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을 벗을수록 경복궁 안으로 들어감
디자인스쿨에서 패션을 전공하고 패션 브랜드에서 일을 하다가, 다양한 디자인을 경험해보고 싶어 전시기획사로 옮긴 나는 아직 패션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했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이긴 했는데 패션디자인을 잘하는 학생이 아니었던 것이 계속 나를 괴롭히던 콤플렉스였고 이는 졸업 후에도 남았다.(디자인스쿨에서는 열심히 하는 학생과 디자인을 잘하는 학생이 확실히 구분되었다.) 그래서 졸업 이후에도 패션 공모전에 도전하고자 했고 이와 관련된 이야기이다. 내가 도전했던 2017년 제47회 중앙 패션 디자인 컨테스트는 50여 년의 전통을 가진 공모전으로 패션디자이너들에게는 등용문과도 같은 기회이며, 입상을 하면 사단법인 중앙패션디자인협회에 가입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공모전의 주제는 자유였기에(제한 없이 자유 창작물 1점), 디자인 콘셉트는 한국전통과 관련된 것으로 정하고 싶었는데, 사실 공모전에서는 한국 전통과 관련된 것이 유리할 수 있다더라 같은 이야기를 어디에선가 들었기 때문이다. 학생 때에는 전통과 관련된 패션 디자인을 해본 적이 없어서 오히려 재미를 느꼈고 자연스레 경복궁과 궁의 주인(왕)이 입는 곤룡포가 떠올랐다. 현대인의 기준으로는 아방가르드하게 느껴지는 크고 둥근 실루엣의 곤룡포를 어떤 것으로 채울까 하다가, 넓은 면적을 디자인하기 쉬운 것은 반복되는 무늬이기 때문에 경복궁의 많은 건축을 여닫는 문을 꾸미는 문창살을 떠올렸다. 이때는 코래픽(KORAPHIC)이라는 브랜드를 시작하기 전이었는데 돌이켜보니 전통 문양에 대한 기본적인 흥미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경복궁 안에 건물이 생각보다 많았다. ‘와! 많다!!’의 정도를 넘어 막막하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단순히 ’경복궁의 문창살을 곤룡포에 입히자‘라는 개념으로 접근하기에는 너무 건물이 많았다. 그래서 경복궁의 어떤 건물의 문창살을 곤룡포에 입힐지 정해야 했다. 옷을 곤룡포에 해당하는 딱 한 벌만 디자인한다면 당연히 대표적인 근정전을 고르면 되지만 공모전에서 그럴 순 없으므로(1 착장 안에는 보통 3-4개의 아이템이 들어간다.) 곤룡포 코트 안의 아이템 들에는 각각 어떤 문창살을 입혀야 할지도 정해야 했다. 건물이 많으니 문창살도 많았고 디자인도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이렇게 되면 건물들에 대한 어떤 규칙을 찾아야 한다. 다행히(당연히) 그 많은 건물이 그냥 두서없이 놓여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다양한 위계에 따른 배열 중에 특이하게 느껴진 점은 여인들이 사는 처소는 경복궁의 가장 깊은 곳에 숨겨져 있다는 점이었다.
패션과 건축의 공통점을 ’인간을 둘러싼 3D 구조물‘로 보는 견해가 있다. 물론 규모의 차이가 있긴 하다. 우리는 옷 안으로 들어가고 건축 안으로도 들어간다. 우리는 피부에 걸치며 옷 안으로 들어가고, 걸어서 건축 안으로 들어간다. 그렇다면 옷을 입고 벗는 행위 자체를 궁궐 안을 들어가고 나가는 것으로도 비유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과거 궁궐의 주인공은 왕일 수 있겠지만 궁궐에 왕만 사는 것은 아니다. 그 안에 사는 여인들이 궁궐에서 보내는 하루도 궁금했다. 어디에서 일어나 어딜 돌아다니고 어디에서 잠드는 걸까. 그 하루를 패션으로 풀어낼 수도 있을까? 곤룡포라는 복종에서 시작했음에도 여성복으로 정한 이유는 졸업컬렉션을 여성복으로 했기 때문인데, 직장생활은 하며 공모전을 준비하다 보니 원래 했던 자료(패턴 : 옷의 전개도)들을 최대한 활용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인지 경복궁의 대표적인 광화문, 근정전 보다는 왕과 함께 궁의 주인이었던 왕비와 관련된 건물들에 관심이 갔다.
