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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리아코알라 Jul 31. 2016

되는 건 되고 안 되는 건 안 되는 나라

| 호주 편

호주 

#1

아이들을 여러 명 초대하는 파티를 계획하던 중이었다. 그러던 중 대형슈퍼에서 특정 품목 반액 세일을 한다는 전단지를 보고 부리나케 사러 갔지만, 이미 거의 다 팔리고 몇몇 부서진 과자만 선반을 차지하고 있었다. 너무 낙심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고는 매니저를 찾았다. 보통 매니저를 찾을 때는 뭔가 불만이 있어서 불평을 할 때였지만, 이번은 정말 순수한 질문을 하기 위해서였다. 몇 번의 전달 전달을 거쳐 나온 30대 초반으로 보이던 매니저.


내가 원하던 과자가 20개 정도가 필요하여 전단지를 보고는 최대한 빨리 왔는데, 벌써 다 팔리고 없어서 너무 아쉽다며 혹시나 재고가 더 없는지를 물었다. 그에 매니저는 부정적인 대답을 해 주었고, 나는 감사를 하며 아쉬운 발길을 돌리려고 하던 참이었다. 순간, 사람 좋은 매니저는 찾는 물건이 없어서 미안하다며, 내게 그 슈퍼의 어떤 제품이든 70프로 할인된 가격에 가지고 가라고 했다.


믿을 수가 없었던 나는, 정말로 가게의 어떤 물건이던지 상관없느냐고 물었고, 잠시 고민하던 매니저는 50프로로 하자고 했다.


그래도 양심은 있었던 나는, 최대한 원래 사려던 물건과 가격이 비슷한 과자를 골랐고, 반액에 가져가는 횡재를 한 적이 있었다.


#2

아이가 쓰던 장난감이 10개월 정도 지났을 때, 갑자기 기계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우리는 아이가 열심히 발로 차며 잘 가지고 놀았으니 됐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같아서는 아마도 그걸로 만족할 것 같다) 장난감 하나의 가격도 부담이었던 우리는 밑질 거 없다는 생각으로 본사에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다.


보증기간이 1년이긴 했지만, 우리가 영수증을 보관하고 있었던 것도 아니고 하니 사실 큰 기대는 없었다.


그런데, 수화기 반대편의 여성은 고장 난 이유를 묻지도, 산 날짜를 묻지도 않았고, 다만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그 장난감 취급 가게를 알려주며 그곳에서 같은 것으로 바꿀 수 없으면 그 상당액에 해당하는 다른 장난감으로 바꾸어가라는 말과 미안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뜻밖의 반응에 너무나 들떠 한동안 어쩔 줄 몰라하며, 새로운 장난감을 고르는 내내 얼마나 감사하고 기뻐했는지 모른다. 물론, 그날 이후로 우리는 거의 그 회사의 장난감만을 사기 시작했다.


#3

얼마 전 아시안 가게에서 사 온 2kg짜리, 몇 불 하지도 않는 백미 쌀 봉지를 여는데 쌀벌레가 버글버글했다. 징그러워서 전혀 쓰지 못하고 버리면서도 너무 생돈이 아까웠다.


나도 모르는 사이, 곧 그 봉지에 적혀있던 상담 전화번호를 눌렀고, 한 중년의 여성과 통화를 하게 되었다. 그 여성은 어떻게 쌀벌레가 생기게 되는지, 어떻게 막을 수 있는지 등등 정말 자세한 설명을 해 주었다. 회사에서 출고될 때는 그렇지 않았으나 취급하는 가게에서 잘못한 것 같다는 등의 말도 잊지 않고 붙였다.


그날은 다 알고 있던 정보를 듣기만 한 것 같아 그다지 기쁘지는 않았지만, 며칠 후 그 회사에서 보낸 소포를 받고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회사에서 생산하는 몇 가지 제품과 2kg짜리 백미, 그리고 쌀벌레에 관련한 정보까지 정말 세심한 배려였다. 물론, 나는 호주를 떠나는 날까지 그 회사 제품이 아닌 쌀은 사 본 적이 없었다.


#4

전기세가 나왔다.

그런데, 연체료까지 붙어서 나왔다.

고지서를 받은 적도 없는데 연체료를 내라니... 말도 안 되는 거였다.


