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퇴근. 우리 집의 금요일 저녁은 배달음식을 먹는 날이다. 토요일 근무까지 안 잡혀 있던 나는 무엇을 먹을 것인지, 퇴근 전부터 아이들과 통화를 하며 메뉴를 정하고 있었다. 물론, 나는 술 한잔 할 수 있다는 것과 일주일의 근무가 드디어 끝나고 휴식이고... 하는 즐거움을 가지고 마트에 들러 술도 사고, 아이들 음료도 사면서 배달을 시키고 집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딸의 머리에 뿔이 나올듯한 표정으로 씩씩 대고 있었다. 그러면서 “아빠! 나 잠깐만 나갔다 올게. 자꾸 OO이가 나오래? 맞짱 뜨자고! 아빠 온다고 밤늦어서 안된다는데도, 졸았냐고? 약 올리면서 자꾸 그래!” 하고 언성을 높이는 것이다. 어느 부모가 저녁 9시가 되어가는데 그것도 친구와 싸우러 간다는데 보내겠는가? 아무 말 없이 장본 것을 정리를 하면서 잠시 어떻게 이야기를 할까 고민을 했다. 그러나 나온 결론은 “안돼. 밤늦었으니까 내일 보자 그래. 그리고 어느 부모가 싸우는데 다녀오라고 하겠냐? 내일 낯에 만나서 대화로 풀어. 지금은 서로 화나서 그런 거일 수도 있잖아.”라고 대답해 주었다. 대답을 듣는 순간 딸은 “아우! 열받는단 말이야!!”라고 소리 지르면서 자기 방으로 문을 닫으며 들어갔다.
저걸 쫓아가서 혼내줘야 하는 걸까? 아니면 화가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려줬다가 대화를 해볼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딸아이 방안에서는 그 친구와의 언성이 높아지듯 전화통화 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카톡알람 소리가 계속 울려댔다. 그래서 딸아이를 불러서 이야기했다. 그럼, “가서 대화로 잘 해결해 보고 와. 무슨 일 있을지 모르니 폰은 꼭 챙겨가고.” 그 말을 듣자마자 딸은 잠바를 챙겨 입고는 후다닥 뛰어 나갔다.
기다리던 족발이 도착했고, 아들과 나는 둘이서 신나게 누나 것 남겨놓지 말자는 일념으로 먹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있는데 역시나 걱정이 되었다. 핸드폰을 자꾸 쳐다보다가 나간 지 30분쯤 지났을 때 전화를 걸었는데, 전화기가 꺼져있다는 것이다. ‘이거 무슨 일 있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을 시작으로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지금 한참 <글로리>라는 드라마로 인해 학교폭력에 대해 사회적으로 여러 뉴스나 매체에서 심각하게 다루고 있는 것이 생각이 들었다. ‘그 아이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나왔다면? 지금 심각하게 폭력을 당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어느덧 그렇게 1시간이 흐르고,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에 “아들, 누나 어디, 어디서 친구들이랑 놀아?”라고 물어보고는 그 장소들을 찾으러 돌아다니기 위해 눈에 쌍심지를 켜고 현관을 나섰다.
현관을 나와서 아파트 근처에 있는 공원으로 걸어가며 귀는 쫑긋 세우고 눈에서는 플래시 불빛이 나올 듯 쳐다보며 찾으려 할 때쯤, 딸아이가 저 멀리서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딸~!!” 하고 부르니 터덜터덜 걸어오는 모습을 유심히 머리부터 발끝까지 관찰했다. 머리도 멀쩡했고, 얼굴도 상처 없고, 옷도 깨끗했다. 그런데 눈에서는 눈물이 살짝 고여있으면서 화가 가득했다. “왜? 진짜로 몸으로 싸웠어?”라고 물으니, “아니, 머리 잡아채길래. 말로 그만하라고 소리만 질렀어. 그러다가 그냥 헤어졌어.”라고 말하면서 나의 눈빛을 읽은 것인지 어떠했는지 모르지만 “아빠가 그랬잖아! 나쁘게 한다고 나도 똑같이 나쁘게 하면 똑같은 사람 되는 거라고..!” 하면서 목소리를 높여 말하는 것이다.
속에서 천불이 올라왔다. 이걸 쫓아가서 부모들을 찾아가 한바탕 해버리고 싶었지만, 딸의 행동과 말을 존중해 주기로 하고 진짜 꾹~ 참았다. 나는 아무 말 없이 딸을 안아주면서 “잘했어. 딱 한 번만 참아. 다음에 또 그러면 그때 너만 봐도 오줌을 지릴 만큼 두들겨 패줘. 이번 한번 네가 기회를 주었다고 생각해..”라고 말해주었다. 잠깐 안겨 있던 딸이 눈물이 날 것 같은지 나를 밀쳐 내면서 말을 돌렸다. 분명 자신을 쫒아서 나온 나의 마음까지 알아서 하는 행동 같았다. “아빠, 아 저기 편의점에서 과자 좀 사줘.” 라면서..
편의점을 들려서 집에 돌아오는데 싸운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친구가 폭력으로 친구들 한두 명을 때린 게 아닌 이야기를 들었고, 동생을 욕하면서 너희 집안 교육이 그러니 동생이 싹수없다느니 했다고 말해서 싸움이 시작되었다고 했다. 아까 만나서는 머리 잡혔을 때 주먹으로 턱을 쳐서 돌려 버리고 싶었는데 참았다고 한다. 그 말을 다 듣고는 똑같이 한 번만 네가 기회를 주었다고 생각하고 다음에는 혼내주라고 이야기를 하면서도 그 아이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어쩌다가 그 아이는 그렇게 친구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일까? 요즘 초등학교 6학년이면 학교폭력에 대해서 알 텐데 자신이 하고 있는 행동들에 대해 심각성과 나중에 자신이 감당해야 할 것들이 생각하고 있는지, 그리고 자신의 부모들은 그 아이가 그러고 다니는 것에 대해 알고 있는지 등의 많은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머리 잡힌 내 딸아이 보다 그 친구가 앞으로 불쌍한 삶을 살아가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 딸이 머리를 잡히고 그랬던 건 속상했지만, 자신이 폭력을 행사할 수 있음에도 참았다는 것에 ‘나 보다도 훨씬 장하다.’라는 생각을 했다. 참을성 없고, 다혈질 성격의 나는 초등학교 6학년때 힘으로 안되면 마포 청소 걸래를 분질러서라도 싸웠는데, 오늘의 우리 딸은 나에 비하면 완전 천사가 아닌가.. 똥을 들고 있는 사람과 싸우면 같이 똥이 묻는데, 우리 딸은 현명하게 싸움을 피해 똥을 안 묻히고 온 것이 아니던가. “못된 짓 한다고 나도 똑같이 한다면 똑같은 사람이 라면서!”라는 내가 해준말을 그 어린 나이에 실천을 하다니.. 그날밤의 맞짱 뜨러 나갔다 온다던 우리 딸의 저녁밤은 대단히 속상하지만, 대단히 성숙한 행동을 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가끔 그럴 때가 있다. 나의 두 아이들을 보면서 내가 저 나이 때는 이랬는데, ‘너무 어리광만 부리고, 행동에 책임감 없지 않나? 자기만 생각하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내가 우리 아이들 나이때와 비교하면 우리 아이들이 더 속 깊은 행동을 하는 부분도 있었다. 우리 아이들이 어른보다 나은 부분이 충분이 많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금요일 저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