가장 겉의 코트를 장식하는 문창살은 왕비의 하루를 시작하는 교태전의 문창살, 상의의 마름모꼴의 패턴은 낮 시간을 보내는 집옥재(서재)나 경회루(누각)의 문창살, 그리고 마지막은 하루를 마무리하는 처소의 꽃담 문양을 활용하고 싶었다. 가장 내밀하고 개인적인 공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피부에 직접 닿는 옷이면 더 좋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지막 아이템은 레이스로 된 블라우스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른 착장과 달리 문양을 직접 만들어 붙일 수가 없고 최대한 비슷한 문양을 찾아야 하기에 솔직히 가능할까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운 좋게 동대문 종합시장 B동 2층 레이스 구역에서 찾을 수 있었다. 프린트도 아니고 레이스 직조를 내가 한 디자인에 맞게 주문제작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인데, 비슷한 문양의 레이스 원단을 찾다니! 무언가 잘 풀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옷을 실제로 재봉해서 만드는 과정보다 이렇게 콘셉트를 발전시키고 스토리텔링으로 연결시키기 위해 경복궁을 뛰어다니고 동대문 종합시장에서 실현가능한 원단과 부자재를 찾느라 돌아다니는 데에 시간을 많이 쏟은 것 같았다.
패션공모전의 서류전형인 1차에는 보통 드로잉(스타일화)을 제출한다. 디자인한 착장을 그리고 완성작을 연상할 수 있는 원단과 소재개발한 조각, 부자재 등을 붙여서 보내는 것이다. 실제 옷이 아닌 상상할 수 있는 그림을 보내는 것. 그런데 학생 때도 1차를 통과한 적이 한번도 없기에 별 기대를 안 하고 있다가 이번에는 드디어 합격했다. 기쁨도 잠시 이제는 실제로 실물심사를 위한 옷을 만들어야 한다! 큰일 났다!
졸업 컬렉션으로 1년 동안 겨우 4 착장을 만들어 봤는데, 나 혼자 어떻게 옷을 만드나... 더 이상 패션디자인학과 학생도, 패션브랜드 직원도 아니기 때문에 재봉을 할 곳이 없었고, 전문 재봉 선생님과 소통하고 할 시간도 없었다. 메인 소재를 네오프렌 원단으로 정한 것도 솔기처리(가름솔, 오바로크, 접어박기, 통솔 등등)를 별도로 하지 않고 그냥 가위로 잘라도 마감이 되기 때문이었다. 그냥 원단과 원단을 이어 붙인다는 생각만 하고 정말 간단한 기능이 있는 홈미싱을 사서 퇴근하면 울며 겨자 먹기로 만들었다.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정말 울면서 재봉을 했다. 2차를 통과할지도 모르는데 시간과 공을 들여 실물을 준비해야 하는 것이 공모전에서 제일 힘든 과정인 것 같다.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나중에는 시간이 모자라 평일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동대문 종합시장을 들락날락 거리며 원단과 부자재를 사고 소재개발을 하면서 할 수 있는 수준에서의 완성을 하고자 했다. 그렇게 제출하는 새벽까지 재봉을 하다가 나중에는 마무리가 덜 되었지만 거의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내 순서 될 때까지 손바느질로 하지 뭐‘ 이런 생각으로 일단 실물심사장으로 이동을 했다. 실제로 모델에게 입히기 전까지 바느질을 했었다.
