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고리2 09화

제2부. 태백산행: 신물(神物)을 찾아서(2)

2. 도깨비방망이를 찾아서

by 끄적쟁이

2. 도깨비방망이를 찾아서


[현설과의 아쉬운 작별, 세 가지 신물의 단서]


설산 깊은 곳, 외딴 산채의 차가운 새벽 공기는 잊지 못할 이별의 감정을 더욱 애잔하게 만들었다. 밤새 초영의 상처를 정성스레 돌보고, 해묵은 이야기들을 나누며 서로의 안위를 빌던 이들에게는 이제 각자의 길을 떠나야 할 시간이 찾아왔다. 초영은 떠나기 전, 아련한 표정으로 백현설을 마주 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십 년 전 헤어진 연인에 대한 복잡다단한 감정이 물결처럼 일렁였다.


"같이 가면 좋을 텐데, 내가 보기에 그리 힘든 길도 아닐 텐데 말이야."


초영의 목소리에는 쉬이 떨쳐낼 수 없는 아쉬움이 짙게 배어 있었다. 그는 진심으로 현설이 자신들과 동행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현설은 그런 초영의 속마음을 꿰뚫어 보면서도, 고개를 저으며 단호히 거절했다.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뭇가지처럼 고요하고 차분한 그녀의 표정 속에는, 초영을 염려하는 진심과 자신의 운명에 대한 체념이 뒤섞여 있었다. 인간의 몸인 자신이 빠르게 움직여야 하는 초영과 아랑에게 오히려 짐이 될 것이라는 설명은, 그녀만의 깊은 배려였다.


"나리께 조언 하나 해 드리지요. 태백산 산군께 빈손으로 찾아뵙는 것은 도리가 아닐뿐더러, 쉽사리 그분의 심기를 움직일 수 없을 것입니다."


현설은 초영에게 낡은 종이 두루마리 하나를 건넸다. 시간의 흐름을 고스란히 담아낸 듯, 노랗게 변색된 두루마리의 가장자리는 닳고 해져 있었다. 초영이 조심스럽게 두루마리를 펼치자, 그 위에는 기묘한 형상과 함께 세 줄의 정갈한 글씨가 붓으로 쓰여 있었다. 현설은 두루마리를 꼼꼼히 읽어 보는 초영에게 차분하고 명료한 목소리로 설명을 이어나갔다.


"첫 번째는 충청도 제천 덕산현에 있는 도깨비 중 우두머리, 상도깨비 약귀군의 방망이입니다. 산군께서는 그 방망이의 능력을 확인하고 싶어 하십니다."


현설은 초영의 뒤에서 짐보따리를 처음 메어본 듯 무게를 이리저리 가늠하며 투덜거리는 아랑의 모습을 힐끗 보았다. 작은 체구의 아랑에게 족히 세 사람 몫은 되어 보이는 거대한 짐은 버겁기 그지없어 보였다. 현설은 아랑에게 들리지 않도록 목소리를 더욱 낮췄다. 마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속삭이듯 그녀의 목소리는 한층 더 가라앉았다.


"두 번째는 지리산 방정산에 사는 구미호 우두머리 혹심주입니다. 혹심주는 아주 오래전부터 여우 구슬에 얽힌 슬픈 이야기들에 대해 아는 바가 많다고 전해집니다. 산군께서도 그 구슬과 얽힌 사연들을 무척이나 궁금해하십니다."


초영은 두루마리의 끝자락, 현설의 시선이 머문 곳에 희미하게 그려진 여우 구슬의 그림을 발견했다. 그의 눈동자가 흔들리며 현설을 놀란 듯 쳐다보았다. 마치 자신의 가장 깊은 비밀을 들킨 듯한 당혹감이 그의 얼굴에 스쳤다. 현설은 초영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표정에는 알 수 없는 연민과 함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한 심오한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세 번째는 강릉 삼척 앞바다의 진해용왕의 물길이 담긴 인장입니다. 태백산 산군께서는 원래 신(神)이 아닌, 영물에서 신과 같은 존재가 되었지만, 처음부터 신이었던 진해용왕과 같은 존재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신답니다. 산군께서는 자신의 산에 흐르는 물줄기에도 용왕의 증표를 남기고 싶어 하시지요."


