 다행이라 생각했는데 결과는 예상외로 대상이었다.     


 이 소식을 듣고 가장 기뻐한 것은 가족, 특히 엄마였다. 아들이 처음으로 DDP디자인스토어에 입점을 했을 때 이 소식을 전하자 ‘DDP가 뭐고?’하셨던, 한국문화재재단 수탁공모를 통해 궁궐, 박물관, 공항 등에 입점했을 때에도 ‘그게 좋은 거가?’ 되물으셨던 엄마. 이번 공모전에 대상을 수상하였고, 대상이 경북도지사상인 점에 무척 감동하신 것 같아 나 역시도 기뻤다.     


 제작에 2년, 머릿속의 기획으로부터 따지면 7년의 여정이 결실을 맺게 되어 기쁘다. 7년이나 고민한 것이 겨우 배지와 키링이냐 할 수 있겠으나, 이 작은 문화상품이 누군가에는 다른 언어를 쓰는 이에게도 독도를 알리는 작고 흥미로운 대화의 시작이 될 것이라 믿으며. 인생 처음으로 대상을 받은 소회를 마칠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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