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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리아코알라 Jan 25. 2016

동물의 왕국

호주 편

호주에 이민 온 그해 어느 날, 새벽에 일어나 물 마시러 부엌에 가다 나는 기절초풍할 뻔했던 적이 있었다.


벽돌로 된 부엌의 한쪽 벽에 커도 커도 그보다 더 클 수는 없을 것 같은 거미가 그 많은 눈으로 나를 정면으로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거짓말 하나도 안 보태고 다리까지 합치면 남자 주먹보다 더 커 보였다. 그 긴~ 다리에 징그럽게 난 털까지 그 새벽에 혼자 보고 있자니 으스스해졌다. 무슨 다큐멘터리나 곤충 세밀화에서나 볼 수 있는 걸 내 눈 앞에서 그렇게 직접 보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 거대한 걸  때려죽이지도 못하고, 손으로 잡아 놔 주지는 더더욱 못하겠고 기겁을 하며 신랑을 불렀지만, 신랑도 어쩔 줄 몰라하다 동그란 원통을 찾아 겨우 겨우 밖으로 보내줬다. 그래도 신랑이 호주인이었으니 살려줬지, 한국인이었다면 아마도 바~로 신발 한 짝을 찾지 않았을까? 흐흐


호주에는 치명적인 독이 있는 작은 ‘붉은 등 거미’ (redback spider)가 위험하다고 해서 늘 그것만 조심하고 있었다. 그런데, ‘세상에나 이렇게 큰 거미도 진짜! 있기는 있구나, 게다가 나와 같은 공간에서 기거하고 있었구나’ 생각하니 갑자기 앞으로 호주에서 살아갈 날이 암담하게 느껴졌다. 


그 거미의 '일가친척들'과는, 그날 밤 이후로도 두어 번 더 마주쳤다. 거의 늘 같은 장소에서, 비슷한 시간대에. 무엇이든 자꾸 보다 보면 정이 들기 마련인데, 이들은 보면 볼수록 정나미가 떨어지고, 무서움이 덜해지기는커녕 더욱 큰 공포에 휩싸여 매일을 보냈다. 


불안의 연속으로 산지 얼마지 않아 우리는 그 동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오래된 벽돌집이 아닌 새 아파트로 결국은 이사를 갔다. 물론, 거미가 출현할 가능성이 있는 구멍이 있는지를 집안 샅샅이 확인한 후에 말이다.


이사를 가고 그 이듬해 9월 말쯤 유모차를 끌고 산책을 가는데 아뿔싸, 이번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까치'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멋지게 가로수가 우거진 길을 '한가로이' 걷고 있는데, 어디선가 갑자기 무시무시하게 큰 까치가 날아와 나의 뒤통수를 공격하는 게 아닌가. 


한가로이고 뭐고 다 집어치고 걸음아 날 살려라 유모차를 밀어가며 정신 나간 듯이 뛰는데, 이 조류 '아낙네'는 포기도 하지 않고 한동안 따라오면서 계속 공격을 하는 거였다. 허긴, 나는 뛰었지만 까치는 날았으니 그건 뭐 그리 힘든 일은 아니긴 했을 것이다.


그곳에서 제법 떨어진 데까지 가서 한숨을 돌리고 서서 아까 그곳을 보고 있자니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당하고 있었다.


까치가 번식기가 되면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 보행자들을 공격한다는 말은 들었지만 실제로 이렇게 무서울 줄은 상상도 못했었다. 더군다나 내가 직접 공격을 받을 거라고는.... 


아까 내가 온 길을 자세히 보니 나무에 ‘Beware of Swooping Magpies’ (까치들이 급강하하여 머리 쪼는 거 조심)이 두 군데나 큼지막하게 붙어 있었다. 누가 까치를 길조라고 했나? 완전 깡패 중의 쌩깡패더만! 


후덜덜한 산책을 무사히 마치고 집이 50m쯤 앞에 바라보였을 때, 세상에나 이번에는 내가 엄청 무서워하는 개와 딱 마주쳤다. 아, 오늘 왜 이렇게 재수가 없나. 그것도 귀여운 작은 강아지가 아니라 엄청나게 큰 그레이하운드였다. 


넓은 사냥터 같은데서나 뛰어다닐 그레이하운드가 왜 그 사람 사는 동네를 누비고 다녔던지. 그것도 혼자! 


