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과의 저녁 식사 자리에서 아버지가 유독 기분이 좋아 보이셨다. 이유는 이른 점심에 아버지가 근무하고 계신 학교로 느닷없이 아버지를 찾아온 한 명의 귀인 때문이었다. 훤칠하게 큰 키에 양복을 빼입으신 분이 마스크를 쓴 채로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며 반갑게 다가왔는데 알고 보니 큰아버지의 친구이자 아버지와도 어린 시절(약 40년 전) 함께 자주 어울려 다녔던 친한 형으로 밝혀졌다. 두 분은 점심을 같이하며 오랫동안 서로 묵혀두었던 많은 이야기를 꺼내며 좋은 시간을 보냈다고 하셨다.
큰아버지와는 연락을 주고받으며 간간이 낚시 모임도 다니고 있었는데 아버지와는 고등학교 시절 이후에는 특별히 만남을 가졌던 적이 없었다. 마침 그분이 아버지의 근무지 근처로 이사를 오게 되면서 문득 그리웠던 친한 동생의 얼굴이 떠올라 깜짝 방문하셨던 듯하다. 이 방문이 어찌나 반가우셨는지 식사를 다 끝마치고도 장장 20분이 넘도록 어머니와 나는 그분들이 간직한 어린 시절의 유대, 추억의 역사를 들으며 애써 공감해야만 했다.
문득 보고 싶은 얼굴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어릴 적 동네에서 함께 운동하거나 놀러 다니곤 했던 친구, 형, 동생이 그리워졌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학년이 올라갈수록 연락이 조금씩 뜸해지기 시작하더니 대학을 진학한 이후로는 각자의 살길이 바빴던 모양인지 아니면 연락이 귀찮았던 모양인지 아예 생사조차 모르게 되어버렸다. 아마 서로 먼저 연락하기가 쑥스러웠던 게 아닐까(나의 경우는 확실히 그랬다).
사실 아버지의 이야기에 지루한 표정을 드러내며 애써 듣는 척하는 모습을 취했던 건 두 분의 이야기가 몹시 부러워서 그랬을 것이다. 나는 과연 10년, 20년, 30년이 지나서도 추억 속에 남아있는 그립고 보고 싶었던 얼굴을 찾아가 먼저 반갑게 인사를 건넬 수 있을까? 아니면 시간이 흐른 뒤에 잊고 지냈던 고마운 얼굴들이 나에게 찾아와 서로 악수하게 될 날이 올까?
한편으로는 이런 의문도 떠오른다. 그들이 나를 보고 싶어 찾아오게 될 것을 기대할 만큼 나는 그들에게 따뜻하고 인간적인 사람이었나? 이제는 적당한 때에 그들이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먼저 나서서 그들의 안부를 물어보려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지리도 못난 나의 곁에 현재 머무르고 있는, 또 앞으로도 머물러줄 이들의 고마움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을 것이며 이들에게 죽을 때까지 베풀고 싶다. 그리운 얼굴들로 겹쳐진 만큼이나 보름달이 유난히 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