초영은 두루마기를 다시 조심스럽게 접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입가에는 허탈한 웃음이 걸렸다. 현설을 바라보며 투덜거리듯 이야기했다.


"이건 무슨... 산군을 만나러 가기 전에 나부터 죽는 거 아니야? 이런..."


그는 머리를 긁적거리며 곤란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수많은 영물과 신들이 뒤섞인 삼계를 떠돌아다녔던 그였지만, 이번 과제는 가히 목숨을 걸어야 할 만한 난이도였다. 그런 초영의 모습을 본 현설은 작은 미소를 지었다. 그의 투정이 마치 어린아이의 어리광처럼 귀엽게 느껴지는 듯했다. 그녀의 눈빛에는 한때 그를 사랑했던 여인의 복잡한 감정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때, 더는 기다리기 힘들다는 듯 아랑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두 사람 사이의 아련한 분위기를 갈랐다.


"에이, 아저씨! 대체 언제 갈 거야? 빨리 출발 하자고! 어서 가서 그 도깨비 방망이... 빨리 구하자!"


현설은 설산을 쏜살같이 내려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한참 동안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희뿌연 안개처럼 흐릿한 시야 속에서도 두 개의 그림자는 점점 작아지며 아득한 산봉우리 너머로 사라져 갔다. 그녀는 이내 고요히 합장하며 고개를 숙였다. 이 불안하고 위험천만한 여정 속에서, 부디 그들에게 어려움이 없기를 간절히, 또 간절히 빌면서. 그녀의 기도와 함께 한 줄기 차가운 바람이 산채의 낡은 풍경을 흔들었다.


[덕산현 마을의 기묘한 굿판, 그리고 수상한 냄새]


초영과 아랑은 축지법을 써가며 험난한 설산을 헤치고, 마침내 충청도 제천 덕산현 마을 어귀에 다다랐다. 마을 입구에는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품은 듯, 풍파에 바래고 이끼가 낀 천하대장군과 천하여장군 장승 두 개가 굳건히 서서 마을의 안녕을 지키고 있었다. 그들은 산등성이를 여러 개 넘어 달려왔건만, 겨울날은 유독 해가 짧고 밤은 더 빨리 찾아오는 법. 벌써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며, 자줏빛 노을이 덧없이 사그라드는 대신 차가운 어둠이 서서히 마을을 잠식하고 있었다.


아랑은 발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장승의 칙칙한 모습을 힐끗 바라보았다. 그녀의 맑은 눈동자에는 피곤함과 함께 인간들의 어리석음에 대한 심드렁한 감정이 비쳤다. 얇은 저고리 사이로 스며드는 겨울 바람에 몸을 잔뜩 웅크리며 그녀는 투덜거렸다.


"인간들이란... 참, 별걸 다 세워놓고 지켜달라고 하네. 저게 진짜 뭘 지켜주기라도 한다고... 으으, 추워! 어디 불 좀 쬐일 곳 없나? 배도 고프고... 누가 따뜻한 국물이라도 좀 주면 좋으련만."


아랑의 쉬지 않는 투덜거림은 마치 재잘거리는 작은 새 같았다. 초영은 그런 아랑의 귀여운 모습에 살짝 미소 지었지만, 이내 시끄럽다는 듯 손가락으로 자신의 귀를 파는 시늉을 했다. 그리고는 입에 검지를 갖다 대어 조용히 하라는 행동을 취했다. 그의 예리한 감각은 이미 마을 안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을 감지하고 있었다.


