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이 온통 숫자로 도배된 세상이다. 유치원부터 시작해 대학을 거쳐 여러 직업을 얻기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과정은 수에 묶여 있다. 학생으로선 시험에서 최대한 높은 점수를 획득해야만 원하는 대학에 진학할 수 있고 직장인이나 프리랜서는 성과와 매출 증대에 관심을 쏟고 최대한 이 숫자를 끌어올려야만 시장에서 생존할 수 있다. 어떤 분야를 막론하고 이러한 순위 매기기는 우리의 일상에 뿌리내렸고 당신이 차지한 1등,2등, 3등의 등수는 그 집단 속에서 당신이 어떤 존재이고 얼마만큼의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는 것인가를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 한걸음 더 나아가 이 척도는 우리 모두를 불편하게 만들지도 모르는 연봉이나 직업, 부동산과 같은 일상적 요소들의 수치를 아울러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 숫자들의 총체는 사회 속에 형성된 하나의 데이터로써의 당신을 완벽히 규정하기에 이른다.
인간은 필요에 따라 숫자를 발명하기 시작하였고 이것은 세상(과학)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수단이었다. 숫자, 문자, 쓰기를 발명하고 사용함에 따라 사피엔스 개체의 뇌 용적을 훨씬 초과하는 무수한 지식과 정보를 효율적으로 저장할 수 있게 되어 후대에게 수많은 지식을 계승할 수 있었고 찬란한 문화, 문명, 국가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었다. 인간은 숫자 없이는 살 수 없게 되어버렸다. 하지만 인간 문명을 끌어온 수의 발견이 이제는 개인에게 필연적 고뇌와 고통을 야기하게 되었다. 사적 모임에서 오늘이건 내일이건 오고가는 무수히 많은 대화 주제들. 연봉은 얼마 올랐고, 인센티브는 얼마이고, 부동산의 시세와 몇 평인지, 자동차의 시세, 입고 있는 옷의 브랜드의 가격이 모두의 관심을 끌어당긴다. 유튜브 조회수와 좋아요에 집착하고 진정한 친구를 사귀기보단 인스타 팔로워 수에 더 신경을 쏟고, 가사의 의미도 숙지하지 못한 채 음원 차트의 1위만 골라서 듣는 것이 현대인의 일상이다.
하지만 위에 열거한 수많은 측정과 측량의 사례를 제쳐두고 정작 가장 중요한 요소들은 숫자로 체계화하기 어렵다는 것이 문제다. 공감, 배려, 칭찬, 양보, 봉사 등을 망라한 인간으로서 끊임없이 주고받아야 할 선행적 사례들을 측정하는 단체나 기관은 존재하지 않는다(물론 간혹 기부 선행 사례와 기부금액이 알려지는 경우도 드물게 있다). 이 세상은 눈에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로 구성되어 있다. 인간에겐 눈에 보이는 것만큼이나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의 가치는 매우 중요하다. 오늘도 수많은 학자들이 간절히 손에 넣길 원하는 행복을 어떻게 측정할지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사례를 보라. 숫자로 나타낼 수 없는 것들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너무 표면적 가치에만 집착하진 않았는지, 한 인간으로서 정말 집중해야 할 것과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자신만의 가치와 개성으로 숫자의 공간을 메워나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고민해야 할 시점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