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난성(云南 ) 리장(丽江) 나시객잔 - 차마객잔 구간
천금을 주어도 아깝지 않은 뷰. 힐링이 필요하다면 반드시 이곳에서 일몰과 일출을 즐겨보자
아마도 사회생활을 하면서 일도 제법 손에 익을 무렵이었다고 생각된다. 이전에 부장님 같은 분들이 주말 워크숍을 등산을 하자고 하면 한숨부터 나왔었는데, 이즈음은 자연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등산도 나쁘지 않네 정도 생각 하던 때였다. 우연히 돌려본 채널에서 딱 보기에 정말 재미없어 보이는 차마고도라는 이름으로 다큐멘터리를 방송하고 있었다. 할 일이 없었던지 평소 같으면 보지 않았던 것을 그날따라 무슨 변덕이었는지 열심히 본 기억이 난다. 그때의 나의 감정이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나중에는 아쉬운 맘에 서점에 가서 책까지 사서 읽었으니, 꽤나 흥미롭고 인상 깊었던 것 같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차마고도라는 단어가 기억에서 잊혀질 때 즈음 중국을 오게 되고 이곳에서 윈난성 이야기를 듣고는 차마고도의 시작 정도 되는 곳에 차마객잔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건 운명이지 라는 생각에 찾아가게 되었다. 사실 KBS 다큐멘터리에서 방영된 그리고 잘 알려진 역사 속의 차마고도라고 함은 말 그대로 차와 말이 오가던 오래된 상업도로를 의미한다. 중국 남부 윈난성과 쓰촨성에서 생산되던 차와 티베트의 초원지대에서 생산되던 말의 물물교역을 위해 왕래하던 길이 바로 차마고도인 것이다. 윈난, 간수, 칭하이, 티베트까지 아우르는 거대한 길이다 보니 방송에서도 타이틀이 '세상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아름다운 천상의 길, 5000km를 가다'의 어마어마한 단어를 사용했다. 실크로드 보다도 오래된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교역로다 보니 역사적인 의미가 더 강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이런 천상의 길인 차마고도가 시작되는 곳에 있는 트레킹 코스가 바로 호도협트레킹이라는 이름으로 밀포드트레킹, 잉카트레킹과 함께 영국 BBC가 선정한 세계 3대 트레킹코스로 분류되기도 한다.
호도협 트레킹은 윈난성의 옥룡설산(玉龙雪山, yùlóng xuěshān , 5596m, 영문명 : Jade Dragon Snow Mountain)과 합파설산(哈巴雪山 , hābā xuěshān , 5396m, 영문명 : Haba Snow Mountain) 사이 금사강(金沙江, jīnshājiāng) 이 있고 이를 따라 거대한 협곡을 따라 걷는 길로 실제로는 27km 정도로 1박 2일의 비교적 짧은 트레킹 코스다.
세계적으로 유명하다고는 하지만, 세계 3대 10대 이런 건 사실 정하기 나름이라 크게 의미가 있지는 않고 다만 방송의 영향이라는 게 참 크다는 게 이전에 윈난성, 리장이라 하면 주로 샹그릴라 같은 고성 관광이나 옥룡설산, 송찬림사가 좀 더 강조되고 유명했다고 하면 차마고도 다큐멘터리나 신서유기 같은 예능 프로그램의 소개로 인해서 한국여행객들 특히 트레킹이나 등산을 즐기는 한국분들이 많이 찾기 시작하면서 나시객잔 - 차마객잔 - 중도객잔 - 관음폭포 구간 객잔에서의 숙박과 트레킹이 혼합된 관광상품으로 개발이 되었다고 보는 게 맞을 듯하다.
실제로 중국인은 객잔에 방문하여 숙박을 하기는 하지만 비율로 보면 트레킹 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한다. 친분이 있는 중국친구가 그곳을 걷는데 시간을 할애하고 일정을 짜는 것을 보고 시간낭비라는 이야기를 했으니 오히려 짧은 일정 효율적인 윈난 리장 여행을 위해서는 굳이 이곳을 방문할 필요가 없다는 게 설득력은 있다. 그러나 우리는 지형의 70%가 산악지형으로 등산의 민족이 아니던가. 당연히 가야 할 길이라 생각하고 가족을 설득했다. 다큐멘터리에서 나온 것처럼 차마고도 그 먼 길, 험한 길이 아니라 호도협 주변으로 나 있는 옥룡설산을 배경으로 한 평온한 객잔길은 차마고도의 초입 정도에 불과하고 높이가 있긴 해도 28 밴드 구간을 제외하고는 가족이 함께 걷기 좋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매표소에서 입장권 구매 하면 나시족마을에서 부터 트레킹이 시작되는데 우리가 갔을 때는 아스팔트 구간에 공사가 많아서 차량 통행이 빈번한지라 바로 나시객잔에서 트레킹을 시작하자는 가이드의 의견에 동의하고 차량을 이용해 바로 나시객잔에 도착하였다. 해발 2250m의 나시객잔에 도착하니 우리네 시골집에서 볼 수 있는 익숙한 광경이 펼쳐진다. 옥수수도 말려 놓고 손님이 와도 약간은 무심한 모습으로 부족한 중국어로 이야기를 해도 들어주려고 하며 음식을 내오는 모습이 고향집 삼촌, 이모같이 친근하게 느껴진다.
