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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리아코알라 Nov 27. 2016

진짜 한국인이라고 하기 싫을 때

호주 편

제이슨은 호주의 시골인  와가와가(Wagga Wagga) 출신이었다. 그가 늘 그랬듯 나도 줄여서 와가(Wagga)라고 했다. 


거의 모든 호주의 남성이 둘만 모이면 맥주를 마시고 스포츠 얘기를 하는 반면, 제이슨은 술을 전혀 하지 못했고 스포츠에도 관심이 없었다.  언젠가 마흔이 넘어 부하 직원들과 저녁에 술자리를 할 일이 있었는데, (호주에서는 회식이 주로 업무 시간 중인 점심때이며 저녁 시간은 항상 가족과 함께 한다.) 단 한 번도 술을 바에서 주문해 본 적이 없어서 부하직원에게 술 사주는 것도 참으로 곤혹스러웠노라고 했다. 


이런 그가 그의 부서에서 그 높은 자리까지 어떻게 올라갈 수 있었을까 잠시 궁금했지만 곧 어리석은 내 궁금증에 피식 웃고 말았다. 늦게까지 불필요한 회식에 참석하고 상사에게 잘 보이지 않아도 자신이 맡은 업무에서 실력만 나타내면 승진할 수 있는 사회, 바로 '호주'라는 걸 잊고 있었으니까.


술도 하지 않고, 스포츠도 즐기지 않는 제이슨에게 또 한 가지 없었던 게 있었는 데 그건 바로, '여권'이었다. 나는 요즘 시대에 누구나 여권이 있으리라는 생각에 의심을 품어 본 적이 없었는데, 단 한 번도 '너무나도 만족하고 아름다운 호주' 밖으로 떠나고 싶다는 생각 자체를 해 본 적이 없었다는 제이슨이 나는 마치 외계인처럼 느껴졌다. 


순박하기 그지없고, 전형적인 남성의 문화와는 거리가 몇 광년은 있는, 호주 문화 외에는 접해본 적도 관심을 가져본 적도 없는 완전 토박이 호주인 제이슨. 그가 언젠가 나에게 한국인 관련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 


한국에서 고급 공무원들이 자신의 부서에 다니러 오는데 아무래도 자신이 그 그룹 투어를 시켜주어야 할 것 같다며 기대인지 긴장인지 모를 표정으로 말했다. 


그리고 얼마간 시간이 흐르고, 내가 그를 다시 만났을 때 그가 전에 언급했던 한국인 공무원 그룹이 생각이 났다. 별 할 말도 없고 해서 지나가듯 그들의 방문이 어땠는지 물었다. 나쁜 말은 잘 하지 않는 제이슨이 그냥 웃었지만, 묘하게 어색했던 그 웃음의 의미가 궁금했다. 왠지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잠시 주춤했지만, 끝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묻고 말았다. (나는 두고두고 그 질문을 하지 말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후회를 했다.) 


잠시 어색하게 뜸을 들인 후 , 제이슨은 내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질문인지 답인지 모를 말을 건네고 있었다. 


'한국인 남성들은 어떻게 하나같이 모조리 화장실 문을 열어 둔 채로 소변을 보느냐'라고 했다. 질문 아닌 듯 질문 같은 말에 답을 어떻게 해야 할까 잠시 우물쭈물하는 사이, 그는 자신이 생각 없이 화장실을 지나다 얼마나! 당황했는지 몰랐다고 덧붙였다. 


그런데, 그 말을 듣던 아무 죄 없던 내가 얼굴이 화끈거렸다. 한국에서의 늘 익숙한 풍경?이었지만 뭐 딱히 뭐라고 이유를 (진정 나도 알지 못했으니) 설명할 길이 없었다. 내 얼굴의 홍조가 채 가시기도 전에 그는 정말이지 별로 안 들어도 좋았을 법했던 추가 정보를 전해주었다. 


정장을 한 그 남성 그룹은 어디서 밤새도록 술을 마실 수 있는지 물어봤고, 당연히 그는 도와줄 수가 없어서 주위 동료들에게 물어물어 가르쳐 주었는데, 그들은 밤새도록 문을 여는 술집이 거의 없어 많이 아쉬워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무료한 캔버라에서 어떻게들 사느냐고 했다고 했다. 


한국에서 한 무리의 고급 공무원들이 호주에 와서 그곳의 한 국가 부서를 둘러보고 가며 남긴 가장 강한 인상이 "화장실 & 음주 문화"였다니!  정말이지, 가끔은 나는 잘못한 것도 없이 한국인인 게 진짜 쪽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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