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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리아코알라 Jan 25. 2016

나는 정말 어디서 온 이방인일까

| 가끔은 호주인, 때때로 한국인

호주의 캔버라에 사는 한인 교민들은 보통 시드니에 아주 자주 간다. 


돼지국밥이 먹고 싶을 땐 시드니에 가서 먹고 오고, 어떨 땐 포장도 해서 오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머리 하러 매번 시드니에 가기도 한다. 한약을 지으러, 혹은 전문의를 보러 가기도 한다. 


시드니는 정말 필요한 것이 다 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안 가면 또 안 가는 대로 살아지기도 하는 곳이다.  


그런 시드니에 남편과 나는 1년에  한두 번 갈까 말까 하는, 그야말로 가까운 듯 친근한  듯하면서도 실은 별로 안 친한 곳이었다. 


하지만, 그날은 빠질 수 없었던, 남편의 시드니 어릴 때 절친들의 모임이 있었다. 


그곳에 참석하기 위해 3시간 동안 끝없이 시원~하게 직선으로 뻗은 도로를 운전해 갔다. 


정말이지 시드니 가는 길은 참 잘 만들어져 있다는 생각을 갈 때마다 했다. 정말 무슨 미국 서부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거의 운전대를 돌릴 필요도 없이 그냥 직선으로 쭈욱 계속 가기만 하면 되었으니 말이다. 물론, 시드니에 도착하는 순간, 여기가 호주인지 서울인지 분간이 어려워지고, 차를 돌려 다시 돌아가고픈 마음이 생기기도 했지만.



그날의 긴긴 일정을 마치고 오랜만에 온 시드니를 바로 떠나기가 섭섭해서 우리는 그곳에서 하루를 묵고 돌아가기로 했다. 


우리는 시드니의 하버브리지가 내려다 보이는 호텔에서 1박을 하고, 다음날은 시드니의 ‘더 락스 (The Rocks)’에서 아주 유명한 팬케이크 레스토랑에서 브런치를 했다. 


초콜릿이 입혀진 것, 소시지와 햄이 나오는 것, 아이스크림과 함께 나오는 것, 계란과 베리와 바나나 등이 올려진 것… 참으로 종류도 많은 정말 팬케이크 전문 식당이었다. 


나는 팬케이크로 그렇게 배가 터지도록 먹을 수 있다는 걸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팬케이크로 배를 가득 채우는 것도 모자라 메쓱거리기까지 하는 속을 진정시키며 나오는데, 나를 본 웨이터가 묻는다. 


“어디서 왔어요?(Where are you from?)” 

“캔버라에서 왔어요. (I’m from Canberra.)”


아무렇지 않게 대답을 하고 계산을 마치고 나가는데, 불현듯... 아까 웨이터가 물었던 건 그게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 나는 얼굴이 까무 짭짭하고 키도 짝딸막한 동양인 관광객이었는데, 그래서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고 물은 거였는데 나는 ‘캔버라’라고 대답했던 거였다.


그 웨이터는 동양의 한 관광객에게 아름다운 호주에 대해 여러 가지 얘기를 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심심하기로 유명한 캔버라에서 왔다고 하자 뭐라 덧붙이려던 말도 잃고,  대신할 적절한 말을 적시에 못 찾아서였는지 더 이상 추가 질문이 없었던 거였다. 


호주에 10여 년 간을 살면서 수 없이 어디서 왔냐는 말을 들었지만 늘 난 ‘한국에서 왔어요. (I’m from South  Korea.)’라고 했지, 단 한 번도 사는 지방을 말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오늘 처음으로 내가 사는 지방을 말한 거였다. 


별 거 아니었지만 나에게는 큰 의미가 있는 날이었다. 내 정체성이 조금은 바뀌고 있다는 뜻이었기 때문이었다. 늘 한국인이었던 내가 호주에서 십 년을 살면서 드디어 자연스레 조금은 호주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구나 싶기도 했다.



옛날엔 금세 간단히 답할 수 있었던 ‘어디서 왔어요?’라는 말이 요즘은 점점 대답하기 곤란해져 간다. 


특히 한국에 와서 사는 요즘 누가 물으면 나의 답은 더욱 복잡해진다. 


나는 부산에서 태어나서 세계 각국을 2년여간 여행하다가 뉴질랜드에서 1년, 호주에서 10년 살고, 서울에서 몇 년 살다, 세종에도 잠깐 살다가 지금은 인천에 살고 있다. 


이런 내게 ‘어디서 오셨어요?’라고 물으면 참 복잡해진다. 


처음 호주에서 갓 돌아왔을 때 누가 ‘호주에서 오셨어요?’라면 그나마 간단했지만 이젠 정말 대답하기가 복잡해졌다. 


이는 나뿐만이 아니라 호주에 십 년, 이십 년 이상 산 한국인들은 다 겪는 정체성의 문제라고 생각이 된다. 


이들 중엔 반드시 자신이 더 한국인이라거나, 더 호주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가끔 만나는 이민 1세대들 중엔 자신의 아이들은 완전한 호주인이므로 한국에 대해 잘 몰라도 된다고 하는 이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그들의 아이들은 호주에서 태어나 쭉 호주에서 살 것이므로 굳이 한국어를 배우지 않아도, 한국 문화를 몰라도 상관없다고 하기도 한다. 괜히 머리만 더 복잡하게 한다면서. 


이런 사람들을 만나면 참 많이 속이 상한다. 자신의 뿌리마저 하찮게 여기는 것 같아서 그렇다. 


이민 1.5세대 혹은 2세대부터는 정체성의 혼란이 있기는 하겠지만, 그들은 그래도 비교적 그 나라 자국민으로 힘들지는 않게들 산다. 


반면 대부분의 이민 1세대들은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으로 호주라는 틀에 맞추어 살게 된다. 즉, 어찌 보면 한국인도 아니고, 호주인도 아닌 ‘호주에 이민 온 한국인’으로 거의 평생을 살게 되는 것이다. 


나는 내가 호주인일까 한국인일까 고민해 본 적은 없다. 하지만, 호주인과 같은 대접을 받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은 많다. 과연 내가 한국인이라고 생각하면서 호주인과 같은 대접을 받는 것이 맞는 것인지 가끔 생각한다. 내가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포기하지 못하는 한, 나는 일정 부분 같은 대접은 받지 못할 것이라는 것도 받아들여야겠지. 


다른 한국인들은 ‘어디서 왔어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뭐라고 답할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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