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코리아코알라 Apr 03. 2016

*무조건 한국만 어떻게든 탈출하면 된다?

| 호주 편

"전 이민 가고 싶어요."


"그래요? 기술은요?" 


"... 없어요. 가서 미용을 배우거나, 아는 분 가게에서 일을 하며 무슨 직업 과정이라도 들을까 생각 중이에요." 


"영어는요?" 


"여전히 잘 못해요. 늘 열심히 해야지 마음은 먹지만 생각보다 잘 안돼요. 가서 살다 보면 좀 더 늘지 않을까요?"


"돈은요?" 


"없어요. 가서 벌어야지요." 


"호주에 이민 가고 싶은 이유는요?"


"그냥 한국을 떠나고 싶어요. 그리고, 거기 가서는 나이와 상관없이 일도 할 수 있고, 뭐 여러 가지가 좋을 것 같아요."


"음... 호주에 꼭! 가야 하는, 그 나라가 정말 좋은 이유는 뭐예요?"


"글쎄요. 호주에 가보기 전에는 정말 그냥 한국을 떠나 무조건 호주로 이민을 가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요, 호주 다녀와서 한국 온지 이제 몇 달 되니까 가고 싶은 맘이 실은 좀 줄어서 반반 정도쯤 되는 것 같아요. 전에는 정말 죽어도 이민을 가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돌아와 보니 여기 생활에도 좀 많이 익숙하고..."


"음..., 제가 느끼기로는요, 절실함이 빠진 것 같아요. 

무작정 한국을 떠나고 싶긴 한데, 호주가 딱히 뭐가 꼭 좋다고도 말할 수 없고... 영어를 잘해야 한다는 건 알지만, 그렇게 영어공부가 열심히 되는 것도 아니고... 기술이 필요한 것도 알지만 뭘 배워야 할지 조금은 막연하고...... 제가 보기엔 절심함이 부족한 것 같아요. 이민을 정말 가고 싶을 때는요, 어떤 특정한 나라의 어떤 특정한 무엇이 정말로 내가 원하는 것일 때, 그곳에서 이민생활을 성공하거나 만족할 확률이 높아져요. 그냥 막연히 한국이 싫어서, 어딘가로 떠나면 더 나을 것 같다고 생각해서 이민 가는 사람들 중에는 역이민도 많고 불행하거나 적응을 잘 못하고 힘들게 사는 사람들도 많아요. 


물론, 제가 아는 한 친구는 정말 간절히 소원했던 게 한국을 떠나 사는 거였어요. 그 친구는 정말 이것저것 하면서 결국 호주 국적 취득하고, 지금은 세계 여기저기를 옮겨 다니며 살아요. 그 친구의 목표는 어떻게든 한국에서 살지 않는 것이었고, 그걸 정말 간절히 원했으니 이룬 거예요. 하지만, 그렇게 사는 게 대부분의 이민자들이 바라는 건 아니죠. 


한국에서 베트남 사람이나 필리핀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생각해 본 적 있으세요? 한국어를 정말 잘한다 해도 쉬운 삶이 아니죠. 한국엔 벌써 한국어를 잘하는 사람이 많이 있으니까요. 한국에서 한국어 잘하는 한국인들과 경쟁이 되려면 정말 뛰어난 기술이 필요하겠죠. 그것도 웬만해서는 경쟁이 어렵겠죠? 한국에 워낙 기술이 훌륭한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게다가 기술이 정말 월등하게 뛰어나지 않다면, 고용주 입장에선 의사소통에 불편함이 없고, 문화도 같은 한국인을 선호하겠죠?


한국어가 아주 유창한 프랑스인 이다도시 씨를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세요? '같은 한국인이다' 이런 생각 안 하시잖아요? 결국에는 한국어를 정말 잘하는, 한국에 사는 프랑스인으로 보지 않으세요? 한국어가 더 유창하고, 정말 똑똑하기도 한 필리핀 출신 이자스민 의원 아시죠? 정말 훌륭하지 않나요? 그런데도 이 의원은 반 다문화 세력의 타겟이 되어서는 다른 의원들이 발의한 다문화 관련 내용도 이 의원이 비난은 모두 다 받는 경우가 많다더군요. 


