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편
큰 아이와 같은 유치원에 다녔던 아이 중에 쿠퍼가 있었다. 쿠퍼의 엄마는 베트남계 호주인이었는데 바이올린 연주가이자 선생님이었다. 아빠는 건축회사 임원이었는데, 멜버른에서 초, 중, 고를 최고 사립학교로 나온 자부심이 매우 강한 엘리트였다.
사립이라곤 친구들이 다니는 걸 보던 게 다였던 우리 부부에게 쿠퍼의 부모는 어딘가 자연스럽게 어울리기는 힘들 것 같았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친했기에 가끔씩 식사를 함께 하곤 했다.
언젠가는 그 집 엄마가 우리를 무슨 만찬처럼 차려서 초대해 놓고는, 깜짝 바이올린 연주회까지 마련해 주었다. 어디선가 자신에게 레슨 받는 학생들이 나타나서는 모두 ‘캐논의 변주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 곡은 내가 고등학교 때 처음 듣고는 눈물을 흘렸던 곡이었다. 내가 그걸 제일 좋아한다는 그런 사소한 것도 놓치지 않고 기억했다 기쁘게 해 주는 멋진 사람이기도 했다, 그녀는.
그런 후한 대접을 받고서 나도 어떻게든 그들을 초대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내가 그 만찬의 스케일을 어떻게 따라잡을 수나 있을까 큰 부담이 되었다.
초대를 한 당일 아침부터 나는 분주했다. 혼자서 여러 종류의 갖가지 음식을 준비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요리의 달인이 아니었던 나는 그냥 내가 먹어보고 익숙한 음식들로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먼저 잡채를 10명은 먹을 만큼 하고, 불고기도 하고, 양념통닭도 오븐에 구웠으며, 베트남식과 한국식을 섞은 ‘버머첼리 미역 요리’도 하고, 그날 오후에는 시드니에서 배달되어 온 떡도 픽업해 둔 터였다.
거의 6시가 됨과 동시에 현관 벨이 울렸다. 그들은 고급 와인 한 병을 사들고 왔다. 우리 집에 그 와인에 걸맞은 와인잔이 있을지가 궁금할 정도로 고급 와인이었다.
부엌의 긴 벤치에 나는 5~6가지 요리를 뷔페처럼 차렸고, 차 종류도 가지가지로 다 꺼내 두었으며, 혹시 떡을 먹지 않을 경우에 대비해 급하게 작은 치즈케이크까지 구워둔 터였다. 맛은 훌륭하지 않더라도 많이들 먹어주기만을 바라면서.
원래 소식을 하는 부인도 맛있다며 두 번씩 갖다 먹었지만, 그녀의 남편은 한 접시를 먹고는 웬일인지 배가 부르다며 와인만 계속 마시는 거였다.
이 많은 음식을 어찌할 것인가?! 보통 한국에선 바리바리 싸 주기도 하는데, 설령 입맛에 안 맞아 안 먹고 있는 것이라면? 걱정이 되었다. 정말로 배가 부르도록 먹기는 한 것일까? 맛이 없었을까?
이런저런 걱정을 하며, 손님이 배부르도록 먹기를 바라는 한국인이 으레 권하듯이 나도 쿠퍼의 아빠에게 "많이 먹었어요? 좀 더 먹지 그래요?"라고 권했다. 그러자 마치 영국 귀족을 보는 듯한 격식을 차리며 ‘충분히 많이 먹었습니다. 매우 맛있었습니다.’ (I've had enough. It was very good.)라고 했다.
그의 말이 그냥 하는 말로 들렸기 때문인지, 나의 깊은 한국 뿌리가 꿈틀거려서 인지는 모르지만 얼마 후 나는 그에게 다시 묻고 말았다.
"조금만 더 드시지요? 음식도 많은데…"
그의 얼굴이 잠시 경직되는가 싶더니 "아니오, 많이 먹었습니다."(Oh no, I've had plenty, really.)
내가 보기엔 정말 쬐끔 먹던데 많이 먹었다네? 무슨 남자가 그렇게 쥐꼬리만큼 먹냐? 자기 집에서는 훨씬 더 많이 먹더만. 음식이 맛이 없나? 아님 입맛에 안 맞나? 설마 체면 차리는 건 아니겠지?
여러 가지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했던 나는 나도 모르게 더 이상 하지 말았어야 할 말을 뱉고 말았다.
“그러지 말고 조금만 더 드세요.”
이번엔 그의 얼굴이 경직되었다 풀릴 새도 없이 찌그러지면서 “내가 배부르다고 하지 않았나요? 많이 먹었다고요. 정말로! 배 부르다고요.”(Didn't I say I had enough? I've had enough. Really! I'm FULL.) 하면서 정말 언짢게 대답을 했다.
본인도 스스로에게 당황했는지 다시 얼굴 표정과 태도를 다듬으며 "정말 배가 부릅니다. 더 이상은 먹고 싶지 않습니다." (Really, I am full. I do not want to eat any more.)라고 하는 게 아닌가?
순간 나는 너무 당황이 되었다. 한국의 삼세번 물어보는 관습이 이렇게 당황스러운 결과를 초래할 줄은 몰랐던 거다.
호주인들은 지극히 자기감정에 솔직하다.
그들은 한국인들처럼 체면 차려 아닌 걸 이다라고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아니, 그런 경우는 없다고 봐도 좋을 정도다.
상대가 의견을 물어봐서 처음에 '솔직히' 답했는데, 똑같은 걸 두 번, 세 번 계속 묻는 것이 당연히 그렇게 즐거운 경험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까지 나는 한참이 걸렸던 것 같다. 솔직히 대답했음에도 불구하고 두 번 세 번 다시 묻는다는 것은 상대를 애초에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말과도 상통하니까.
반대 경우로 상대가 뭔가를 산다거나 한다고 할 때, 확인차 물어볼 때도 그들은 딱 한 번만 물어봤다. 한국에서 내가 밥값을 내겠다거나 뭔가를 사 주겠다고 했을 때 으레 사람들은 "정말요?..." "안 그러셔도 되는데..."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그래요, 그럼, 잘 먹겠습니다. 다음번엔 제가 사지요."와 비슷한 대화가 종종 오고 갔다. 하지만 호주에서는, 허긴 내가 뭔가를 이유 없이 누군가를 위해 살 일도 거의 없기는 했지만, 혹시 작은 뭐라도 내가 산다거나 하면 아예 단호히 거절하거나 아니면 "Are you sure?" 이 한 마디면 끝이었다. 그리곤 이어지는 "Thank you."
처음엔 형식적으로라도 두 번 이상 안 물어주는 호주인들이 조금은 정이 가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의 방식이 더 합리적이고 상대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만 그런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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