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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리아코알라 Feb 02. 2016

오롯이 현재에 산다

호주 편

정화는 호주인 남편, 제임스와 함께 살았다. 


몇 마디만 해 보아도, 그녀는 정말 똑 부러지도록 똑똑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혼자서 배낭여행도 하고, 대학에 가면서는 부모님께 손을 벌려 본 적도 없다 했다. 정말, 내가 보기에도 본인이 부모님 용돈을 드렸으면 드렸지 돈을 받아 썼을 것 같지는 않았다. 


내가 만났던 당시, 그녀는 두 아이의 육아에 전념하고 있었다. 


생활비 비싼 호주에서, 정화는 빨리 돈 모아 집도 사고, 아이들도 사립학교에 보내고, 해외여행도 하고 싶어 했다. 반면, 그녀의 남편 제임스는 현 생활에 만족하는 것 같았다. 


월세 낼 능력 되고, 차 있고, 오토바이도 있고, 충분히 지금도 인생을 즐기며 살 수 있는데 왜 굳이 돈이 더 많이 필요한지 그는 알 수 없다는 거였다. 공립학교 두고 왜 굳이 아이들이 사립학교를 다녀야 하며, 아름다운 곳이 널려있는 호주에서 뭐하러 멀리 외국까지 여행을 다녀야 하는지, 20~30년씩 스트레스 받아가며 갚아야 하는 모기지론은 뭐하러 내려고 하는지 도무지 잘 모르겠다는 거였다. 


참고로, 제임스는 여권도 없었다. 세계를 돌아다니던 정화와 호주 밖에는 한 발자국도 내디딘 적이 없는 제임스. 어떤 점이 맞아서 같이 살게까지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보는 세계관이 달라도 참 많이 다를 것 같았다. 


제임스는 국방부에서 일하는 공무원이었는데, 호주 국방부는 엄청난 혜택을 주는 걸로 유명했다. 그중 하나는 무료로 공부를 시켜주는 거였다. 애살 많고, 똑똑한 정화에게 그런 혜택은 절대 놓쳐서는 안 될, 중요한 기회로 생각되었을 것이다. 이런 정화가 어느 날 내게 속내를 드러낸 적이 있었다. 


"내가, 왜 공짜로 공부시켜준다는데 안 하냐고, 쪼끔만 노력하믄 석사도 따고, 또 거기서 몇 년만 더하믄 박사도 딸 수 있는데, 왜, 도대체 안 하는 이유가 뭐냐고 했거든요. 근데, 뭐라는 줄 알아요? 공부를 할라믄 일을 파트타임으로 해야 되고, 공부도 풀타임으로 하기 어렵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래 하믄 되지, 그것도 몬하냐고 했지요... 그랬더니, 자기는 힘들어서 몬한다대요. 이게 도대체 말이 돼요? 공짜로 공부시켜준다는데, 힘들어서 몬한다니까요! 완전 미치고 팔짝 뛰겠더라고요. 한국처럼 야근이 있는 것도 아이고, 주말에 일을 하는 것도 아이고, 수시로 상사가 일을 시키는 것도 아인데, 또 내가 집안일을 하라는 것도 아이고, 애들을 보라는 것도 아이고, 공부하고 일만 하믄 되는데, 그게 뭐가 그리 힘들어 못 할 일입니까? 내라도 대신 시키주믄 좋겠더라고요...."


결국, 제임스는 끝까지 국방부에서 주는 무료 학비 혜택을 받아보지 못했지만, 후에 같은 국방부에 입사한 정화는 집안일과, 자신의 직장 일과, 육아까지 해가며 석사를 마쳤다. 


정화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또 다른 커플, 개빈과 정민이 이웃으로 있었다.


개빈과 정민은 한국에서 만났다. 그들이 만났을 때, 개빈은 한국과 관련한 박사논문을 쓰고 있던 중이었다고 했다. 개빈이 한국에서 한동안 머물며 리서치를 한 적이 있었는데, 정민은 당시 그의 통역을 맡아주었다고 했다. 


