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학교에서 체육복 반바지 입고 집에 오려고 하는데, 선생님한테 들켜서 교실에 다시 들어가서 교복으로 갈아입고 가라는 거예요. 근데, 교실에 가보니까 창문이 열려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 창문을 넘어 유유히 걸어 집에 왔어요. (하하)"
무슨 흥미진진한 무용담이라도 전하듯 중2 아이는 집에 오자마자 흥분되어 말했다.
옆에서 듣던 아빠가, "너 그러다가 선생님이 혹시 밖에서 기다리고 계셨다거나, 갈아입고 갔느냐, 아님 기다려도 안 나오더라 뭐 이러시면 어쩌려고 그랬어?"라고 하니,
"안 그래도 아주 완벽한 변명거리를 생각해 두었어요. 갈아입으려고 하는데 갑자기 엄마한테서 전화가 와서 집에 정신없이 빨리 가야 됐다고요."
옆에서 듣던 내가, "뭐라고? 왜 거기에 죄 없는 나를 끌어들이려고 해? 안돼. 난 그런 거짓말에 동조할 수 없어. 전화 오면 난 모르는 일이라고 할 거야."
"어, 그럼... 그냥 아주 급한 일이 있었는데, 갑자기 생각이 나서 서둘러 갔다고 하죠 뭐."
(아빠) "그래, 뭐 그건 네 맘이지만, 하나의 거짓말은 보통 또 다른 거짓말을 낳고, 작은 거짓말이 정말 불필요하게 커질 수도 있다. 그러니 때로는 거짓으로 이야기를 지어내는 것보다는 사실대로 이야기하고 그 대가를 받는 편이 훨씬 더 낫기도 하지."
(나)"그리고, 정말 선생님께서 밖에서 기다리고 계셨으면 어떡하려고? 게다가 만약 교무실에서 창문 밖을 보다가 네가 유유히 체육복을 입은 채로 걸어가는 걸 보셨다면 기분이 어떠셨을까? 그리고, 어떻게 거짓말을 하려고 마음을 먹을 수가 있냐? 넌 지금껏 거짓말 안 하는 정직한 아이라고 늘 생각했었는데 말이야."
"근데, 엄마도 그러셨잖아요. 고등학교 때 방송실 몰래 들어가서 음악 틀고..."
(나) "일단, 몰래 들어간 건 아니거든? 당당히 문 열고 들어갔거든...."
지금으로부터 20년도 더 된 이야기를, 언젠가 나도 무용담처럼 아이에게 했던 기억이 났다.
1991년 고3 때였다. 열심히 야자 (야간 자율학습)를 하고 있는데, 순간 그날이 10월의 마지막 날이란 게 생각나면서 그날을 그냥 그렇게 보내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던 것 같다.
어둠이 짙게 깔려 깜깜한 바깥보다 더 껌껌하고 으스스하게 조용했던 미로 같은 복도를 지나 나는 조용히 방송실 문을 열었다. 방송부 중에서도 고참이었던 나는 누구의 눈치도 받지 않고 방송실에 언제든 들어갈 수 있었다.
간단히 방송할 멘트를 종이에 쓰고는 방송실 문을 잠갔다. 마이크를 켜고 모든 3학년 교실에 방송을 하기 시작했다. "여러분, 공부하느라 많이들 힘드시죠? (어쩌고 저쩌고... 뭐라고 했는지 지금은 기억이 하나도 안 나지만 한참을 멋진 멘트를 내보냈던 것 같다.)... 시월의 마지막 밤입니다. 모두들 힘내시라고 이용의 시월의 마지막 밤 들려드립니다." 그리곤, 음악을 틀었다. 음악이 나가는 동안 학교는 완전 발칵 뒤집혔다.
한창 예민한 고3들은 그 음악을 들으며 어떤 아이들은 복도에 나가 앉기도 했고, 어떤 아이는 교실에서, 다들 대성통곡을 하고 울고불고, 방송실 밖에서는 두 분의 야자 담당하시던 선생님과 방송부 선생님께서 문을 두드리고 그야말로 난리였다. 하지만, 나는 꿋꿋이 음악이 끝날 때까지 문을 열지 않았고, 음악이 끝남과 동시에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문을 열고 죄 하나 없는듯한 얼굴로, 얌전히, 그리고 예의 바르게 선생님들을 뵈었다. 성이 머리끝까지 났던 방송부 선생님은 너무나 황당한 상황을 막지도 못하고 조금은 허무하게 갑자기 끝나버리자 어떻게 이 사태를 수습할지 당황해하시는 것 같았다.
그날 나는 맞지는 않았지만, 엄청 혼났던 것 같긴 하다. 물론, 나도 그에 지지 않고 나의 행동에 대한 정당성을 피력하려 노력했었을 것이다.
이런 나의 지난 얘기를 나는 아마도 그렇게 부끄러운 게 아니라 돌아볼수록 기억에 남는 소중한 추억으로 기억했던 건 같다. 아이에게 그게 나의 무용담처럼 전해졌던 걸 보면.
나는 정말 그랬다. 남의 몸과 마음을 정말 아프게 하거나 피해를 주는 게 아니라면 정말 내가 생각하는 대로, 내가 믿는 대로 사는 게 진짜 사는 거라고.
나의 십 대와 이십 대는 정말 그렇게 살았다. 그냥 하루하루를 보낸 게 아니라, 나는 정말 진짜 삶을 살았던 거였다.
그러던 내가, 아이를 낳아 노심초사 아이가 다칠까, 남에게 어떤 식으로든 피해를 줄까 걱정하며 살다 보니 어느새 마흔이 훌쩍 넘은 지금, 나는 고리타분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던 거였다. 아이가 나를 고리타분하다고 한 번 여기고, 또 한 번 생각하고, 또 한 번 느끼는 날부턴 내게 자신의 '멍청하지만 훌륭한 무용담'은 더 이상 하지도 않게 될 것이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너무 내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왜 조금 더 마음을 열고 아이가 하고자 하는 얘기를 못 들어준 걸까? 어떻게 하면 아이와 무슨 일이 있어도 한편이라는 걸 알게 해 주면서, 동시에 올바른 것을 가르칠 수 있을까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전세가 뒤집혀 자신이 선생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몰래 창문을 통해 도망쳐 나온 것이 마치 나의 가르침이었던 것처럼 되자, 나는 더욱 힘을 주어 말했다.
"그리고, 적어도 나는 비겁하게 거짓말을 하지도 책임을 회피하지도 않았거든. 내가 방송실 문을 열었을 때 나는 정말 어떤 벌이든 받을 준비가 되어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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