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과 함께 항상 찾아오는 장마철이다. 현관 앞에서 우산을 챙기려 하다, 일부러 챙기지 않고 출근을 한다. 왜냐면 나는 또 이루어질 수 없는 만남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비가 많이 내리는 장마철이 되면 우산을 항상 챙기고 다녀야 한다. 그런데 나는 약간 바보인가, 항상 우산을 어딘가에 잃어버리거나, 챙기지 않고 다닌다. 비를 맞는 것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 성격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비 오는 날 비를 맞으며 달리기를 하는 것을 즐기는 이상한 놈이기 때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산을 챙기지 않는? 잃어버리는? 습관 때문에 평생 지우지 못할 추억을 가지고 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지하 주차장이 만차다. 오후 8시에 퇴근을 하는 나로서는 장마철이면 지하주차장에 주차를 해본 적이 없다. 우리 아파트 사람들은 모두 일찍들 퇴근을 하는 건가? 주차 자리가 보이질 않는다. 주차자리가 혹시나 하고 들어가서 찾아보지만 역시나 없다. 그러면 지상으로 올라와서 현관과 가까운 곳에 주차를 할 수밖에 없다. 주차를 하고 있으면 현관 앞에 어김없이 나와서 기다리는 아내가 있다.
내가 지하에 주차를 못할 것을 알고 있었다는 얼굴로 씩 웃으며 빗속을 우산하나에 의지하고 차로 달려온다.
"수고했어요~"
"응. 멀 또 나오고 그래. 집에서 기다리지."
아내는 아무 말 없이 팔짱을 끼며 달라붙붙는다. 나에게 우산을 씌어주면서 현관 방향이 아닌 곳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러면 나는 아무 말 없이 아내와 우산하나에 몸을 바싹 붙이고서 약간의 대화를 나누며 아파트 단지를 한 바퀴 걷기 시작한다.
아내는 일부러 항상 우산 한 개 만을 들고 마중 나왔었다. 나와 함께 가까이서 걸으며 산책하고 싶은 마음을 알 수 있는 행동. 나의 우산 못 챙기는 습관을 핑계 삼아 항상 마중 나왔다. 우산 하나를 쓰면, 나에게 찰싹 달라붙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장마라는 기간 동안 비 내리는 감성 젖은 밤거리를 함께 거닐며 수다를 떨고 싶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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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가 시작되면, 나는 여전히 우산을 챙기지 않는다. 분명 아내를 이제는 만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지만, 아내와의 추억을 잊지 않기 위해 우산을 챙기지 않는다. 그리고 비를 쫄딱 맞으면서 궁상떨며 현관을 들어선다. 바보 같이 아내가 나타나길 바라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가끔 비가 많이 오는 날에 가족 중 누군가 우산을 챙기지 못했다면, 마중 나가 보는 것은 어떨까요? 자신을 위해 귀찮은 발걸음을 아무렇지 않게 움직여 주는 당신에게 감동받지 않을까요? 그리고 빗속을 함께 걸으며 나누는 평범한 대화도 아주 좋은 추억이 되지 않을까요? 지금 비가 많이 오는 장마를 핑계 삼아 좋은 추억 만들어 보는 거도 좋을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