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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패커 에지 Oct 23. 2022

[중국기행] 꿈의 길 실크로드의 시작

청해성 청해호(青海湖qinghaihu), 일월산(日月山riyueshan)

새벽부터 서둘러서 비행기를 타다 보니 피곤함에 다크서클이 무릎까지 오는 것 같았는데 칭하이성의 성도인 시닝(西宁xining) 공항에 내리니 선선한 공기가 기분이 좋다. ‘여름이 덥다.’를 계속 이야기하다가 시원한 온도에 시야도 깨끗한 곳에 도착하니 기분이 좋아지는 건 당연하다. 

쨍한 하늘과 닭인지 봉황인지 모를 구름모양에 선선한 공기까지 여정의 시작이 좋았다. 

그런데 웬걸 차로 이동을 할 때는 잘 모르다가 내려서 걸음을 옮기면 뭔가 휘청거리는 이상한 감각이 느껴지는 걸 보면 역시 고산 지형이구나 싶다. 어지럼증과 비슷한데 몸과 머리의 뇌가 시차를 두고 움직인다고 할까 재미있는 현상이긴 한데 이전에 몇 번 고산을 다녀와서 경험이 있다 해도 그 느낌에 대한 경험일 뿐 몸이 적응하는 데는 여전히 시간이 필요하고 특히 이번은 가족과 함께 하는지라 적응 전까지는 일정을 느긋하게 가는 게 좋을 듯하여 이동거리에 문제가 없는 한에서 첫날은 무리하지 않고 칭하이호 정도만 천천히 보기로 한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가이드를 끼고 여행을 하는데 특히 외국인의 경우는 가급적이면 가이드를 고용해서 진행하는 것이 좋다. 코로나 이슈가 아직 없어지지 않아서 지역 이동할 때마다 트러블이 있을 수 있고 코로나가 아니더라도 이 지역은 군부대도 있고 환경 보호구역 등의 민감한 사안이 있어서 불필요한 시간을 길이나 대기하면서 버리고 싶지 않다면 미리 가이드와 일정이나 자신이 중점적으로 생각하는 바를 잘 조율하는 게 좋다. 

덧붙여서 단체 여행은 비용면에서 장점은 있지만 아무래도 여러 가지가 불편할 수밖에 없다. 함께 하는 사람들을 배려해야 하는 것도 그렇고 그러다 보니 의사 결정에 있어서도 시간이 많이 걸리기도 하고 실크로드를 따라가는 장거리 주행이 필요한 경우는 무엇보다도 소형 버스나 대형 차량은 시속 100km로 제한이 있기 때문에 결국 길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질 수밖에. 


고산으로 인한 두통으로 약을 먹은 효과가 있는지 조금씩 괜찮아지면서 차량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눈에 들어오면서 그야말로 파란 하늘과 그림을 그린듯한 구름에 그냥 미소가 지어진다. 중국 국가주석인 시진핑이 21년 칭하이 방문 때 중국 유일의 마지막 남아 있는 깨끗한 동네라는 언급을 하면서 ‘칭하이는 생태 문명 분야에서 전략적으로 아주 중요한 곳’이라면서 칭하이 생태자원 보호를 위해 환경보호가 더욱 강조되는 지역이다 보니 20년간 비닐도 사용하고 있지 않다고 하고 조금 환경이 오염됐다 싶으면 그냥 출입을 폐쇄하는 등의 국가적인 노력도 하다 보니 그냥 깨끗하다. 창문을 열어 청장고원의 깨끗한 바람을 느끼면서 광고의 한 장면을 연출해 보려 하지만 은은한 고향의 똥 냄새에 다시 두통이 오는 것 같은 착각이. 두통약 한 알 더 먹을까? 