당연히 전기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회사에서는 정해진 날짜에 고지서를 보냈으니 연체료를 내는 것이 맞다고 하였고, 우리는 우편사고 같은데 우리의 잘못은 아니니 연체료는 부당하다고 맞섰다. 같은 말을 계속 반복하다 그 직원은 지쳤는지 결국 매니저에게 보고했고, 곧 우리는 연체료를 물지 않아도 되었다.


물론, 후에 많은 다른 고지서들 속에 파묻힌 첫 번째 고지서를 찾고서는 정말 미안했지만, 굳이 회사에 전화해서 연체료를 뒤늦게 내겠다는 말 따위는 하지 않았다.


#5

가게에서 물건을 사면 항상 나는 영수증을 확인하는 습관이 있었다. 계산이 정확하지 못한 점원들이 그리 미덥지 않기도 했고, 어떤 경우는 행사 제품에 가격이 적용이 안된 적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러 번 계산이 잘못되어 돈을 더 돌려받은 적이 있었는데, 주로 환불 담당하는 직원이 처리해 주었거나, 가끔은 매니저가 매니저의 권한으로 특정 제품을 더 할인된 가격으로 주기도 했었다.



한국

#1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되어 관광비자 기간이 다 되어 체류비자를 받으려고 할 때였다. 국적이 호주인 나와 남편은 둘 다 외국인으로서의 비자를 받으면 되었지만, 아이들이 문제였다.


아이들도 호주 국적이니 그냥 체류 비자를 달라고 했지만, 아이들은 이중국적이 허용되니 한국 여권을 받아 살라고 했다. 그냥 비자를 받겠다고 했지만, 결국 한국 여권을 받아야만 하는 쪽으로 상황이 진행되었다. 그러자니, 선행되어야 할 것이 아이들의 출생신고였다. 호주에서 태어나 호주에서 살 거라고 생각했으니 한국에 출생 신고할 생각도 못했는데, 그게 나의 '의무'라고는 전혀 상상조차 못했었다. 세계 어디서 태어나던지 대한민국 국민은 대한민국에 소속? 된다는 걸 전에는 몰랐었다.


아이들 출생신고를 하려니 부모가 한국인이 아니라 우리 밑에는 이름을 올리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할머니 할아버지 아래로 들어가야 하는데 그럼 다른 도시에서 취학통지서가 나오고, 아이들은 서울에서 몇 시간이나 떨어진 도시에서 할머니와 살며 학교를 다녀야 할 판이었다.


동사무소에선 방법이 없으니 구청으로, 구청에선 다시 동사무소로, 동사무소에서 구청으로, 구청에선 안행부로... 그렇게 며칠을 왔다 갔다 했지만 아무도 어떻게 처리를 해야 할지 몰랐다. 안행부 직원이 아무런 감정 없는 목소리로 법 조항을 계속 반복해서 읽어주기만 했을 때는 너무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어떻게 방법을 강구해 줘야 할 것 아니냐, 누가 법을 몰라서 그러냐고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을 땐, 자신은 법을 어길 수 없을 뿐이라며 법을 어길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는 것이냐고 도리어 화를 내었다.


그즈음 해서, 나는 정말 진지하게 다시 호주로 돌아갈 생각을 했었다. 한국이란 나라가 너무 싫었고 호주가 눈물 나도록 그리웠다. 내 나라가 그리워 돌아왔지만, 한국은 나를 내치는 것 같았다.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깊어질 즈음 구청의 한 직원이 "원래 법적으로는 안되지만..."으로 시작하는 해결책을 생각해 내었다. 우리 아이들을 부모 없는 아이들로 만들면 단독세대로 등록이 가능해진다는 거였다. 법적으로 안된다면서, 그렇게 해도 문제가 없는지는 알 길이 없었지만... 그 방법 외에는 한국에 머물 길이 없었으니 가타부터 별 말 묻지 않기로 했다.


출생신고를 빨리 하지 않은 이유로 벌금까지 물어가며, 내 아이들을 어린이 가장으로 만들어 가며, 정말 힘들게 법으로는 가능하지 않은 방법으로 우리는 한국에 체류할 수 있게 되었다.


#2

세계적인 외국계 물류업체에 다니는 친구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친구는 자신의 일이 아주 보람되고 직장에서의 대우도 좋지만 종종 고객을 대하는 일이 쉽지 않다고 했다.