정민이 개빈의 통역을 어떻게 맡게 되었는지는 알지 못했지만, 아마도 한국에서 잠시 휴직하며 호주에 머물렀던 게 어떻게 인연이 된 건 아닐까 짐작만 했다. 그녀는 호주에서 쉬었다고 했지만, 실은 그녀는 그동안 테솔 석사를 땄다. 그런데 그 학교가 개빈이 당시 박사과정을 밟고 있던 대학이었다. 


그녀는 딱히 그냥 놀기가 뭐해서, 자신의 전공과는 별로 상관은 없었지만 영어공부도 할 겸 테솔 석사를 땄다고 했다. 호주에 쉬러 가서 할 일이 없어서 석사를 했다니... 그녀가 진정한 공부벌레였던지, 호주가 정말 그렇게 무료한 곳이었던지, 아님 테솔이 정말 그렇게 재미있는 거였든지. 


개빈은 호주대학 박사 과정 중 필요한 리서치를 한국에서 했고, 정민도 그동안 힘닿는 데까지 열심히 돕다 눈이 맞았다고 했다. 사귄 지 오래지 않았지만, 개빈이 박사를 끝내기 전에 둘은 서둘러 결혼을 했다고 했다. 정민의 나이가 서른이 되기 전에 어서 결혼을 시켜야겠다고 생각한 그녀의 엄마 덕분(?)이라 했다. 


그렇게 둘은 갑작스레 결혼을 하고 호주에 건너와 살게 되었고, 가족을 부양해야 했던 개빈은 보건부에 일자리를 찾았다. 그는 한동안 생계를 책임지느라 박사논문을 보류해 두고, 새로 시작한 일에 적응을 하느라 힘들어했다고 했다. 


하지만, 6개월이 지나고 일 년이 지나도 개빈은 다시 박사논문을 시작하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거의 마무리 단계에 있었던 차라 정민은 그가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면 다시 시작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정민이 슬쩍 한 번 떠보니... 남편은 더 이상 박사를 마칠 의향이 없음을 내비쳤다고 했다. 순간, 믿을 수조차 없었던 정민이 남편에게 대체 왜 거의 다 된 걸 마무리를 못 하냐고 했더니, 박사 끝내봐야 자신의 연봉이 올라가는 것도 아니고, 남들이 자신을 존경하거나 부러워할 것도 아니고, 뭐 그리고 지금 있는 직장도 충분히 마음에 들기 때문에 굳이 박사를 마쳐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거였다. 

 

그런 개빈의 마음을 그녀는 끝까지 바꿀 수가 없었고, 그는 그 후로 그 결정에 대해 단 한 번도 전혀 후회한 적이 없었다고 했다. 


한국 같은 학벌 중심사회에서 태어나 30년 이상을 살았던 사람이라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마인드이지 않을까. 내가 십 년 동안 만난 호주인들이 다 그런 건 아니었지만, 거의 대체로 아주 악착같다거나 독하다는 인상을 준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들은 우리처럼 좋은 학교, 좋은 직장에 들어가지 않으면 집안의 체면이 안 서고, 돈 많이 벌어 성공하지 않으면 무시당하고, 아파도 병원에 못 가서 죽기도 하고, 집 없으면 길바닥에 나앉아야 하는 걱정을 개인이 다 짊어지지 않아도 되니까 그런 걸까?


초등학교 때 시험이라곤 단 한 번도 보지 않고, 중2쯤 되면 공부할 사람은 알아서 공부하고, 기술 배울 사람은 기술 배우고, 돈 많이 있어도 별로 있는 체 하지 않고 주위 사람들도 돈 있는 사람 별로 부러워하지 않고, 많이 아파서 곧 죽을 것 같으면 병원 가면 공짜로 치료해 주고, 이혼하고 생계가 위태하면 나라에서 집 주고 생활비 대주고... 이렇게 누구도 비교되지 않고 스스로도 비교하지 않아도 된다면, 누구나 각자의 삶에 만족하며 오롯이 현재에 살 수 있지 않을까? 아등바등 이를 악물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고생하지 않아도 되는 '현재'가 행복한 삶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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