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만의 외식인지 모를 주말 아침이었다. 휴일 전날이라는 핑계로 술을 너무 많이 마신 탓에 아침 식사준비는 하지 못했다. 아니, 하기 싫다는 것이 맞는 말이다. 숙취로 인해 머리는 깨지듯이 아프고, 몸은 움직이기 힘들어서 소파와 한 몸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의 배고프다는 말은 몸을 일어나게 만들었다. 거실 테이블 위의 전날 먹은 배달음식들과 식기들을 정리하고, 냉장고를 열어서 먹을 것을 찾아보았다. 역시, 먹을 게 없다. 하는 수 없이 아이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술이 깨지 않는 상태에서 운전은 너무 힘들다. 되도록이면 가까운 곳. 그리고 아이들과 내가 모두 호불호 갈리지 않는 메뉴를 정해야 했다. 운전 중 이리저리 눈으로 아침 식사가 가능한 식당을 찾고 있었다. 그때 조수석에 타고 있던 딸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소리를 질렀다.
"아빠! 저기! 김치찌개! 된장찌개!"
주차를 하고 식당에 들어서니, 서빙하는 식당 주인아주머니가 우리 아이들에게 인사를 했다.
"얼마만이야~? 왜 이렇게 안 왔어~"
아주머니의 인사에 나는 눈인사를 하고는 주문을 했다. 아이들도 아주머니와 짧게나마 안부 인사를 했다. 식당은 여전히 손님이 많았다. 손님이 자리를 뜨면, 바로 다른 사람이 앉았고, 바로 음식이 나온다. 메뉴는 찌개 3가지를 대표로 한 백반집. 반찬은 8가지 정도에 찌개만 손님의 주문에 맞게 빠르게 나오기 때문에 회전율이 매우 좋다. 그리고 음식맛은 꿀맛. 우리 테이블에도 음식이 차려졌고, 아이들은 많이 배가 고팠는지 바로 푸드 파이터로 변신했다. 나도 아이들에게 다 빼앗길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숟가락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얼굴에는 숙취 때문에 땀이 비 오듯 쏟으며 식사를 했다.
배가 차고 나니, 조금 정신이 돌아오는 듯했다. 오래된 식당의 내부, 이곳에 사람들. 그러나 너무나 오랜만인 이 식당. 이곳은 아내와 내가 연예할 때도 다니던 곳. 결혼식 당일날 아침 식사도 이곳에서 했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태어나고 숟가락질을 하게 되었을 때, 아이들과 함께 주말이면 자주 찾았던 곳. 그래서 오지 못했다. 아니 오기 싫었다. 아내 생각에 또 우울해질까 봐. 이런 장소가 너무도 많다. 아이들이 늦잠 자는 주말이면 둘이서만 찾던 영화관. 자주 산책하던 공원에 있는 직접 굽는 빵을 파는 빵집 겸 카페. 여름이면 맥주를 마시던집 앞의 파라솔 테이블이 있는 편의점. 비가 많이 오는 날 꼭 달리던 드라이브 길. 나는 철봉운동, 아내는 아이들과 산책을 하던 집 앞의 공원. 내가 움직이는 모든 장소에 아내가 함께였다. 그래서 나는 아내 생각이 날까 봐 갈 곳이 없다. 시간이 약일까? 얼마나 지나야 덤덤하게 돌아다닐 수 있을지 모르겠다.
지금은 함께한 장소에서 아내 생각에 가슴이 아프지만, 시간이 지나 언젠가는... 아내와 함께한 장소를 마주할 때면 미소를 지으며 과거의 행복한 순간을 회상할 수 있었으면 한다.
이별은 행복했던 추억 가득한 장소를 그리움이 가득한 곳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리고 가는 곳마다 그 사람을 그리워하며 가슴을 저려 오게 한다. 마치 최면에 걸린 듯, 그리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게 제일 큰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