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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리아코알라 Jun 01. 2016

시월드 놀이기구는 안타도 탄 것 같다

| 호주 편

영민 언니가 날 점심에 초대해놓고선, 밥알이 다 튀도록 흥분하면서 '시월드'를 욕하기 시작했다. 호주에선 대부분 '시월드'를 위해 헌신? 해야 하는 일 따위는 없으니 당연히 그 멤버들과 갈등이 생길 일이 잘 없는 듯했다. 당연히 시월드 흉을 잘 들을 일이 없었는데 그날의 신랄함은 부족한? 빈도를 보충해 주었다. 


"지난주 금요일에 말이야, 마가렛이 어쩐 일로 전화를 하셨더라고. 가끔 우리가 전화드리지만 마가렛은 특별한 날에만 어쩌다 하시거든."


"마가렛이 누구예요?"


"어, 우리 시어머니 이름이야."


"네???" (아무리 호주인들이 자기의 시어머니를 이름으로 바로 부른다고는 하더라도,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나는 다른 한국인들도 당연히 그렇게 못 할 거라 생각했는데 영민 언니는 아주 자연스레 시어머니의 존함을 아무렇지 않게, 아주 오랜 세월 그래 온 것처럼 부르고 있었다.)


"아, 근데, 우리 시어머니가 왜 전화한 줄 아니? 오랜만에 금요일 저녁에 시아버지랑 같이 영화도 보고, 저녁도 먹고, 데이빗 존스 (David Jone's; 호주에서 유명한 백화점)에서 쇼핑하다 우리 생각이 나서 전화를 했다는 거야. 우리도 가끔씩 그렇게 맛난 음식도 먹으러 가고, 예쁜 옷도 사 입고 하면서 인생 즐기면서 살라고 말이야. 내가 이렇게 얘기하면 우리 시어머니가 아주 쿨하고 멋진 분이다고 생각되지?"


"네, 맞아요. 아니에요?"


"완전 남의 속은 모르고 하는 생각이야. 울 남편은 아직도 학자금 융자를 다 못 갚아서 여전히 월급에서 떼어 주고 있고, 집을 살려고 결혼하고 몇 년째 허리를 쫄라 매도 아직 보증금 20프로를 못 모아서 (호주 평균 집값이 정말 정말 정말 최소로 잡아도 5억 이상은 하니 대략 1억여에 가까운 적지 않은 돈이다.) 아깝게 쌩돈 날리는 월세에 살고 있고, (호주 월세는 평균 150~200만 원 정도 한다.) 가끔씩 하는 외식도 우린 맨날 맥도날드 가잖아. 백화점 쇼핑? 내 이 가방은 거라지 (garage) 세일에서 5 달러 주고 산거고, 이 식탁도 소파도 다 전에 한국 들어가던 형아네 귀국 세일서 건진 거고,  우리 애들 옷 봐봐봐, (이쯤에선 커다란 호박잎에 싸서 큰 한입 씹어먹던 쌈 속의 밥알들이 튀어나올 기세였다.) 저거 다 지민이, 효정이, 세정이, 다혜같은 애들이 신경 써서 물려주고 한 거야. 내가 어쩌다 나이 들어 결혼하다 보니 나보다 어린 동생들한테서 우리 애들 옷이니, 아니 어떻게 내 옷까지 받아 입게 되냐.... 근데, 뭐, 우리 마가렛은 그 날도 화창하고 좋은 날에 전화해서 그렇게 남의 복장을 뒤집어 놓는대? 부모가 돈이 없어서 아들이 힘들게 살면 어쩔 수 없지만, 부모는 방 4개짜리 예쁜 2층 집에 살고, 가구도 다 이태리 가구에, 뭐 거긴 우리 애들은 잘 앉지도 못하게 하니 그게 가군지 장식인지 모르겠지만, 또 일 년에 해외여행도 꼭 한 번씩은 다녀오고, 수시로 외식에 쇼핑에... 아무튼, 내가 보기엔 절대 돈 없는 부모 같지는 않아 보인다. 너는 어때? 너도 그렇게 생각되지?"


"아, 네... 뭐 그렇게 궁핍하신 것처럼은 안 들리네요."


"어떻게 부모가 아들이 나이가 마흔이 가깝도록 집도 없고, 이렇게 힘들게 사는 거 보면 좀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들까? 어떻게 전화해서 우리 보고 인생을 즐기면서 쇼핑도 하고 외식도 하고 살라고 할 수 있냐고! 우리 수저 나이프 포크 이런 거 다 그냥 여기저기서 사서 거 뭐냐, 어 세트, 세트가 아니거든. 근데 다 각각으로 테이블에 올라온 걸 보고서는 뭐라는 줄 아냐? 세트로 좀 맞춰서 사면 좋을 것 같단다... 아니 그러면 조용히 한 세트 사다 주던가!" 


