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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wallow Nov 04. 2019

소아시아 역사문화산책

터키 카파도키아 2


대규모 지하도시데린구유와 카이막르

야외에 있는 교회는 한눈에 보이지만 지하교회는 발굴을 마칠 때까지 그 규모를 가늠하지 못해 상상 이상일 것이라고 추정만 하고 있다. 데린구유 지하도시는 지하 6층까지, 카이막르 지하도시는 지하 4층까지 개방되어 내려가 보았다. 현재 두 지역 공히 10층 이상의 지하층이 발굴되었으나 다 개방하고 있지는 않다. 예전 사람들이 어디까지 파 내려갔는지는 다 확인하지 못한 상황이다. 가장 큰 두 개의 지하도시인 데린구유와 카이막르가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을까 추정하지만 아직까지 연결통로를 발견하지 못했다.

이곳으로 들어가 보니 휴전선 땅굴이나 베트남 호치민 시의 땅굴처럼 한 사람이 겨우 구부려 지날 만한 통로를 따라 내려가던 때가 생각난다. 내려갈수록 신선한 공기를 들이켜게 되는 게 신기하다. 지하 1층은 동물 사육장, 그다음 층은 포도주 주조장이어서 그때도 스트레스를 술로 풀었나 싶기도 하다.

지하로 더 내려가니 대중 집회 공간도 있다. 소박한 강단과 돌출된 의자 등이 있어 종교 예식을 드린 장소임을 알 수 있다. 음식을 만드는 주방도 그 옆에 있어 여기서 나오는 연기는 어떻게 처리하는가를 물어보니 다른 통로를 통해 나가도록 되어 있단다. 교회와 식당같이 사람들의 공용시설을 지상과 가까운 지하층에 만들고 그 아래층에 사람들이 주로 거주했다. 우물을 판 곳이 있어 허리를 굽혀 내려다보니 수십 미터 아래로 새까맣기만 하다. 누군가 돌을 던지니 퐁당 하는 소리만 들릴 뿐이다.

곳곳에 집채만 한 둥근 맷돌이 통로에 있는데, 적의 침입 시 이 돌을 움직여 통로를 막았다. 안쪽에서만 움직일 수 있고 외부에서는 이 돌을 움직일 수 없다. 종교 박해를 피하고자 비잔틴 시대 이후에 파 내려간 지하도시라고 보기 쉬운데, 고고학자들은 선사시대부터 동물의 공격을 막기 위해 그리고 히타이트 시대에 군사적 방어 목적으로 파 내려갔다고 본다.     

터키 지도에는 카파도키아라는 지명이 없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지역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 지도에 경남, 전남은 있지만 영남이나 호남은 없듯이 그 포괄하는 범위가 예전부터 광범위했기 때문이다. 소아시아에서 중부는 대부분이 카파도키아였고, 지금도 81개 주 가운데 5개 주를 포괄하는 넓은 지역이다.

우리나라의 사례에 비추어 고조선 이후 고구려·신라·백제 이외에도 발해·가야·삼한(마한·진한·변한)이 존재했던 것처럼, 소아시아에서 명멸한 나라 또한 수십 개국이고 카파도키아도 그런 소국 중 하나였다. BC 3세기부터 존재하기 시작하여 AD 1세기, 로마에 점령되었지만 로마의 속령으로서 존재했다. 역사가 스트라본은 <지리>에서 로마가 카파도키아에 자치령 지위를 부여하려고 했으나 오히려 카파도키아가 이를 거부해 놀랐다고 기록하고 있다. 국가로서는 소멸되었으나 그 이름은 2,0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이어져 오니 그 생명력이 대단하다.

카파도키아 지역은 고대부터 존재했고 다른 지역과 문화적 교류도 제법 많았다고 한다. 아시리아의 무역 식민지와 히타이트 문명이 지배했던 곳이 이곳에서 차로 1시간 정도 떨어진 퀼테페다. 퀼테페에는 테라코타로 옹기를 만든 기록이 있는데, 아마 그 문물이 카파도키아로 자연스럽게 전수되었을 것이다.

카파도키아의 명물 중에 하나는 다양한 형태의 옹기다. 이 옹기는 이들의 독특한 요리법도 관련이 있다. 터키인들은 옹기 속에 고기류를 넣어 불에 구운 후 옹기의 중간 부분을 깨뜨려 익은 고기를 꺼내 먹는다. 이런 옹기 케밥은 카파도키아에서 즐길 수 있는 별미다. 도기, 음식 등 팔색조 같은 고유한 매력이 있기에 세계 각지의 사람들이 이곳에 끌리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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