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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리아코알라 Nov 13. 2016

*원칙과 변칙 사이

호주 편

어찌 된 영문인지 기억은 잘 안나지만, 몇 년 전에 한국에서 호주 여권을 만들어야 했던 적이 있었다. 


사진을 포함해서 서류의 일부에 사인을 하고 개인정보를 기입해야 했는데 나와 친인척 관계가 아닌 사람들 중 호주 시민이거나, 아니면 특정 직업군에 속하는 한국인이 해 줄 수도 있었다. 그런데 마침, 내가 호주에서 거의 1년 가까이 한국어를 가르쳤던 호주 공무원 학생이 한국에 발령을 받아 막 나와있었던 차라 그럼 그녀가 사인해 주면 되겠다고 정말! 간단히 생각했다. 뭐 그렇게 대단한 일도 아니고 내가 불법이 아니라는 걸 보증하라는 건데, 거의 매일 같이 수업을 했고 개인사도 조금은 알고 있는 사이니 못 해 줄 일이 뭐 있겠나 정말정말! 가볍게 생각하고 약속을 잡았다. 


호주 떠나오기 전에 보고 몇 달이 안되어 다시 보는 거였지만 다른 나라에서 보니 새삼 새로웠다. 그간의 한국 적응기를 들으며 지난 한국어 수업 얘기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자리를 뜨기 전,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여권 얘기를 꺼내며 사진과 서류에 사인 좀 해 줄 수 있겠냐고 했더니... 음... 공식적으로 나를 알았던 기간이 12개월 이상이어야 하는데 자신은 11개월밖에 알지 못했으므로, 미안하지만 자격이 안 된다고 했다!!!


이해했다. 그녀에게 거짓말로 한 달이나 부풀려 나를 1년을 알았다고 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상처받았다. 설마 그 1개월 모자란 것으로 시쳇말로 이런 '생까는 경우'는 상상도 못했었으니까.


그런 내 상황을 전해 들은 친한 호주 지인의 한국인 친척분이 (그분은 나를 단 한 번도 만난 적은 없었다. 다만 이야기는 호주분을 통해 자주 전해 듣고 있었다) 마침 교직에 오래 몸담고 있었던 차에 필요한 서류를 작성해 주셨다. 그렇게 나는 정말 어려울 것 같았던 일을 일사천리로 어떻게 해결되었는지도 모르게 처리했다. 


물론, 이런 일은 대사관에서 알면 좋을 게 없겠지만서도...한편으론 모를 리 없다는 생각도 든다.


실제로 지인분의 친척분은 대사관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고 딱 두 가지 질문을 받았다고 하셨다. 

1. OOO 씨 맞으시죠?

2. 주민번호가 OOOOOO-OOOOOOO 맞나요? 


헐~ 너무 싱겁게 전화 인터뷰가 끝났다고 했다. 그게 5~6년 전이었다. 



이번에는 기간이 짧은 아이들의 여권이 만료가 되어 호주인을 찾았지만, 우리를 1년 '이상' 알았던 사람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시 지인 중에 교직에 있는 아이 친구의 아빠에게 부탁을 드렸다. 아이가 이 학교로 전학을 온 건 1년이 넘지만, 정확히 이 두 아이가 언제 처음 보게 되었는지는 잘 알 수가 없었다. 어쩌면 1년이 안 될 수도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곤란하다고 하시면 다른 분께 부탁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당연히 1년 넘겠죠 뭐, 하시는 거다. 게다 서류가 다 영어로 되어 있으니 자신의 이니셜과 전화번호, 생년월일 다 적어줄 테니 내가 보고 알아서 쓰라는 거다. 


그래도 내가 반은 호주인인지라 그건 좀 그러니 연필로 대략 적어주시면 내가 정정할 건 정정해서 펜으로 다시 쓰겠노라고 했다. 그렇게 실제로 나는 서류를 돌려받고 다시 펜으로 고쳐 썼다. 그리고 그다음 날 대사관에 제출했다. 


그리고 얼마 뒤 대사관에서 전화가 왔다고 했다. 

정말 이것저것 복잡하게 사사건건 묻더라는 것이었다:


두 아이가 친구 맞느냐, 어디서 알게 된 친구냐, 부모님은 서로 아느냐, 어떻게 아느냐, 아이의 이름은 무엇이냐, 당신의 생년월일은 무엇이냐, 사진에 사인했느냐, 안 지는 얼마나 되었느냐, 직업이 구체적으로 무엇이냐...


수년 전 허술하게 하던 질문이 어쩌다 이렇게 깐깐하게 바뀐 걸까? 너무 많은 한국인들이 원칙은 철저히 무시한 채 그냥 설렁설렁 대충대충 한 게 들통나서 일까? 


수상도 어길 수 없는 호주의 원칙과 법이 참으로 좋기도 하면서, 가끔은 너무나 답답하고 야속하기도 한 반면,

돈과 권력이 있으면 누구나 어길 수 있는 한국의 '원래는 안되는데' 되는 원칙과 법이 너무나도 부조리하다는 생각을 종종한다. 


그 둘의 절대 중간은 없는 걸까? 


호주와 영어 관련 정보는 http://koreakoala.com을 방문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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