일월산(日月山riyueshan). 어디서 봤던가 싶은 익숙한 이름이다. 경북 영양에 있는 해와 달이 솟는 것을 먼저 바라본다 하여 이름 지어진 일월산도 있고, 좋아하는 무협지에 해와 달이 만나는 곳 혹은 해와 달을 동시에 바라볼 수 있다는 직접적인 의미 외에도 여자와 남자를 의미하는 음과 양을 상징하는 산의 이름 등으로 한 번쯤은 나옴직한 지명이다. 그러나 청해호의 일월산은 지리적으로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당나라, 토번, 당태종, 문성공주, 실크로드 같은 키워드를 알고 있으면 일월산을 좀 더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다. 지리적으로는 이곳은 중국과 티베트의 경계선이고 당번고도(唐蕃古道tangfangudao) 라고 불리는 당시 당나라 수도였던 장안(현재의 서안)에서 토번왕국(지금의 티베트 자치구)의 수도 라싸까지의 약 8000리 (300km)의 옛길의 거쳐가는 길이기도 하고, 서역을 넘어가기 위해서 실크로드로 갈 때 시닝, 일월산에서 실크로드로 가는 북쪽 길 그리고 칭하이호와 차카염호로 가는 남쪽 길로 갈라지게 된다. 

문성공주상 뒷쪽 좌우로 자그마한 언덕 같은 느낌의 일월산과 일월정. 그래도 일월산 입구 해발고도가 3520m 라니. 

그러다 보니 당나라 때 티베트 고원의 고대 왕국이자 강대한 국력을 보유한 토번국에 조공을 보내게 되는데 당태종은 딸인 문성공주를 다분히 정치적인 목적으로 송첸캄포 왕과 혼인시키기로 한다. 그렇게 토번국으로 시집을 가게 되면서 약 두달여간 당번고도를 따라가던 중 당나라 수도인 장안을 바라보며 머물렀다는 곳이 일월산이다. 

이 산을 지나갈때 산봉우리에서 고개를 들어 서쪽을 바라보니 고향(장안)을 떠나는 슬픔에 젖어 떠날때 황후가 하사한 '일월보경'을 꺼내보니 장안의 경치가 생각나 공주는 희비가 교차 하다가 실수로 '일월보경'을 떨어 뜨려 두 조각으로 되었다. 동쪽의 반쪽은 서쪽으로 향하여 지는 해를 비추고 서쪽의 반쪽은 동쪽을 향하여 떠오르는 달빛을 비추므로 일월산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서로 마주 보는 두 산봉이 해와 달을 의미 하며 지금은 정면에 문성공주상과 각 봉우리 위에 일정, 월정으로 일월정이 함께 만들어져 있다. 

그 시절 문성공주는 장안을 바라 보면서 어떤 기분이었을까

이게 역사적인 사실이라면 일월산 어디인가 그 고대의 거울을 찾는다면? 이런 의문으로 시작하는 게 우리가 모험심을 불태울 수 있는 인디아나 존슨 류의 영화 같은 이야기나 고고학이 아닐까? 상상력으로 시작되는 학문이라니 멋지구리구리한 듯. 이번 생은 현실과 타협하면서 회사에 자유를 위탁한 대신 월급에 감사함을 느끼는 평범한 직장인 1인이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영화의 시작의 한 장면에 들어온 것 같아서 괜히 기분이 업되는 느낌. 


이쯤에서 일월산 이야기가 정리되나 싶었는데 함께한 가이드는 오히려 이후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듯하다. 바로 문성공주라는 사람에 대해서 지금의 이곳 사람들이 생각하는 바는 단순한 정략적 결혼을 위해 온 당나라의 공주가 아니라 토번국에 방문한 여신으로 생각한다고 한다. 실제로 송찬칸포와 문성공주는 정략적 결혼으로 맺어졌으나 서로를 진정으로 위했으며 그로 인해 두 국가의 관계가 좋아진 것은 물론 문성공주와 함께 한 사절단을 통해서 방직, 의학, 농업기술도 전달하여 토번의 경제뿐 아니라 문화를 발전시키는데 크게 기여해서 토번 사람들은 문성공주가 죽은 뒤에서 사당을 세워서 기념하고 1년 내내 참배를 드렸다고 하니, 정략결혼이라는 운명에 순응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것을 오히려 자신의 능력으로 주변의 운명까지 주도적으로 바꾼 지금으로 말하면 성공적인 리더상의 여성이 아닌가 한다. 


