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장. 잡지 한 장이 바꾼 운명

– 첫 번째 기적의 시작

by 콩가루두스푼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나는 방 한구석에 누워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나도 뭔가 해야 한다는 건 알았지만,
뭘 해야 할지 몰랐다.
세상은 넓고,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다.

그날도 별다를 것 없이
바닥에 깔린 오래된 종이 뭉치를 뒤적이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찢어진 책자 한 장이 손에 걸렸다.

그것은 바로 오토바이 잡지.


몇 년은 족히 지난, 색이 바랜 낡은 잡지였다.
기름 냄새와 먼지가 뒤섞인 종이 냄새가 났다.

돈이 없어 잡지를 항상 새것을 사지 못하고 당시 팔던 중고책방에서 지난 과월호를

한 개씩 사서 보며 모으기도 했었다. 그런 잡지들 중 하나였다.

무심코 페이지를 넘기다가,
딱 한 줄이 내 눈에 들어왔다.

“○○ 그룹사, 이륜차 정비사 직업훈련생 모집.”
“기술인재 양성, 전국 모집. 20명 한정.”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이건… 나잖아.

그때 난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지만,
오토바이를 사랑했고,
기름 냄새 속에서 살아봤고,
누구보다 기술의 의미를 알고 있는 아이였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전화를 걸었다.
“저… 아직 지원할 수 있습니까?”

수화기 너머에서 피곤한 목소리가 들렸다.
“오늘이 마감일이에요.”

순간, 눈앞이 캄캄해졌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나는 거의 외치듯 말했다.
“부탁입니다. 꼭 하고 싶어요.
지금 바로 등기로 보내면 안 될까요?”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들려온 짧은 답변.

“오늘 날짜로 등기를 보내면… 인정해드릴게요.”

나는 바로 집을 뛰쳐나갔다.
사진을 찍고, 주민등록등본을 떼고,
자기소개서를 손글씨로 쓰고,
우체국에 가서 가장 빠른 ‘익일 특급 등기’를 붙였다.
창구 직원이 말했다.


“오늘 날짜로 찍힙니다. 걱정 마세요.”

그 말에 눈물이 찔끔 나올 뻔했다.
이 한 장의 서류에 내 삶 전체를 담았다.

며칠 뒤, 합격 통지서가 도착했다.
면접을 보러 오라는 내용이었다.

시외버스를 타고 부산에서 창원까지
낯선 길을 몇 시간을 달려 도착한 그곳에는
수백 명의 지원자들이 줄을 서 있었다.
IMF 여파로, 기술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몰린 것이다.

나는 손을 덜덜 떨며 면접장 안으로 들어갔다.
면접관은 무표정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너, 이거 와 하려고 하노?”

나는 머뭇거리지 않았다.


이건 연기가 아니었고, 각본도 없는 대답이었다.

“이거 아니면 저는 진짜 죽을 것 같습니다.
이것만큼 저에게 재밌는 일은 없어요.
진짜, 꼭 하고 싶습니다. 이일 아니면 저는 못 살것

같습니다.”

촉촉한 눈망울로 나는 간절함을 담아 답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고,
면접관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그래, 집에 가서 기다리거라.”

면접은 고작 3분도 안 걸렸다.
부산에서 몇 시간을 달려갔는데,
돌아오는 길은 허무할 정도로 짧았다.

며칠 후, 나의 진정성과 간절함이 전달되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는 내인생의 처음으로 운명을 바꾸는 연락를 받았다.

최종 합격.
기술 인재 20명 중 한 명으로 선발.

그 종이를 들고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릴 적, 자장면을 먹고 감동했던 그날 이후
내 인생에서 가장 강렬했던 기쁨의 순간이었다.

내가 드디어, 무언가가 된 느낌.
사람들이 ‘너 괜찮다’고 말해주는 인생의 첫 순간.

그날부터, 나는 내가 정한 길을 내 두 발로 스스로 걷기 시작했다.

keyword
월요일 연재
이전 08화7장. 오토바이 센터, 기술의 씨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