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둥성 주하이 봉황산 珠海 凤凰山
중국 광둥성 남단, 마카오와 국경을 맞댄 해안 도시 주하이(珠海)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깊고 특별한 매력을 지닌 곳입니다. 로맨틱한 해변과 도시의 활기 속에 숨겨진 진짜 주하이를 찾고 싶었습니다. 그 여정을 시작한 곳은 바로, 도시 한가운데 있는 봉황산(凤凰山)이었습니다. 봉황산의 길은 푸투오사(普陀寺)라는 아름다운 사찰에서 시작됩니다. 이곳은 입장료가 없고, 불교의 고요함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고 정교하게 세운 불상과 아름다운 건축물로 유명한 이곳 또한 시간을 보내기에 좋습니다.
푸투오사에서의 첫 발걸음은 이 산행의 여유로운 시작을 알리며, 여행의 속도와 분위기를 조절해 줍니다. 사찰을 둘러본 후, 마음에 여유를 두고 봉황산으로 향하는 길에 올랐습니다.
普陀寺 - 轩晴居农庄 슈안칭주 농원- (Lantau Peak 凤凰山)- 凤凰山石亭- 杨寮迳烽火台 양리아오징봉화감시대 - 里神前
대부분의 중국 명산들은 철저히 관리되어 아스팔트와 돌계단이 깔려 있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봉황산은 다릅니다. 그 길은 우리가 익히 아는 자연 그대로의 흙길이 펼쳐져 있습니다. 이 산은 사람과 자연이 한 호흡을 맞추는 곳이기에, 처음부터 기분이 좋습니다.
이른 여름의 기온은 덥지 않아 상쾌하게 걸을 수 있었고, 숲 속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상쾌한 기운을 더해줍니다. 나는 산책을 하듯 여유를 부리며, 길을 따라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길에서 길게 나있는 흙길이 마치 이 산이 나를 환영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오랜만에 흙길을 가다 보니 임장공시판이 보이는데 중국의 지나친 관리된 길에 익숙해지다 보니 정식 산길이 아닌가 하는 걱정은 일종의 산림 책임자의 정보와 산림 관리 현황을 공개하는 안내판인데 이 숲은 누군가가 관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너무 큰 걱정 없이 가도 되겠네 싶었습니다.
비가 많이 와서 길 곳곳이 미끄럽고, 흙이 파여 있었지만 그만큼 산의 정취가 더해졌습니다.
숨을 헐떡이며 오르던 길에서, 우연히 ‘중년소녀(中年少女)’라는 닉네임을 가진 등산객을 만났습니다. 그녀는 봉황산의 일출과 일몰을 추천하며, 이곳에서의 멋진 사진들을 보여주었고, 서로 중국 주하이의 산과 한국의 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일종의 도전길이자 최근 젊은 친구들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비등로인 큰 바위 길로 다음에 꼭 가보라고 하면서 직접 다녀온 몇 장의 사진을 위챗을 통해 보내 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이렇게 잠시 만난 인연이지만 산을 즐기고 느끼고 생각하는 건 한국인이나 중국인이나 다 비슷한가 보다 싶었습니다. 언제고 주하이에서건 한국에서건 산우로 만나 뵙기를 소망하면서 같이 사진 한 장 남기고 아쉽지만 다시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저기 보이는 전망대가 오늘의 목적지. 등산로 자체가 직관적이고 어렵지 않아서 외지인도 쉽게 찾을 수 있고 이제 올라갈 길들이 확연하게 보이고 나니까 산책 수준의 길이라서 좀 더 마음 편하게 주변을 보면서 갈 수 있었습니다.
세월의 흐름을 느낄 수 있는 외관이기도 하고 보통 전통 가옥 스타일의 전망대를 상상한 터라 현대식 구조라 약간은 의외이긴 하지만 주하이 시내, 바다 멀리 마카오까지도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탁 트인 전망을 선사한다. 정자 안에는 삼삼오오 구경하는 현지인들, 서로 사진을 찍고 나누는 이야기들이 활기를 더했습니다.
잠시 멈춰서 땀을 식히고 바람과 풍경을 음미하는 시간. 걷기에 딱 좋은 시간과 길이었고 이런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언제나 정상에 서서 이렇게 바라보는 시간이 아닐까 합니다.
봉황산을 내려가는 길은 평이했지만, 일부러 둘러 가며 천천히 걸었습니다. 양봉장이 있는 곳도 지나쳤고, 산책로는 또 다른 풍경을 선사해 주었습니다. 사람과 자연이 함께 숨 쉬는 곳이 바로 이곳이었습니다.
주하이 봉황산은 과도한 관리나 상업적인 요소가 적어, 자연스러움이 살아있는 곳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이 산의 가장 큰 매력입니다. 이곳은 한국의 산들과도 매우 닮아 있어, 고향처럼 편안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주하이를 여행하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은 관광지나 복잡한 도시의 모습에 빠지게 됩니다. 하지만 봉황산은 그와는 다른, 진짜 주하이를 보여주는 곳이었습니다. 마카오와 중국 본토의 경계에 서 있는 이 도시에서, 어쩌면 우리는 늘 무언가를 선택해야 하는 삶의 경계에 서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 선택 앞에서 잠시 멈추어 자신을 돌아보고 싶을 때, 봉황산은 그 모든 고민을 잠시 내려놓고, 자신과 마주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선사해 줄 것입니다.
이제 봉황산을 떠나며, 나는 조용히 그곳에서의 풍경을 떠올립니다. 어쩌면, 산속에서 나 자신을 찾는 여행이 바로 그 무엇보다 중요한 여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