일월산 너머에 있는 작은 마을 초입에도 '문성공주'상이 세워져 있다. 
좌우로 늘어선 식당 중 어디를 들어가도 비슷하다고 하니 너무 고민 말고 선택하는 게 좋다.

배도 출출하고 머 먹으면 좋을까 고민하던 차에 이 동네는 주로 회족(이슬람을 믿는 소수민족)과 장족(티베트족)이 많은데 란주 라면이 유명하다고 하길래 그걸 먹을까요? 했더니 웃긴 건 여기는 고산 지역이라서 면이 덜 익어 있는 느낌이 난다고 해서 굳이 목적한 바가 아니면 다른 것을 먹으라고 하는 가이드의 솔직함에 사진을 봐서 조금 익숙한 듯한 느낌의 마파두부와 야채볶음. 그리고 뭔가 좀 특별하지 않을까 생각한 야크 요구르트와 야크 수육을 시켜본다.  

야크 요구르트는 한번 먹어보기를 추천. 상상하는 맛과 비슷하지만 특유의 향이 의외로 괜찮다.
고기가 질긴 편이고 특유의 향이 있어서 강한 양념이 함께 나온다. 98 RMB (약 18,000원) 

야크 요구르트는 흔히 어느 정도 상상이 가능한 맛이라 하나쯤 먹어보면 좋을 것 같고 야크 수육은 생각보다 질긴 느낌. 마블링 가득한 소고기를 좋아하는 한국인의 입맛에는 조금은 실망스러울 수도 있어서 경험상 먹어 보는 정도면 좋을 것 같다. 

특히 야크 요구르트는 우유 20근으로 치즈 1근 정도 만들 수 있는데 이들은 마시는 차에도 넣고, 매일같이 주식에도 넣어서 끓여 마시고 해서 몸에서 특유의 냄새가 날 정도라고 하니 이들을 식습관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한번 꼭 먹어보면 좋을 것 같다.   


가게 안에서 서빙을 보는 아이가 너무 어려서 귀엽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했는데 이곳에서 생활하는 회족의 경우는 어릴 때부터 학교도 안 가고 가게일이나 수타면 기술 같은 걸 배워서 자신의 가게를 가지는 것을 목표로 삼고 생활한다고 하는 말을 듣고 나니 정말 용돈 받으려고 장난 삼아하는 게 아닌 어색하긴 하지만 짐짓 진지한 모습도 볼 수 있다. 귀여운 진지함?이랄까. 

허락을 받고 찍은 사진 한 장. 귀여운 표정으로 진지하게 일하는 모습이 멋졌던 아이. 다음에 또 보아요..
다 그렇진 않지만 혹여 이런 화장실을 들어가더라도 당연한 듯 사용할 줄 아는 담담함이 필요하다.

청해호(칭하이후)는 360km 둘레로 서울 7.5배 규모라고 하는데 마침 도착한 날이 뚜르뜨칭하이후  자전거 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직장 초년기에 프랑스에서 뚜르뜨프랑스의 강렬한 시합 구경을 했던 기억에 뭔가 자전거가 지나가는 시합의 모습을 볼 수 있을까 하는 기대도 했지만 차량 통제로 인해서 시합은 구경도 못하고 스텝 차량이나 잠깐잠깐씩 보이고 결과적으로 너무 막혀서 한동안을 도로에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예상치 못한 일이라 가이드가 미안해하는 모습이 보였지만 어차피 오늘은 느긋하게 고산도 적응하는 게 목표여서 마음이 오히려 편하다. 