"그래도, 여기 사고가 그렇잖아요. 전에 호주 수상이었던 존 하워드 (John Howard)의 딸도 부모한테 도움 전혀 받지 않고 자신이 바닥부터 일구어 성공하고 싶다고 했던 거 아시죠? 여긴, 고등학교까지 시켜주고 키워주면 거의 알아서들 독립하잖아요. 저희 신랑도 중학교 때부터 신문 배달하며 용돈은 스스로 벌어썼다고 하더라구요. 저희 시부모님들도 별반 다르지 않는데요?"


"너 지금 가재가 게 편을 들어야지, 고래 편을 드는 거야?"


"하하, 그런 건 아니고요, 그냥 언니 시어머니 같은 분들이 호주에선 드문 경우가 아닌 거 같아서요. 저도 전에 저희 신랑 가족들이 모두 모여 식사를 한 적이 있는데, 아버님이 두 분 드신 값만 내셔서 얼마나 당황스러웠던지, 그리고 사실은 좀 서운하기도 해서 괜찮다고 하고 제가 다 내겠다고 했더니, 아주 역정을 내시더라구요. 그러지 말라고, 다들 힘든데 한 사람이 부담하면 불공평하다면서요... 아주, 한국선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경험이었죠. 가까운 듯 아닌 듯 정말 멀게 느껴졌죠, 저희 시부모님이요. 그러니, 언니도 그러려니 하고 마음 푸세요."


"도대체 전화는 왜 하냐고! 왜 가만히 있는 내 복장은, 왜 긁어가지고... 우리 이언이 갑자기 너무 불쌍해진다. 잘 사는 부모가 있어도, 머리가 그렇게 똑똑해도, 애만 셋 딸린 마누라는 돈도 못 벌고, 혼자 얼마나 힘이 들겠어......"


"...... 근데, 언닌 어떻게 시어머니 존함을 그렇게 자연스레 부르실 수 있으세요? 저는 도저히 못 하겠던데요."


"그래? 울 남편도 자기 엄마를 마가렛이라고 해, 그리고 첨에 나도 뭐라고 부를까요 하니까 편한 대로 하라대. 근데, 생각해 보니까 우리 남편의 엄마지 내 엄마가 아니잖아? 그러니 뭐, 맘(Mum)이라고 하기도 뭐하고... 그렇다고 마더(Mother)는 더 이상하대. 그래서 그냥 마가렛이라고 하는데 한국어 할 때는 시어머니 했다, 마가렛 했다 섞게 되네...."



호주 사람들은 아주 독립적이다. 호주에 사는 중국계 갑부들은 보통 부를 대물림 하는 경우가 많고, 나이가 들어서도 부모와 같이 사는 경우도 많고, 대학이나 결혼도 다 부모가 시켜주고 결혼 비용도 대주는 경우가 많지만, 뼛속까지 호주적 사고를 하는 대부분의 호주인들은 아이들은 성인이 되면 모든 것을 자신이 해결하고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물론, 호주에도 부모가 자식들에게 적당한 도움을 주는 경우들도 있는데, 이는 대학 등록금을 대 준다던가, 첫 자동차를 사 준다던가, 첫 집의 보증금을 몇 퍼센트 정도 해 주는 게 그런 것이다. 하지만, 내가 들었던 경우들에는 그렇지 못한 케이스들이 훨씬 더 많았다. 자식들도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자립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준비한다. 물론, 중학생 정도가 되면 벌써 집안의 설거지, 요리, 빨래와 같은 가사분담도 나눠서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중고등학생이면 주말이나 방학엔 패스트푸드점 같은 곳에서 일하며 스스로의 용돈을 벌어 쓰는 경우도 많다. 


이런 경우에 장담점이 각각 있는데, 장점은 아무리 힘들어도 서로에게 기대지 않고 스스로 해결하려고 최대한 노력한다는 것, 단점은 그러다 보니 종종 (한국인의 눈에) 흡사 친한 '남'과 비슷한 모양새를 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는 것이다. 실제 본인들이 느끼는 거야 알 수 없지만 종종 얘기를 듣다 보면 부모 자식이 맞는가 하는 의문이 불쑥불쑥 쏫아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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