마을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사람들이 모여 있을 만한 장터나 주막을 찾았다. 그때였다. 조금 멀지 않은 곳에서 요란한 징과 꽹과리 소리가 들려왔다. 단순한 장터의 활기가 아니라, 영적인 의식이 치러지는 듯한 시끄럽고 부산스러운 소리였다. 그 소리는 이들의 발걸음을 자연스레 그쪽으로 이끌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리듯, 초영과 아랑은 홀린 듯 소리가 나는 곳으로 향했다.


점점 가까이 다가가자, 어둠이 짙게 깔린 마을 어귀가 마치 대낮처럼 환하게 밝혀져 있었다. 키를 훌쩍 넘는 수많은 횃불들이 땅에 박혀 밤을 물리치고 있었고, 그 불빛 아래에서는 떠들썩한 굿판이 한창이었다.


굿판은 광란의 도가니였다. 시끄러운 징과 꽹과리 소리가 귀청을 때리며 쉴 새 없이 울려 퍼지고, 북과 장구의 웅장한 가락이 그 위를 덮었다. 마치 천지가 진동하는 듯한 소음 속에, 핏빛으로 물든 술에 취한 듯 덩실덩실 몸을 놀리는 무당의 기이한 춤사위가 횃불 아래 기괴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무당의 화려한 오색 복장은 횃불의 불꽃과 어우러져 더욱 현란하게 춤을 추는 듯했다. 한 손에는 영롱한 방울을 미친 듯이 흔들고, 다른 한 손에는 날카로운 작두칼을 든 채 번개처럼 빠르게 빙글빙글 돌며 뛰었다. 그녀의 춤사위는 흡사 귀신에 씐 듯 절도 없는 움직임이었지만, 어딘가 힘겹고 부자연스러웠다. 온몸의 신경을 곤두세우는 굿 음악과 무당의 신들린 듯한 움직임은 보는 이들의 혼을 빼놓을 듯했지만, 그녀의 눈빛에는 혼란과 피로가 역력했다. 굿판을 둘러싼 마을 사람들은 횃불의 불꽃처럼 흔들리는 무당의 춤사위에 압도된 듯, 들떠 있었지만 어딘가 얼어붙은 표정으로 굿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들의 눈동자 속에는 미신에 대한 맹신과 함께 알 수 없는 두려움이 교차하고 있었다. 굿판 한쪽에서는 비릿한 피 냄새와 함께 알코올 냄새가 진동했고, 마을 사람들의 웅성거림은 굿판의 시끄러운 소리에 묻혀 희미하게 울렸다. 차가운 겨울밤 공기 속에서 피어오르는 무당의 땀 냄새와 타오르는 횃불의 매캐한 연기가 코끝을 찔렀다.


그 기괴한 굿판의 광경을 바라보던 아랑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천년을 살아온 구미호인 그녀의 예민한 영적인 감각은 굿판에서 풍겨오는 위화감을 곧바로 알아차렸다. 그녀는 초영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가 조용히 귓속말을 했다.


"부채 아저씨, 아저씨도 안 보이지? 저 무당에게 신도 안 왔어. 주위에 영가(靈駕)도 보이지 않고... 이건 그냥 사람이 제멋대로 춤추는 것뿐이야."


아랑은 얼마 전 초영의 도술 덕분에 영혼의 세계를 볼 수 있는 눈을 얻은 참이었다. 자신이 얻은 능력을 과시하고 싶은 마음과 함께, 여전히 그 능력이 유효한지 확인하고 싶은 듯 초영에게 물어보는 것이었다. 초영 또한 굿판을 꼼꼼히 뜯어보며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랑의 말이 정확했다. 저 무당의 몸에 내려앉은 신(神)의 기운도, 주변을 떠도는 단 한 점의 영혼 흔적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더욱이 굿판 한가운데에는 붉은색 관복을 입은 사또가 무릎을 꿇고 양손을 모아 간절히 기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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