갑자기 눈에 확 들어오는 청해호 입구 표시


매년 7월 말~8월 초 청해호 국제사이클대회가 개최되니 자전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일정 참조하면 좋겠다. [사진출처] 바이두 검색. biketo.com 
대회여파로 차량이 막혀 있지만 외부인만 조급하지 현지인은 느긋하게 기다리는 편이다. 

느긋하게 기다리며 이런저런 대화 중에 야크 이야기가 있었는데, 새끼를 키워서 팔 때까지 7년 정도가 걸리는데 판매는 약 1만 RMB 정도에 판매가 된다고 한다. 요즘 환율로 따지면 200만 원이 조금 안 되는 금액. 지금 시기가 (7~8월) 털갈이하는 시기라서 볼품이 없긴 하지만 양 한 마리에 1200~1300 RMB에 비하면 이곳 사람에게는 엄청난 재산으로 인정받는다고 한다. 

털갈이 중인 야크. 이들의 생활에는 야크를 빼놓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그 금액적 가치만큼 야크의 모든 것은 버릴게 하나도 없이 유용하게 활용한다. 요구르트도 만들고 고기도 당연히 먹고 노동력도 제공하고 똥도 연료로 사용하고. 그중 특이한 것은 털로 텐트를 만들기도 하는데 비가 오면 털이 붙어서 비를 막아주고 평소에는 통풍이 잘 돼서 아주 비싸게 판매가 된다고 한다. 그 텐트 하나 있으면 장족들 사이에서도 부자라고 생각해서 결혼할 때 남편이 이런 텐트 하나 있으면 재벌급 사윗감이라고 하니, 우리 할머니 시골 동네에 지어진 여유 있는 서울 사람의 별장 같은 느낌? 혹은 캠핑장에서 비슷비슷한 텐트들 사이에서 한눈에 보기에도 가격대가 엄청난 위용의 럭셔리 텐트를 보았을 때 느끼는 감정과 좀 비슷하려나?  

청해호 주변에 자유롭게 방목 중인 양 떼.

암튼 이들은 유목을 주로 하는 민족답게 여름, 겨울 목장이 다르고 텐트가 집인 생활을 하면서 야크 고기나 양고기가 주식이라고 한다. 캠핑을 즐겨하는 1인으로 야외에서의 생활이 하루 이틀이야 멋지고 자유로워 보이기도 하지만 여름, 겨울 텐트를 옮겨 다니고 방목하는 양과 야크를 관리하면서 야외에서만 사는 삶이 어찌 자유롭기만 할까? 최근 들어 이들은 양, 야크를 통해서 벌어 들인 돈으로 도시에 집을 사는 이도 늘고 있지만 여전히 티베트 불교 사원에 많이 공양하고 행복해하며, 먼 훗날 꿈으로 오체투지를 해서 티베트 라싸까지 가는 게 꿈이라고 하니 이들의 정신과 신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좀 더 시간을 들여 많은 공부가 필요할 듯하다. 


이런 평화롭고 정신의 성숙(?)을 생각하면서 숙소로 향하는 길에 차량 냉각수 경고등이 뜨길래 보니 호스가 파열돼서 냉각수가 새는 바람에 차가 더 나아갈 수 없는 상황에 가이드와 함께 휴대폰을 봐도 신호가 잡히지 않고 주변에 시설도 없고. 어쩌지 가이드와 함께 고민하고 짜증이 살짝 오르고 있는데 애들은 평화롭게(?) 사진 찍으면서 웃고 놀고 있더라. 그야말로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 티베트 속담이 딱 생각나는. 사실 내가 머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가이드님만 믿어 보고 여유 있게 내려놓고 쉬었다.   

머리도 어질어질한데 한참을 내려가거나 올라가야 할 것을 다행히 주변 텐트에 사람이 있어서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다행히 주변 텐트에 사람이 있어서 가이드와 함께 오토바이를 타고 신호가 잡히는 곳으로 가서 헬프 쳐서 우리는 다른 차량으로 숙소까지 오고, 그 차량도 잘 수리해서 도착했다는 소식까지 듣고 나니 그제야 마음이 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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