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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wallow Nov 04. 2019

소아시아 역사문화산책

카파도키아 1

괴레메 자연과 야외박물관

어느 여름날 오후 5시경, 카파도키아의 붉은 오솔길(Rose Trail)이라는 길을 따라 산 위에서 내려가는 무모한 산행을 했건 것이 생각난다. 산행 도중 날씨가 어둑해지기 시작하는데도 길을 찾지 못해 한창 헤매었다. 다행히 한 스페인 청년을 만나 샛길로 하산했다. 인적이 드물어 자연의 신비로움을 가까이에서 보는 즐거움과 함께 산을 빠져나오지 못하여 야숙하게 되었을 경우의 아찔함이 교차했다.

산속에서 본, 바람이 스치면서 빚어낸 3단의 버섯 바위는 경이롭기만 하다. 맨 윗부분은 뾰족한 삼각 모양이고 중간은 가느다랗고 연한 돌이, 맨 아래에는 가무잡잡한 암석이 받치고 있다. 이렇게 색다른 3단이라니! 상단은 풍상에 씻겨서 생긴 원뿔 모양의 단단한 바위, 중단은 풍화되기 쉬운 약한 암반으로 가느다란 원통형, 하단은 중단보다 마모가 덜 되어 치마를 펼친 듯한 모습이다. 위에서 이 바위를 보면 버섯이 듬성듬성 펼쳐진 모양 같기도 하고, 남성의 주요 부분이 불뚝 선 듯한 모습 같기도 하다. 카파도키아는 화산 폭발과 풍화과정에서 생긴 기암괴석 구경도 쏠쏠한데, 아마도 미국의 그랜드캐니언을 찾는 이유와 비슷할 것이다.

산을 내려오는 중간중간에 맞은편 바위산을 올려보니 비둘기 집이 군데군데 보였다. 비둘기만 아니라 예전에 사람들도 바위산에 구멍을 뚫어 거주지와 교회를 지었다. 이제는 관광객을 위한 동굴 호텔도 바위산을 파서 만드는데, 자연의 모습을 간직한 동굴 호텔이 인기다. 동굴 호텔은 사시사철 온도가 일정하게 유지되어 냉난방 조절기가 필요 없다고 하니 옛사람들의 지혜를 여기서도 느낀다.

바위산을 파내어 만든 교회들은 괴레메(Göreme) 야외박물관이라고도 불린다. 교회의 천장과 사방에 그려진 성화는 성경의 이야기를 담아서 문맹인들에게도 기독교를 전도하는 방편이었다. 이 벽화는 주로 비잔틴 정교의 모습을 담고 있다. 교회들이 있었던 터는 마치 스펀지나 치즈를 잘랐을 때 보이는 구멍과 닮았다. 산 중턱의 바위 속을 파내어 만든 교회들이 350여 개나 된다고 하니 괴레메 골짜기 전체가 교회군이다.

이슬람 지배 후 종교적 박해를 피해 이곳까지 왔을 것 같은데, 사실은 이슬람 정복 이전인 비잔틴 통치 시절에 만들어진 교회라고 한다. 후일 이슬람 세력에 의한 압력도 있었겠지만 초기에는 기독교 종파 간의 교리 논쟁으로 소수파인 기독교인들이 다수파로부터 벗어나고자 한 부분도 있었다.

오스만 제국의 역사를 살펴보면 15세기에서 20세기 초까지 이슬람 이외의 종교에 과세를 한 것 외에는 그리 배타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1923년 터키 공화국이 들어서면서 기독교 교도들은 그리스로, 그리스 및 발칸 지역의 이슬람교도들은 터키로 맞교환하면서 종교적 편향성이 높아졌다.

야외 박물관에 있는 교회들을 방문할 때마다 바위를 파서 만들었다는 것 이상의 의미는 없어 보여서, 학예사에게 어떤 교회를 보아야 할지 자문을 구했다. 그는 교회를 돌아보기 전에 먼저 입구에 그려진 15개의 성화에 대한 설명을 읽어보라고 권한다. 특히 신약성경에 나온 예수의 사건들을 성화로 남겨놓은 어둠의 교회(Dark Church)를 집중적으로 보란다. 대부분의 교회들은 사건의 일부만 기록했거나 성화가 다소 훼손되어 중요성이 반감되었다. 반면 어둠의 교회는 오랜 기간 발견되지 않았다가 지진으로 내부가 무너져 내리면서 숨었던 교회가 밖으로 드러난 교회다. 깊숙한 곳에 있었기에 다행히 성화들이 잘 보존되었다는 설명이다.

최후의 심판(Deesis)에서부터 성모고지(Annunciation), 베들레헴으로의 여행(Journey into Bethlehem), 탄생(Nativity), 동방박사의 경배(Adoration of the Magi), 이집트로의 피신(Flight into Egypt), 나사로의 부활(Raising of Lazarus), 예루살렘 입성(Entry into Jerusalem), 세례(Baptism), 유다의 배반(Betrayal by Judas), 최후의 만찬(Last Supper), 십자가 처형(Crucifixion)에 이르기까지 기독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이곳에서 예수의 생애를 되새길 수 있다. 내용을 아는 만큼 느끼는 재미도 배가된다.

예수의 생애와 같이 부처의 일생에 관한 팔상성도(八相成道)가 대비되어 생각난다. 부처님을 잉태하는 도솔래의상(兜率來義相), 탄생하시어 천상천하유아독존을 외쳤던 비람강생상(毘藍降生相), 생로병사의 실상을 목도하는 사문유관상(四門遊觀相), 출가하는 유성출가상(逾城出家相), 수도하는 설산수도상(雪山修道相), 악마를 물리치는 수하항마상(樹下降魔相), 설법을 전하는 녹원전법상(鹿苑轉法相), 열반하는 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으로서 부처님의 일생 가운데 중요한 사건을 여덟 조각으로 나누어 놓은 것이 팔상성도이다.

카파도키아는 비잔틴 시대의 성자 바실리의 고향이다. 바위 안에 수많은 교회들이 생길 수 있었던 것도 4세기에 활동했던 바실리 성인 덕분이다. 그는 기독교가 융성했던 콘스탄티노플에 머물지 않고 고향으로 돌아와 카이세리 교구를 맡아 야외박물관에서 본 여러 작은 교회를 만들었다. 그는 특권층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소박하고 진실한 예배를 중시한 성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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