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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리아코알라 Feb 03. 2016

아프면 지옥 같은 천국

호주 편 

큰 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가끔 배꼽 주위가 아프다고 했다. 하지만, 자주도 아니고 많이 아프지도 않은 것 같아 그냥 두었다. 그런데 그게 해가 지나도 계속되자, 우리는 병원에 한 번은 데리고 가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호주에서는 바로 전문의(specialist)를 만날 수도 없고, 종합병원(hospital)에 가서 진료를 보는 것은 아예 생각도 할 수 없었다. 호주에서 종합병원이란 데는 정말 어디가 심하게 아파서 가는 곳이었니까.


가끔 한국서 온 지 얼마 안 된 사람들은 ‘감기에 걸려서 병원에 갔다.’를 hospital을 써서 I went to hospital. 하고 말하는데, 그 말을 듣는 호주인들은 열이면 열 모두, 감기가 폐렴이나 아주 심한 다른 합병증을 유발하여 큰 병원에 갔다고 이해를 할 것이다. 당연히 엄청! 걱정되는 얼굴로 쳐다볼 것이다. 


각설하고, 일단 우리는 일반의(GP)를 보러 갔다. 아이가 배꼽 주위가 가끔 아프다고 한다며 이런저런 증상을 설명했다. 의사는 아이에게 누워 보라더니 배의 여기저기를 만져보고 이것저것 물었다. 곧이어 별로 심각한 건 아닌 것 같다고 했다. 그냥 아이들이 크면서 신경이 예민해지면 그렇게 아프다고 하는 경우도 있단다. 그래도 혹시나 싶으면 전문의를 예약해 보러 가라며, 추천서와 예약할 전문의의 전화번호, 주소 등을 적어 주었다. 


일반의와의 일반 예약은 보통 15분을 기준으로 했다. 시간을 보니, 전문의의 정보까지 다 받았는데도 아직 대략 10분 정도밖에 안 지난 것 같아, 혹시 한 가지만 더 물어봐도 되냐고 했더니 아주 흔쾌히 sure!이라고 했다.  


속으로는, 전에 어떤 의사는 한 예약당 한 가지의 문제만 상담할 수 있다면서 뭔지 '물어보지 조차' 못하게 하더니, 이 의사는 정말 ‘NICE!’하다고 생각하며 또 다른 걱정거리를 물어보았다. 


아이의 턱 부분에 동그란 어떤 것이 만져지는데 혹시 걱정해야 하는 건지 한 번 봐 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몇 번 여기저기 만져보고는 이 또한 별 것 아니라며, 크면서 자연스레 없어질 테니 걱정마라고 했다.


너무 감사하여 특별히 더 공손히 인사하고 나와 진료비를 지불하려고 접수대로 갔다. 

그런데, 영수증을 보니 뭐가 잘못된 것 같았다. 

보통은 65불이면 될 것을, 그날은 95불!이라는 게 아닌가. 


아니, 대체 왜 그러냐고 했더니, 상담을 2가지를 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각각 65불씩 두 번 올 것을 (130불) 한 번에 몰아 봤으니, 그렇게 치면 싸게 먹힌 셈이긴 했다. 그래도, 그 돈을 지불하는 동안 계속 머릿속에 좋지 못한 단어들이 떠오르면서, 지난번 루마니아 출신의 ‘솔직했던’ 여의사가 오히려 고맙게 느껴졌다. 


몇 주 뒤 아이의 상태가 호전되지 않아 전문의와의 예약을 하려고 전화를 했다. 

가장 빠른 날짜는 앞으로 장장 6주 뒤라고 했다. 그것도 내가 일을 하는 화요일에. 

다른 요일은 안 되냐고 물으니, 그럼 2달을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휴가를 내기로 결정하고 조금이라도 빠른 '6주 후'의 예약을 잡았다. 


어느덧 6주가 흘러, 전문의를 만나게 되었다. 

일반의와 차이가 있었다면 옷을 좀 더 세련되게 입어 역시 돈 잘 버는 전문의 같이 보였고 (참고로, 호주 의사들은 보통 흰 가운을 잘 안 입는다. 환자에게 심적으로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라고 했다.), 또 환자가 그다지 많이 대기하며 기다리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환자를 바쁘게 많이 보지 않는 것 같았다. 


그 전문의도 지난번 일반의와 별반 다를 것 없이 애를 눕히고 배의 여기저기를 눌러봤다. 그리곤, 별 이상 없는데, 그래도 계속 아프면 여러 가지 검사를 그때 받아보자며 일단 한 번 더 지켜보라는 일반의와 똑같은 말을 하곤 나가버렸다. 


그리고 10분도 채 안 되었던  그 전문의의 청구서는 자그마치 200불이 넘었다. 메디케어 (Medicare; 호주 국가 의료보험)에서 환불을 많이 받는다손 치더라도 일단 당장 호주머니에서 나가는 돈은 적지 않았다. 호주에선 웬만큼 참을 수 없을 만큼 아프지 않으면 병원 안 가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대부분의 호주인들은 감기, 장염, 비염 정도로는 의사를 보러 가지 않는다. 감기는 물 많이 마시고 충분히 휴식하면 나을 거라 하고, 장염은 그냥 배안에 버그 (stomach bug)가 있다며 그것도 며칠 충분히 집에서 쉬면 된다 하고, 비염은 호주인이라면 누구나 조금씩 가지고 있는 거라며 심해지면 약국 가서 알레르기 약 사 먹으라고 한다. 그러니 누가 이런 말을 들으러 수 십 불의 돈을 내고 병원에 갈 것인가?

