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보는 영화] <펠리칸 베이커리>
▲ 영화 <펠리칸 베이커리>의 한 장면. ⓒ 진진
햄버거, 샌드위치, 소보로빵, 고로케, 팥빵, 카스텔라 등 수십여 가지의 빵을 파는 가게를 흔히 볼 수 있는 요즘 시대에 식빵과 롤빵 두 종류만으로 4대째 이어져 온 빵집이 있다. 일본 도쿄 시내 한 모퉁이에 있는 '펠리칸'이 그 주인공이다.
작은 점포 크기와 어울리지 않게 이 가게의 한 달 매출은 80~100가지 종류의 빵을 파는 대형 빵집을 넘어선다. 가게 주인이 뛰어난 홍보 전략가이거나 연예인이 홍보하는 그런 곳도 아니다. 이 가게의 홍보 수단은 수십년 간 써온 촌스러운 빵 포장지와 펠리칸(Pelican)이란 스펠링이 새겨진 간소한 표식이 전부다.
다큐멘터리 영화 <펠리칸 베이커리>는 1942년 개점 이래, 식빵과 롤빵 단 두 가지 종류로 사람들의 일상을 사로잡은 특별한 빵집 '펠리칸'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치다 슌타로 감독은 빵 종류를 늘리는 가게가 많아지는 시대에 오히려 상품의 종류를 줄이는 선택을 한 펠리칸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되면서 영화를 기획하게 되었다. 펠리칸 가게를 탐구하며 '사람을 위해, 사람이 만든다'라는 문구가 떠올랐다는 그는 '펠리칸의 빵 한 조각에는 중요한 무엇이 있을 것'이란 생각에 본격적인 영화 제작에 나선다.
기본에 충실하기 위한 과감한 선택
▲ 영화 <펠리칸 베이커리>의 한 장면. ⓒ 진진
▲ 영화 <펠리칸 베이커리>의 한 장면. ⓒ 진진
누가 더 다양한 빵을 파느냐는 경쟁에서 탈피하고 싶었던 펠리칸의 2대 사장 와타나베 카즈오는 다양한 종류보단 잘 팔리는 빵을 만들겠다는 경영철학을 내세웠다. 1942년 처음 펠리칸이 만들어질 때까지만 해도 일반적인 빵집과 큰 차이가 없었다. 두 가지 빵으로만 가게를 운영하기 시작한 건 타나베 카즈오 때부터였다.
이 가게엔 식빵과 롤빵, 두 가지 종류만 있는데 지금껏 종류를 늘리거나 변경한 적도 없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을 정면으로 반박해온 펠리칸은 많은 사람들의 권유에도 미동조차 없었다. 처음엔 미련하다는 반응과 무식하다는 반응도 있었을 터. 하지만 그 시선은 차츰 신용과 신뢰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이제는 식빵과 롤빵 분야에선 어느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판매량과 인기를 자랑하는 명실공히 도쿄 최고의 빵집으로 자리매김했다.
"펠리칸의 빵이 맛있고 자꾸 먹고 싶어지는 이유는 만드는 사람이 반죽을 생명체로 제대로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성심껏 다루어 맛있는 빵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에게 빵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아마 먹을 것이라고 하겠죠? 하지만 펠리칸 빵을 만드는 사람에게 묻는다면 그들은 아마 빵은 살아있는 것이라고 말할 거예요. 이처럼 만드는 사람의 기분이 투명하다면 모양 이상 풍미와 맛이 구현된다고 생각합니다."
영화에서는 펠리칸을 둘러싼 다양한 인물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빵을 사러 온 고객들은 제각각의 이유로 펠리칸을 찾는다. 어떤 이는 펠리칸의 빵이 공기 같은 존재라고 표현하는가 하면 특별히 맛있지는 않지만 밥 같아서 계속 먹어도 질리지 않다는 고객도 있다. 우치다 슌타로 감독는 <펠리칸 베이커리>가 다큐멘터리 영화임을 증명하듯 펠리칸을 둘러싼 다양한 목소리들을 여과 없이 담아냈다.
펠리칸이 이토록 유명해질 수 있었던 데엔 제빵사 나기 히로유키도 한몫 했다. 그는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펠리칸을 지키고 있는 최고참 직원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는 선대 사장 와타나베 카즈오의 철학을 그대로 이어받은 인물이다. 4대 사장인 와타나베 리쿠가 나기 히로유키를 스승님이라고 부를 정도로 그의 존재감을 엄청나다. 그가 설명하는 빵에 대한 생각과 철학에는 배울 점이 많다.
우치다 슌타로 감독 '나도 두 종류로 승부하겠다'
▲ 영화 <펠리칸 베이커리>의 한 장면. ⓒ 진진
두 종류의 빵에 충실해온 펠리칸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라서 우치다 슌타로 감독 역시 '두 종류'라는 공식에 빠져든 것일까. 영화 곳곳에는 독특한 '두 종류' 공식이 숨어 있다.
우치다 슌타로 감독은 영상과 목소리 이 두 가지로만 영화 <펠리칸 베이커리>를 표현해낸다. 내레이션과 속도감 있는 편집은 영화 몰입을 배가시켜주기 때문에 다큐멘터리 제작에 있어 '기본값'이 된 지 오래다. 하지만 영화 <펠리칸 베이커리>에는 내레이션이 없다. 빵을 만드는 과정이 나오는 장면의 러닝타임은 상당히 긴편이다. 보통 이런 경우 내레이션으로 그 지루함을 줄이거나 몰입도를 높이기 위해 음악을 깐다. 그러나 영화 <펠리칸 베이커리>에선 내레이션을 들을 수 없다. 정말 꼭 설명이 필요한 장면에선 내레이션 대신 자막을 썼다.
내레이션이 들어가지 않은 '생화면'에 익숙해지면 어느새 관객들은 화면 그대로의 모습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밀가루가 맛있는 빵으로 변해가는 과정과 빠른 손동작으로 빵들을 포장하고 이를 옮기는 과정들을 보고 있으면 '경이롭다'는 단어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화면에 몰입하면 할수록 마치 빵을 함께 만드는 듯한 묘한 기분까지 느껴진다.
▲ 영화 <펠리칸 베이커리>의 한 장면. ⓒ 진진
또 하나 영화를 보면서 눈여겨 볼 점은 우치다 슌타로 감독이 두 종류의 카메라로 <펠리칸 베이커리>를 제작했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방송용 비디오카메라로 촬영한 화면들이 영화의 80~90%를 차지하다가 후반부부터는 갑자기 고성능(DSLR) 카메라로 촬영한 듯 화면이 바뀐다.
영화에 등장하는 식빵에 대한 설명 비중은 80~90%, 그리고 롤빵은 10% 정도인데, 이것처럼 마치 자로 잰듯 비슷한 비율의 장비운용 비중이 눈길을 끈다. 독특한 설정과 시도로 이야기를 풀어낸 우치다 슌타로 감독이 <펠리칸 베이커리>를 제작하는 데 많은 공을 들인 것 같다.
한편 영화는 오는 4월 2일 개봉한다.
별 점 : 3.5/5(★★★☆)
한 줄 평 : 기본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는 다큐멘터리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