한 번 생각해 보세요. 호주에서 나는 '한국에 사는 필리핀 사람들'처럼 살 용의가 있는가? 아니면 나는 어떻게 호주에서 그 주류에 속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준비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요."


"......... 한국에 사는 필리핀 사람처럼...이라고 하시니, 그 비유가 너무 가슴에 와 닿아요... 제 자신을 단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듣고 보니 그렇겠네요..."


"제 생각에는요, 차라리 한국에서 갑으로 살 방법을 고민해 보는 게 더 빠를 것 같아요. 한국은 갑이 살기엔 천국과 같은 곳이죠. 물론, 그건 결혼이나 아이를 낳지 않는다는 가정하에서지만요. 결혼이나 아이가 생기면... 얘기는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합니다. 완전 판이 달라지거든요. ㅎㅎ 암튼, 한국에서 꽃집이나 미용 등 뭐든 좋아하시는 걸 사업으로 연결시켜서 돈을 많이 버시고, 일 년에 한 달 정도 여유롭게 해외여행을 다니시는 건 어때요? 해외에서 이민자들은 대우가 안 좋을 지라도 관광객으로 가면 모두들 정말 친절하게 잘 대해준답니다. (ㅎㅎ)"


"너무나 막연히 나가고 싶다고만 생각했는데, 말씀 듣고 보니 뭔지는 모르지만 뭔가 명확해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저 보세요. 영어가 안 되는 것도 아니고, 직업이 없었던 것도 아닌데... 한국에 돌아와서 살고 있잖아요. 저는 늘 호주에서 외롭다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완전한 한국인도, 완전한 호주인도 아니었던 것이 전 늘 싫었어요. 여기 한국에선 그렇게 외롭다는 생각은 많이 안 들어요. 물론, 여기서도 저는 온전한 한국인도, 온전한 호주인도 아니라고 생각은 하지만요... 적어도 제가 원한다면 언제든 온전히 한국인으로 살아갈 수도 있죠. 아무리 노력해도 그 부류가 될 수 없는 것과, 원하면 그 부류에 속할 수도 있다는 것은요, 천지차이 같아요. 


그냥 저 같은 사람도 있다는 걸 알아두시라고 말씀드려요. 본인이 정말 행복할 수 있는 결정 내리면 좋겠고요, 그게 이민 가는 거라면 정말 죽도록 열심히 준비해서 가세요. 거기서 인정받고 보란 듯이 살고 싶다면요." 



얼마 전 내가 잠시 영어를 가르쳤던 학생분과 나눈 대화의 일부다. 이제 30대 중후반 정도인 이 분은 결혼은 별로 관심이 없으신 것 같았다. 그냥 한국이 너무 싫어서 늘 무조건 떠나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계셨고, 작년에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셔서 배낭여행을 여러 달 다녀오셨다. (너무 멋지다! 생각을 생각으로만 머물게 하지 않는 모습이) 그런데, 문제는 다녀와서였다. 떠나기 전에는 분명히 한국을 반드시 떠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돌아와 보니 외국보다 한국이 많이 익숙하고 편했던 거다. 그리고 정말 이민 가고 싶었던 호주에서는 무엇을 하고 살 수 있을지 아직 명확하게 알지 못했던 거였다. 


이민을 가 본 사람으로서, 이민이 대부분의 경우에 장밋빛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진심으로 조금은 도움이 되기를 바랐다. 


막연히 그냥 한국을 떠나고 싶다고 해서 어딘가로 이민을 가면 거기서도 마찬가지로 힘든 경우에 부닥치게 된다. 여기가 정말 싫어서 어딘가로 가고 싶었는데, 거기도 살다 보면 반드시 싫은 점이 생기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민을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지만, 꼭 가고 싶은 사람은 정말 많은 준비를 해서, 반드시 주류에 속해서 인정받고 살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더 많은 호주 정보나 호주 이야기는 http://koreakoala.com 을 방문해 주세요. 


덧붙이는 말

저는 한국의 다문화정책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며, 결코 다문화 국적자분들을 어떤 식으로도 폄하하려는 의도는 없었음을 밝혀둡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