   

비염 때문에 고생하던 수정언니는 시드니로 통근 치료를 다니다 결국 얼마 전에 한국에 들어갔다. 수술이 필요할 것 같다는 얘기를 하더니 훌쩍 한국에 들어가 버린 거였다. 이유인즉슨, 한국 왕복 비행기 값을 합쳐도 그게 더 싸기도 하고 훨씬 빠르다는 거였다. 


호주에선 전문의를 보려면 적어도 2~3달 이상씩을 기다려야 하고, 그다음 예약이 또 필요하면 다시 얼마를 기다려야 할지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한국은 원래 평균적으로 그렇게 오래까지는 안 기다려도 되는 데다가,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이 대학병원 교수라, 외국에서 간다고 하니 거의 바로 수술 날짜를 잡아줬다고 했다. 수정언니는 ‘한국엔 안 되는 게 없어! 안 되면, 되게 하면 되지.’ 라며 웃었다.


I'm going to hospital, today. 를 호주식으로 읽을 때 today가 to die와 비슷한 소리가 난다. 그래서, 호주 병원엔 죽으러 간다는 농담도 있다. 무료인 종합병원에 가서 진료를 보려고 자신의 차례까지 기다리다 맹장이 터져 죽었다는 소리도 가끔 듣고, 별 거 아니었던 게 더 심해졌다거나 죽기까지 했다는 소리를 들으면, 정말 병원에 살러 가는 게 아니라 죽으러 간다는 그 농담이, 농담으로 느껴지지 않기도 한다.  


옛날 30~40년 전 호주 병원은 모두 무료였다고 한다. 하지만, 요즘은 무료가 아닌 곳이 더 많다. 보통 일반의사를 잠깐 보려면 6~70불 이상을 지불해야 한다. 물론, 국가 보험인 메디케어 (Medicare)에서 반 정도는 돌려줬던 것 같다. 그래도 한국에 비하면 훨씬 높은 가격이다. 


대부분의 경우에 일반의는 책정된 금액 (scheduled fee)의 85%를, 전문의는 책정된 금액의 100%를 환급받도록 되어있다. 다시 말하면, 일반의를 100불을 내고 봤다면 85불은 돌려받아야 되고, 전문의는 전액 돌려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런 일은 잘 일어나지 않았다. 대부분 국가가 정한 액수보다 더 많이 받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일반의가 자신이 아주 특별한 의사라고 생각해 120불을 부과했는데, 나는 정부에서 정한 금액이 100불이라면 그에 대한 환급액 85불은 돌려받지만, 100불 초과 20불은 환급대상도 아닌 것이다. 즉, 나는 결과적으로 35불을 내게 되는 것이다. 전문의도 같은 식을 이해하면 된다.  


한참 동안 정부가 개인 사보험에 들 것을 권장하더니, 그게 적극 권장으로 바뀌었고, 언젠가부터는 일정 소득 이상자가 개인보험에 들지 않으면 추가 부과금, 즉 벌금을 부과하는 걸로 다시 바뀌었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벌금과 제일 싼, 즉 혜택은 거의 없는 보험의 월정액 중 어떤 것이 더 싼 지를 저울질 하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거의 아무 혜택도 못 받는 개인보험을 가지고 있는 이유가 바로 거기 있는 것이었다.


경쟁이 비교적 심한 대도시에는 무료 진료센터가 종종 있는데, 이를 Bulk-Billing Medical Centre라고 한다. 하지만, 공짜인 만큼 그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기다리는 사람들도 아주 각양각색의 '별별 사람'들이 많고, 시간도 보통 2시간 이상씩은 기다려야 했다. 


일반의를 찾아가면 가끔 "Sorry, the books are closed."라는 말을 들었는데, 이는 환자명부가 닫혔다, 즉 새로운 환자는 더 이상 받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처음 내가 이런 말을 들었을 땐 완전 호주 의사들 배 불렀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의사도 인간다운 삶을 누리고 살기 위해 정해진 시간 이상은 일하지 않기 위해 그랬던 게 아닌 가 싶다. 한국에서 그랬다면... 그 병원은 아마도 망하지 않을까 싶다.  


의사는 어찌어찌해서 공짜로 봤다손 치더라도 어마 무시한 약값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보통 15~20불 이상씩은 하니까. 게다가, 혈액 검사가 필요하면 병리학 센터에 가서 피를 뽑는데, 이것도 의사가 뭐라고 적어줬느냐에 따라 무료가 되기도, 요금이 붙기도 했다. 의사가 bulk-billing으로 적어줬으면 나는 돈을 안 내는 것이고 아니면 돈을 내는 것이었다. 참으로 이상한 경우들이었다. 


자주 아파서 의사를 종종 보러 가야 한다면... 정말로 심각하게 호주 이민을 다시 고려해 보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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