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6펜스를 읽고
프랑스어로 ‘여행자’의 뜻을 가진 보이저 1,2호는 1977년 처음 발사된 이후 쉼없이 암흑의 공간을 비행하여 현재(2018년 기준) 지구로부터 각각 약 216억 km, 178억 km의 거리에 위치해 있으며, 인류의 창조물 가운데 지구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다. 지금도 보이저호 자매는 초속 17km의 속도로 우주 공간 속에서 비행하며 매시간 우주 역사를 새로 쓰는 중이다. 이 여행자들은 자신의 안락한 보금자리이자 고향인 지구로부터 영원히 멀어져야만 하는 숙명에 처해 있다. 광막한 암흑의 공간은 이들에게 자신만이 알고 있는 신비한 비밀을 하나 둘 풀어헤쳐 놓으며 이따금씩 초월적인 힘을 과시하기도 한다.
달과 6펜스의 주인공이자 폴 고갱의 모델인 스트릭랜드의 삶의 궤적 역시 이 여행자들과 매우 유사하다. 그는 광적인 창조적 본능에 영혼을 지배당한 나머지 자신을 둘러싼 모든 안정된 세계를 거부한 채 예술적 혼을 불태운다. 교양 있는 아내와 잘생긴 아들딸을 둔 화목한 중산층의 가장이지만 어느 날 알 수 없는 무언가에 홀린 듯 그림을 그려야겠다는 일념 하나로 가족을 버리고 프랑스로 떠나버린다. 영국에서 프랑스, 그리고 그곳에서 그의 인상파식 화풍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는 타히티에서 숨을 거두기까지의 이 숭고한 예술가의 서사는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남긴다(타히티는 스트릭랜드의 고향 영국으로부터 거리상 자그마치15,000km 떨어져 위치해 있다. 지리적 관점으로 보면 자신의 고향에서 거의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곳이다).
스트릭랜드에게 있어 세인들이 중히 여기는 세속적 가치들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금전적 이익에 무관심했고, 하루종일 굶는 일이 일상이었으며, 하루 묵을 곳이 없어 길거리에서 자는 일이 흔했고, 죽을 때까지 평생 영양결핍에 시달려야만 했다. 그는 사랑에 있어서도 매우 무관심하고 비인간적인 태도를 취했는데 이는 스트로브의 아내를 향한 모습에서 매우 잘 드러난다. 자신의 은자였던 스트로브의 아내를 빼앗은 것도 모자라 급기야 그녀를 끝내 죽음에 이르게 한 책임을 지고서도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뿐더러 사과 한마디 하지 않는 극도의 뻔뻔함과 파렴치함을 선보인다. 예술적 걸림돌이자 자신의 정신 영역을 마비시키는 모든 것들을 혐오하고 배척했다. 스트릭랜드의 영혼 속에는 오로지 악마적 광기에 휩싸인 창조의 본능만이 자리했을 뿐이다.
그는 자신의 고향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타히티에서 문둥병에 걸려 눈이 멀어버린 채 그토록 염원해왔던 걸작의 완성을 끝마치고 난 뒤 숨을 거둔다. 아마도 세속의 모든 것을 거부한 채 오직 내면의 어두운 욕망에 필사적으로 매달려야만, 보이저호가 지구로부터 멀어질수록 우주의 실체와 가까워지듯 모든 현실 가치를 부정하며 그것이 인간성의 상실을 의미할지라도 본래의 자신과 이상적 염원과의 공간을 무한히 확보해야만 거룩한 자신만의 작품을 완성할 수 있음을 깨달았던 것이 아닐까. 스트릭랜드의 이 염원은 6펜스의 세계를 떠나 달빛 세계로의 여행을 멈추지 않았고, 보이저 호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고향 6펜스의 행성을 벗어나 달빛 우주로의 여행을 멈추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