한 번은 고객이 해외로 부친 물건이 없어진 적이 있었는데, 그 일로 매니저와 함께 그 고객의 집을 방문해야 했던 적이 있었다고 했다. 그 고객의 집은 흔하지 않은 대궐 같은 주택이었는데, 대문을 열고 들어가 길게 굽은 정원을 지나서야 현관을 들어설 수 있었다고 했다. 그곳에서 친구와 매니저는 무릎을 꿇고 사죄를 했고, 매니저는 그 고객이 던진 물건에 얼굴을 맞기까지 해가며 사죄를 해야 했다고 했다.


#3

잠시 한국에 들어왔을 때였다. 부모님 댁 근처에 유명한 속옷가게가 생긴 걸 보고 들어가 부모님과 아이들 내복과 잠옷, 속옷 등 꽤 여러 벌을 샀다. 그리고 늘 그러는 것처럼, "이렇게 많이 사면 뭐 끼워주거나 깎아주시지 않나요?"한마디 했고, 계산을 하던 주인은 아이 팬티를 한 장 끼워 주었다. 처음엔 그렇게 깐깐하게 한 푼도 빼줄 수 없다고 하더니 웬일로 덤으로 뭘 주기까지 하는지 의아했지만 불만은 없었다.


카드로 계산을 하고 기쁘게 인사를 하고 돌아서 집으로 간 뒤 몇 시간이 지났을까...


카드 발급 은행에서 전화가 왔다. 아까 산 가게에서 계산이 크게 잘못되었다고 하니 전화를 해 보면 좋겠다고.


우선, 어떻게 은행에서 그런 것에까지 관여를 하는지 좀 의아했지만, 큰 손해를 보았다고 하니 피해를 주고 싶지는 않았던 까닭에 순순히 그 가게에 전화를 했다.


그 주인은 아무리 계산을 해 봐도 속옷 한 벌이 단가가 너무 세서 가격을 그렇게 깎아주면 남는 게 없다는 거였다. 그러니 아까 끼워준 속옷을 도로 갖다 줄 수 없겠냐는 거였다. 내가 집에 오자마자 세탁기에 돌렸다고 하자, 그럼 돈 만원 정도만 갖다 줄 수 없겠냐는 거였다.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일단은 알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생각할수록 은행과 그집 주인에게 화가 나는 거였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있는 건지...


그러다, 답답한 마음에 남편이 사업체를 운영하는 친구에게 전화를 했고, 내용을 들은 친구 남편이 바로 전화를 해서 법 조항 몇 줄 읊어주고, 어떻게 할까 하고 물으니 실수였고 오해였다며 없었던 일로 하자고 했다고 했단다. 그러며, 시간 날 때 커피라도 한잔하러 오라는 말까지 덧붙였다고 했다.  



한국에 4년 넘게 살면서 정말 자주 듣는 말이 있다.

"원래는 안되는데..."


왜 한국에선 '원래는 안 되는' 것이 될까? 또, 왜 뭔가 일을 해결하기 위해선 '원래는 안 되는'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될까? 왜 한국의 담당자들은 뭔가 문제가 발생했을 때, 고객에게 끊임없이 '죄송합니다, 고객님. 정말 죄송합니다, 고객님...'만 반복해야 하는 걸까?


호주에선 뭔가 일이 생기면 주로 그 시스템 내에서 해결이 되곤 했다. 아시아나 중동에서 이민 온 깐깐한 주인들로 기분이 상하거나 문제를 해결하려다 더 기분 나빠진 적은 있었지만, 대부분의 대형 회사에서는 매니저의 역량으로 뭐든 해결이 곧잘 되곤 했다.


한국에선 자체 시스템으로 해결되지 않는 일이 너무나 많지만, 대부분 힘없는 자를 이해하는 하위 레벨에서, 혹은 정 많은 개별 주인들에게서 감동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호주의 매니저들은 일을 책임지고 해결을 하려는 반면, 한국의 매니저들은 모든 비난을 온몸으로 견뎌야 하는 직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한다.


돈과 권력이 없으면 '원래 안 되는 것은 끝까지 안 되는 나라.'

돈과 권력이 있으면 '원래  되는 것도 되도록 해주는 나라.'


"돈과 권력",   가지가 없이도  평등한 대우를 받고   있는 한국에    있을까?


호주나 영어에 관련된 정보는 http://koreakoala.com을 방문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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