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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리아코알라 Feb 03. 2016

'배달의 민족'이 없는 나라

호주 편

호주에 거의 맨손으로 도착하여 집은 겨우 구했지만, 그 집에 정말 가구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었다. 우리는 다른 모든 일들은 2순위로 미루고, 바로 가구점에 가서 소파와 침대, 식탁, 의자 등을 샀다. 


누가 호주에선 정가제라 가격을 깎을 수 없다 했던가?  정가제 호주 문화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장차 씩씩한 아줌마가 될 준비태세를 갖추었던 임신 6개월의 나는 가격을 최대한 조정하기 시작했다.


“에이, 그게 최저가인가요?" 

“네, 정말이지 더 이상은 내릴 수 없어요." 

“좋아요, 그렇담, 현금으로 결재하지요. 그럼 총액에서 얼마나 깎아줄 수 있나요?" 

“100불 정도 깎아 줄 수 있겠어요. 이제 만족하나요?" 

“아 좋아요. 땡큐." 


흥정을 마치고 계산대로 걸어갔다. 내가 지갑을 꺼내 들고 막 최종 지불을 하려던 차에, 주인은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이렇게 말했다. 


배달비는 70불입니다." 

“네????!!!" 


들고 갈 수 없는 큰 물건을 샀으면 집까지 배달해 주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자동차에 들어가지도 않는 큰 물건들을 어찌 집에 싣고 가라고 배달비를 따로 받는단 말인가!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적어도 당시의 내게는 그랬다.


나름 열심히 스팀을 뿜으며 배달비를 받는 것은 부당하다고 항소했지만, 이번엔 아까 가구 가격 흥정 때와는 다르게 씨도 안 먹혔다. 배달하는 회사는 자기네와 별개이므로 배달료는 자신들이 마음대로 빼거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거였다. 


한 수 접은 내가, 그럼, 적어도 조금 싸게는 해 줄 수 있는지 묻자, 배달하는 업체는 자신들도 에누리 없이 지불해야 하므로 어떻게 할 수가 없다는 같은 말만 계속 반복했다. 속이 쓰렸지만 어쩔 수 없이 거금의 배달비 70불! 을 지불하고 가게를 나섰다. 


그런데 바로 그때, 신기하게도 아까 들어갈 때는 안 보였던 뭔가가 보이는 거였다.


많은 사람들이 작은 용달차 비스므리한 Ute(윳)을 몰고 왔던 거였다.  젊은 청년 둘이 Ute에서 내려 가구점으로 들어가는 걸 보니, 언젠가 보았던 미국 드라마 ‘프렌즈’의 한 에피소드가 생각이 났다. 


롸스가 새로 산 소파의 배달비를 아끼고자, 친구 레이철과 챈들러와 함께 낑~낑~거리며 소파를 자신의 아파트로 옮기다 결국 반조각을 내고 말았던....


그렇게 그날 처음으로 눈여겨보게 되었던 ‘Ute’라는 작은 용달차. 정말 작은 용달차 만한 사이즈의 이 자동차 종류는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잘 안 보인다. 아마도 우리는 직접 뭔가를 차에 실어 운반해야 할 필요가 거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 호주에선 인건비와 배달비가 비싸니 모두 직접 하는 경우가 정말 많다. 당연히 Ute도 훨씬 많이들 가지고 있다. 친했던 한 호주 친구는 기술과는 전혀 상관없는 국가 공무원이었지만, 1년여에 걸쳐 자신의 집에 직접 테라스도 설치하고, 집안 마루 바닥도 깔았으며, 정원의 잔디도 깔고, 벽돌도 깔았었다. 


그때마다 엄청나게 나오는 쓰레기며 재료들을 자신의 Ute로 실어 날랐다. Ute가 없었다면 정말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물론, 한국처럼 배달문화가 번창해 있고, 인건비가 그렇게 비싸지 않다면 애초에 일부러 엄두를 낼 필요조차 생기지 않겠지만서도. 


그 이후로 몇 번 더 시도, 경험해 본 호주의 배달문화는 정말 그들이 ‘배달의 민족’은  아니구나 하고 절감하게 만들었다. 배달시킨 피자는 온 동네를 다 돌고 돌아 겨우 도착했는데, 한국에서의 ‘아직 치즈가 녹아내리고 있는 중’의 뜨거운 피자가 아닌 ‘어제 구워 식힌 듯’한 피자가 배달되어왔다. 또, 겨우 찾은 배달 가능하다는 한 중국집에서는 기본 25불 이상을 시켜야 한다고 해서 시켰더니, 아주 여유로이 천~천~히 배달을 왔다. 심지어 인터넷에서 시킨 청바지와 책마저 1주일이 넘게 걸렸었다. 


다른 주(State)에서 배달이 되는 온라인 상품들이야, 호주가 워낙에 큰 나라니 1주일이 걸린다 해도 이해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같은 동네에서 오는 피자나 중식 배달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느릿느릿, 여유롭게’가 몸에 베지 않고서는 절대 불가능한 속도였으니까. 


우리나라가 ‘빨리빨리’라면, 호주는 정말 ‘천천히, 더 천~천~히’ 같다는 생각을 종종하곤 했다. 


호주의 배달문화는 느리기만 했던 게 아니었다. 

한 번은 정말이지 강력 멘탈붕괴를 몰고 온 적도 있었다. 


내가 평생을 소원하던 러닝머신을 샀던 때였다. 그 스포츠 가게에서는 다행히 그걸 무료로 배달해 주었는데, 문제는 배달 기사가 우리 집까지 그 물건을 잘 싣고 와서는, 드디어 트럭에서 내렸을 때였다. 


우리 집의 현관은 50cm 정도 바닥에서 올라가 있어서 밖에서 곧장 밀고 들어올 수가 없었다. 러닝머신을 들어 올려 현관에 넣어주어야 할 것인데, 이 기사는 그 엄청나게 무거운 것을 현관문 바로 앞에다 놓고 그냥! 간다는 게 아닌가??!! 


내가 어쩌라고 거기다 놓고 가느냐고 하자, 자신의 임무는 그걸 우리 집까지만 배달하는 것이었으므로 자신의 일은 다 했다고 했다. 다행히 남편이 집에 있어서, 함께 들어서 올리는 걸로 하고, 원했던 곳에 놓아주지 않아도 되니 그냥 가까운 거실 한쪽 구석에 놓아주는 걸로 사정사정했던 기억이 있다. 


정말이지 '배달의 민족'과는 거리가 멀어도 참 많이 먼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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