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이스탄불: 동맥혈같이 흐르는 인류역사의 맥박(3)
인류문명을 담은 고고학박물관
개인적으로 가장 애착이 가는 곳은 고고학박물관이다. 토카피 궁전에서 나와 오른쪽 샛길로 가면 고고학박물관이 나온다. 샛길 중간에 벽에 붙은 찻집이 있는데, 젊은 남녀들의 데이트 장소로 적격이다. 박물관에 들어서면 고대 아시아관을 만나게 되는데 수메르·바빌론·아시리아 문화의 유적들이 있다. 이 중에서 나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히타이트 제국이 소장했던 카데시 조약의 원본이다. 카데시 조약은 BC 1269년 히타이트 하투실리스 3세와 이집트의 람세스 2세 파라오 간에 맺은 평화조약으로, 당시의 국제 언어인 아카디아어로 작성되었다. 20세기 초 독일 고고학자가 히타이트 제국의 수도였던 하투샤에서 이를 발굴했다.
이집트의 번역본은 카르낙의 아몬 신전에 조각되어 있으며 양측의 합의본보다 이집트의 우수성을 더 부각시켰다고 하니, 정상회담 후 공동성명 이외에도 각자 발표하는 성명에서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는 성향은 이때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다른 나라의 침략 시에는 서로 돕는다는 동맹 조약을 내용에 포함하고 있다. 후일 히타이트와 미케네는 바다 민족의 침입으로 멸망했다고 알려지는데, 이 조약을 맺을 당시에 벌써 바다를 건너온 이민족들의 침입을 우려하고 있었음을 추론할 수 있다.
고대 아시아관을 나와 다른 전시실로 이동하다 보니 야외에 헬레니즘 조각상들이 보인다. 소아시아에서 발굴된 유적이 너무 많다 보니 관리하지 못해 박물관 야외에 비바람을 막을 장막도 없이 그냥 세워져 있다. 유럽관에는 그리스 로마의 유물뿐만 아니라 트로이의 유물이 한 층의 반 정도를 차지한다. 호머의 <일리아드>에 대한 상세한 설명, 1870년대 이후 발굴에 참여한 5명의 유럽인 발굴단장에 대한 소개와 함께 트로이에서 발굴된 유물이 단계별로 전시되어 있다. 그럼에도 이 박물관에 소장된 트로이 유물은 그다지 많지 않고 러시아가 상당수를 소장하고 있다. 슐리만 발굴단장은 발굴한 트로이 유물을 불법으로 독일로 유출했는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러시아가 이 유물들을 자국으로 옮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 문화재가 19세기 말 혼란기와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다른 국가로 유출되었던 경험에 비추어 트로이 유물 유출이 남의 일 같지 않아 안타깝다.
이스탄불을 보려면 걷거나 지하철을 타라고 권하고 싶다. 예전에 이스탄불에서 버스를 이용할 때 승차권을 준비하지 않아 곤혹스러웠는데, 운전기사가 형제의 나라에서 왔다면서 일면식도 없는 나의 차비를 받지 않아 고마웠던 기억이 있다. 터키를 다니다 보면 한국에 대한 우정과 애정을 자주 느낀다.
단 택시를 탈 경우, 호텔 택시가 아닌 길거리에서 택시를 잡을 때는 조심해야 한다. ‘눈 뜨고 코 베인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기사들의 손놀림이 재빠르다. 공항으로 가는 택시에서 잠시 졸았더니 택시 미터기가 한없이 올라가 있고, 분명히 100리라 화폐를 지불했음에도 어느새 10리라로 바뀌어 있어 당혹스러웠다. 인천국제공항에서 집까지 택시를 탈 때면 과속 운전이 불안해 피곤해도 눈을 부릅뜬 경우도 다반사였는데 이스탄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다른 문화에 대한 호기심, 색다른 문화를 접하는 만족감, 무지와 황당 시리즈 등은 모두 여행지가 주는 스릴 넘치는 종합 세트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