음식은 주로 한국사람입에는 볶음밥이나 감자요리를 추천하긴 하는데, 생각보다는 이들이 먹는 음식도 우리 입맛에 잘 맞으니 다양하게 먹어보는 게 좋겠다. 메인으로 닭백숙을 시켰는데 함께 나온 중국인들이 식사 때 반찬처럼 먹는 토마토계란 볶음, 오이무침, 찐 호박이 모두 괜찮았다.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출발하기에 앞서서 오르막길이 많은 28 밴드까지 말(당나귀)을 타고 갈지 그냥 걸어갈지 약간의 호객행위와 함께 묻길래, 걷는 시간이 줄어드는 아쉬움은 있겠지만 말을 타고 산길을 가는 경험도 새로울 것 같아 타고 가 보기로 했다.
말을 타고 보니 생각보다 높이가 있어서 고삐를 쥐는 손이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간다. 애들이 무서워할까 걱정했는데 오히려 애들은 재미있다고 좋아하는 걸 보니 경험측면에서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뒤뚱 거리며 가는 말 (당나귀) 위에서 흔들흔들 풍경을 살피면서 가니 한량이 된듯한데 오르막을 오를 때 특히 돌을 밟고 올라설 때 앞서간 놈들의 배변물에 미끄러지는 건 아닌지 힘겹게 발걸음을 옮기다가 균형을 잃으면 그대로 떨어지는 게 아닌지 상상을 하니 긴장을 끝까지 늦출 수가 없었다.
28번 굽이쳐 올라가는 28 밴드 정상에 올라 말에서 내리고 나니 말에게 미안한 마음도 있고 그래도 이걸로 돈을 버는 나시족에게는 잘한 거 같고 여러 가지로 복잡한 마음이 있었지만 경험의 측면과 걸을 때 똥을 피해 가는 수고스러움을 피했다는 것은 분명 비용만큼 만족스러운 선택이었다.
2100m에서 2760m까지 급히 오르는데 필요한 체력은 당연히 세이브돼서 남은 체력으로 차마객잔까지의 거리는 완만한 내리막이라 주변풍경도 보고 사진도 찍고 여유롭게 걸을 수 있어서 감탄도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면서 갈 수 있었다.
드디어 도착한 차마객잔. 올드하면서 친숙한 느낌이지만 새로 확장하여 지어진 객잔 신관은 깔끔하게 되어있고 나름 화장실과 전기장판이 있어 약간의 불편함만 각오한다면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다. 식당동 안팎으로 볼 수 있는 수많은 낙서에는 한국어가 많아 반갑기도 하고 읽는 재미가 있다.
이곳이 왜 이렇게 사랑을 받고 있느냐는 옥상 테라스에 올라 풍경을 바라보면 저절로 알게 된다. 눈앞에 보이는 거대한 설산 사이로 보이는 푸른 하늘 그리고 휘둘러 뿌려져 있는 구름은 장엄하면서도 포근한 느낌으로 대자연속 심신의 진정한 힐링을 할 수 있도록 해주고 이곳에 등을 기댈 의자 하나만 있으면 세속의 물질의 풍요로움이 하나도 부럽지 않다. 다만 이런 곳을 하루만 묶고 다시 가야 할 길을 가야 하는 사실이 아쉬움을 넘어 잔인하게 느껴져서 혹여 다음에 조용히 혼자 찾게 된다면 며칠 묶으며 현실의 스트레스를 한 줌도 남기지 않고 털어내리라 다짐했다.
저녁은 오골계 백숙. 방목에 가깝게 키우는 오골계를 재료로 백숙을 하여 김치와 함께 먹으니 그 맛이 일품이다. 일반 백숙보다 구수한 국물 맛에 방목으로 인한 근육이 살짝 질긴듯한 느낌을 주긴 하지만 반대로 씹을수록 고소함이 올라와 이곳 중국의 시골에서 뭔가 익숙한 울 할머니가 만들어준 한국의 토종닭맛을 느낄 수 있달까?
숙소에 들어와 간단히 샤워하고 미리 켜놓은 전기장판에 누워보니 등 따시고 배부르고 창 밖으로 설산의 풍경이 눈에 들어오고 코끝 살짝 시린 고산의 상쾌하면서 시원한 공기까지 하아 이게 진짜 천국이구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