내가 디자인 한 옷도 일상복 치고는 상당히 튀는 옷이었지만 공모전에 출품한 다른 옷들에 비해서는 많이 평범해 보이는 편이었다.(쇠사슬과 탄환이 옷에 달린 친구도 있었고 그 옷도 너무 멋졌다.) 그래서 현장에 가서는 기가 확 죽어 조금의 기대도 싹 사라지고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옷도 겨우 완성하다 보니 프레젠테이션 보드를 따로 만들 시간도 부족해서 동네 인쇄소에서 A3 사이즈로 출력한 종이를 클리어파일에 넣고 페이지를 넘기며 보여드릴 수밖에 없었다. 심사위원 분들도 당황하셨을 것이다. 당시 노량진에서 살았기 때문에 문제집을 파는 서점 겸 인쇄소에서 프린트를 했는데, 사장님께서 시험지를 복사하고 지원서를 출력한 적은 있지만 이런 것(디자인 포트폴리오)은 처음 인쇄한다고 말씀해 주셨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면접장에 들어갔을 때 착장 자체에는 큰 자신이 없었지만, 디자인과 재봉보다 리서치와 콘셉트 발전에 더 많은 시간을 쏟았던 만큼 이를 설명하고 싶은 마음은 컷기에 ‘한국을 대표하는 랜드마크로부터 왕이 입는 곤룡포를 현대적인 패턴 플레이로 새롭게 변주하고 싶었다.’, ‘수평의 공간에 펼쳐진 첩첩이 둘러싸인 궁궐의 수직적인 위계를 옷을 벗는 행위를 통해 건물의 안으로 들어가는 입체적인 경험을 제안한다.’, ‘3 layers의 옷에 장식된 패턴은 궁궐의 문창살이며 밖에서부터 안에 있는 건물들에서 차용을 해왔기에 ‘옷을 벗을수록 궁궐의 안으로 들어간다.’라는 개념을 전달하고 싶었다.’, ‘특히 왕이 아닌 궁궐의 다른 주인인 여인들의 하루를 연상할 수 있는 각기 다른 문창살을 각 아이템에 반영하였다.’ 등의 설명이 하니 심사위원들께서 귀 기울여주시는 느낌을 받아 감사했다.
모든 분들의 면접이 끝나고 수상자 발표가 시작되었다. ‘입선만 하자!’는 요즘에도 공모전에 임할 때에 늘 잊지 않는 나의 바람이자 다짐인데, 입상과 장려상이 지나도 내 이름이 불리지 않아서 ‘이건 뭐지...?’ 싶었다. 내 디자인이 이래도 되나 싶으면서도 욕심이 커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동상과 은상이 지날 때까지 호명되지 않았기에 뭐가 잘못되었나 싶을 때, 마치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처럼 대상과 금상을 앞둔 2명의 후보 중 한 명으로 지명되어 시상대에 서게 되었다.
진선미 후보를 세워두고 하는 짓궂은 질문처럼 누가 되었으면 좋겠느냐 같은 문답이 오고 갔던 것 같은데 뭐라 대답했는지 안 나지만, 대상의 영예는 더 훌륭한 디자인으로 많은 공감을 받은 분께 돌아가고 나 역시 금상의 영예를 차지하게 되었다.
어떤 상을 받았는지 자체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전통과 관련된 조사를 한 뒤 이를 디자인으로 풀어내고 스토리텔링하는 것을 나는 너무나도 좋아하는구나.’를 깨닫게 된 귀중한 계기가 되었다. 생각해 보니 나는 어렸을 때부터 전통과 관련된 것을 좋아하는 아이였는데. 신라·고구려·백제로 볼펜 디자인도 해서 엄마 아빠에게 보여주고 그랬는데. 고등학교 때는 토요일 오전 수업이 끝나면 자전거 타고 국립경주박물관에 가서 놀다 오는 게 일상이었는데. 학창 시절을 지나 직업군인을 하다가 정작 디자인을 배우면서는 그런 것들을 다 까먹고 있었네. 라며 반추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전통에서 영감을 받아 궁궐과 박물관을 벗어나 일상에서도 마주치는 것들을 다시 디자인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된 공모전이었다. 그렇게 코래픽(KORAPHIC)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