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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패커 에지 Mar 01. 2023

[일상에세이]그냥 놔두면 그냥 되는 일은 없다

회사일을 막 배워갈 때즈음 풀리지 않는 문제를 가지고 막막하게 속 태웠던 적이 있다. 원인이 뭔지도 잘 모르겠고 하다 못해서 어디에서 해결을 해 줄 수 있는지도 모르는데 이름은 내 이름이 올려져 있어 애타는.

그럴 때 과장님이 지나가면서 그런 건 그냥 놔두면 시간이 해결해 주는 거야. 그냥 기다려봐.

머 사실 방법도 모르고 원인 분석도 못하는 레벨의 내입장에서는 어떻게 해도 선배들에게 요청을 청할 방법 밖에 없는데 그냥 놔두라니. 아 이제 시간이 지나면 혼이 닐수도 있겠구나 하고 마음 졸였는데 이게 왠 걸 시간이 지나니 정말 그냥 해결이 되었다.

내가 맡은 부분과 연계된 부분의 담당자가 해당 부분의 오류를 알고 고침으로서 그냥 나는 가만히 있으니 고쳐진 결과다. 그 당시 그 선배의 혜안이 놀라웠고 저것이 바로 직장인의 바이브다 싶어서 약간은 한량 같은 선배를 존경했다.

알고 봤더니 그 선배가 이슈를 유관부서에 그거 한번 그쪽에서 봐줘야겠다고 이관시켜 줘서 정리가 된, 정말 일의 본질을 꿰뚫는 선배였던 거다.


지금은 어느덧 직장생활도 횟수로 두 자리 숫자가 넘어가고 그 앞자리가 다시 변해가는 동안 나름의 짬도 생겼고 일을 만들고 진행하고 해결책을 낼 수도 협상을 통해 밀당을 할 수도 있는 경험을 쌓았다. 그런데 사실 아직도 혼란스러운 일이 오고 일에 일이 더해서 오게 되면 손발이 어지러워지고 머리가 돌고 내일 그냥 바다나 보러 가서 깡소주나 한 병 마실까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경험은 쌓였지만 굳은살이 조금 낀 것뿐 아직도 갈길이 멀었다.

그런데 일이 풀리지 않을 때 어떻게든 방법을 찾든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을 찾건 협의를 하건 해야 할 때라고 판단되는 문제를 맞닥뜨렸을 때 이 문제는 지금 당신이 해야 하는 일이다라고 담당자에게 이야기를 해주니 그냥 놔두면 시간이 해결해 준다고 마치 자신은 관계없는 듯한 3인칭 화법을 쓰는 담당자 말을 들으니 갑자기 상황이 오버랩이 되기 시작한다. 무능력함과 무책임함의 콤보를 교묘히 세치혀로 구렁이 담넘어가듯 넘긴다고나 할까. 분명 같은 말인데 사람에 따라 이리 다른 내용이 될 줄이야.


사실 감정과 관련된 사랑 슬픔 이런 걸 제외하고는 일이란 것은 시간이 지나서 그냥 해결되는 일은 없다.

분명 누군가는 그 일을 하고 있는 거고 태평한 담당자는 결국 묵묵히 챙기는 누군가 덕분에 어부지리로 하고 마치 그게 이게 다 경험이야 라고 이야기 하는 표정을 짓는다. 이런 사회적인 이치를 깨닫게 되면 말하기도 치사해서 속앓이 하고 또 그러다보몀 성과까지 짐짓 자신이 한 것처럼 숟가락 엊는 경우가 발생하고 억울함과 혹은 화를 참고 또 바보처럼 일을 하고 이렇게 몇 차례 빈복을 하면 남은 건 폭식에 의한 고지혈증과 술로 인한 지방간 같은 상처뿐인 질병을 안고 회사와 멀어지게 되는 경우가 많다.

회사는 나를 몰라준다. 누구는 입으로만 일한다. 이렇게 불만하는 동료나 후배를 보면 이전에는 그건 네가 잘 몰라서 그렇다 다 각자의 자리에서 이렇고 저렇고 조언을 해주었는데 실제로 월급루팡 같은 매일같이 출근하면 놀 것, 챙겨 먹을 것만 생각하고 무슨 통달한 사람처럼 짐짓 멋진 척 이런 건 시간이 해결해 주는 거야라고 자신의 일을 스을쩍 발로 밀어 넘기고 잘못은 그건 저쪽에서 안 해주니까 뭐 방법이 없었다는 식으로 책임도 전가하는 사람들을 몇 번 대면하고 나니 이전에 조언해 준 후배들 다시 찾아가서 아니다 너희가 맞았네라고 꼭 이야기해주고 싶다.

시간이 흐르면 자연히 해결될 거야 라면서 느긋하게만 있는데도 이제까지 그렇게 자연히 된 일들이 있었다면 그건 정말 누군가가 혹은 시스템의 어디에선가 진행을 하는 무언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당연히 그러한 것처럼 누군가 해 줄 것을 기대하지 말자. 머 능력이 안된다면 최소한 누군가에게 솔직한 도움을 청해서 박수도 그 사람이 받게 배려라도 하자. 정말 그것도 안된다면 좀 미안한 맘이라도 가지자. 제발.


그리고 너무 도덕책 스럽지만 주변에 묵묵히 일하면서 마치 자연스럽게 그렇게 흘러가게 혹은 유지하도록 만드는 동료나 친구, 혹은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술한잔 하거나 혹은 센스있게 커피한잔 이나 박카스라도 건네드리면서 무심히 툭 한마디 던지자. ”덕분입니다“


하아 그렇게 돌아보니 울 집이 그리 깨끗한 건 우리 마눌님 덕분이었겠구나 싶다. 집에 가는 길에 좋아하는 치즈케익이나 하나 들고 가야겠네.


우리의 자유가 그랬듯 그냥 만들어지는 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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