내가 그레이하운드와 경주를 해서는 상대도 안 될 게 뻔했기에, 아예 뛸 생각은 하지도 않고 최대한 침착하게, 하지만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려가며 그 옆을 지나가는데, 그 개는 고개를 귀족같이 뻣뻣이 들고 고귀한 표정으로 마치 나를 무시하듯 유유히 걸어 지나갔다. 


개가 다가올 때만 해도 온 몸의 오장육부가 떨리는 것 같더니, 지나가고 나니 사람 마음이 그렇게 간사할 수가 없었다. 기분이 나빠지는 거였다. ‘쳇, 지가 꼴에 사람을 무시하고 가냐? 어느 집에서 무슨 대접을 받으며 사는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너는 개고 나는 사람인데, 아 정말 기분 나쁘네.’


정말이지, 호주는 개 천국이다. 개들이 사람보다 더 좋은 대접을 받으며 사는 것 같으니까. 아니, 더 좋은 지는 몰라도 확실히 사람만큼은 대접받으며 산다.


한 번은 친구의 친구가 개를 데리고 와서, “Does 'it' have a name? ('그거' 이름이 뭐야?)라고 했더니 냉소하듯이 “Yes, SHE has a name. HER name is Chloe (응, '그녀'는 이름이 있어. '그녀'의 이름은 클로이 야).”라며, 내가 한 말을 바로 잡아주었다. 


한 친구는  십여 년간 함께 했던 개가 죽자 그 개를 화장하여 유골함에 담아서 부엌 벤치 위에 올려놓고 가끔 내려서 쓰다듬곤 했는데 조금은 소름이 끼쳤음을 부인하지 않을 수 없다.  


무섭지는 않았지만 정말 골칫거리 중의 하나는 개미였다. 개미들이 집안에 한 번 들어오기 시작하면 정말 한없이 들어왔다. 내가 후에 살았던 집에서도 한 번 심하게 그런 적이 있었다. 


어떤 중국인이 ‘개미가 많은 집은 복이 들어오려고 하는 거다’고 해서 처음엔 다 복이라 생각하며 견디니 좀 괜찮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무리 복덩이라 해도 개미와의 동거는 너무 불편해져만 갔다. 


도저히 견딜 수 없었기에 급기야는 개미 약도 몇 방울 뿌리고, 계핏가루도 뿌려보고, 마구잡이로 휴지로 잡아도 보고 했지만, 모두 일시적이었을 뿐 개미의 행진은 계속되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국에서 동생이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대표 소설 중 하나인 ‘개미’를 부쳐줬고, 그걸 읽은 후 내가 개미를 대하는 태도는 180도 변할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 나는... 도저히 개미를 죽일 수가 없게 된 것이었다. 


페로몬을 발산하여 소통한다는 개미들, 지하에 버섯을 재배하며 산다는 고도의 지능을 가진 정밀하고 구조적인 사회의 개미들을 차마 죽일 수가 없었다. 비록 소설을 통해서나마 개미 이야기를 조금 접했을 뿐이었지만 그땐 그들의 행렬이 그토록 의미 있고 아름다워 보일 수가 없었다. 


그 이후로  나는 개미의 허리가 바스러지는 소리가 나도록 그 작은 생명체를 뭉개는 일은 두 번 다시 할 수가 없었다. 다만 개미가 싫어한다는 계피의 잦은 사용과, 빵 부스러기라도 남기지 않으려 집안을 최대한 깨끗이 치울 뿐이었다. 


혹자는 일 년에 한 번 정도씩은 해충구제 (Pest Control)하는 회사에 연락하면 100불 정도에 다 퇴치할 수 있다고, 그럼 개미도 싹 다 없어질 거라고 했지만... '개미가 해충인가?'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마음 약한 나는 어느새 개미와의 공생을 강구하고 있었다. 


호주는 정말 동물 곤충 천국이었다. 그곳 사람들이 동물이나 곤충을 대하는 태도는 내가 한국에서 경험했던 대부분의 기억과 참 많이 달랐다. 동물과 곤충 등에 대한 일반인들의 지식도 꽤 풍부한 편이어서 대체로 어떤 것들이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지 아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 그들은 주로 벌레들을 놔주거나 방해하지 않는 방법을 선택했다. 나처럼 무섭다고 무조건 때려죽이거나 도망가거나 하는 사람들이 비교적 적었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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