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살이 된 나는 이제 호주에 산다. 오랜 시간 호주를 그토록 그리워했지만 이제는 참 많이 한국이 그립다. 미트파이, 소시지 롤, 비니거 칩스가 실컷 먹고 싶었지만 이제는 순대, 떡볶이, 떡, 만두, 짜장면, 감자탕... 아 셀 수 없이 많은 게 그립다. 많은 혼혈이나 이민 2세대들이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지만 나는 정체성 자체가 없는 듯 느껴진다. 어린 시절 내가 한국에서 그토록 호주인이라고 했을 때 엄마는 내가 호주인인 동시에 한국인이기도 하다고 했고, 드디어 그걸 받아들여 나는 한국인이다고 했을 때는 아무도 나를 한국인으로 봐주지 않았다. 지금 나는 호주에 살고 있지만 여전히 완전한 토박이 호주인처럼 생각할 수도, 그렇게 받아들여지지도 않는 한국계 호주인일 따름이다. 물론, 무엇이 호주인을 정의하는 가는 또 다른 문제이겠지만 아무튼 나는 여전히 조금은 어정쩡하게 두 문화에 걸쳐진 상태로 살아간다.
우리 엄마는 한국인이다. 엄마는 한국에선 참으로 한국인답지 않고 오히려 서양인에 가까운 마인드로 살았다는데 호주인 아빠를 만나고 어쩌다 호주에서 십 년이나 살게 되었다. 엄마는 뜻밖에도 호주에서 행복하지 않았고 한국을 많이 그리워했다. 다행히 아빠가 한국에 직장을 구할 수 있게 되어서 한국에 잠시 들어와 살게 되었다. 물론 나는 1년만 살아보는 걸로 알고 들어왔지만 그게 8년이나 지속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엄마는 한국 생활에 만족했고, 아빠는 호주를 많이 그리워했지만 현실적으로 한국에서의 삶이 더 편하다는 걸 인정하며 한국의 삶에 적응해 나갔다. 나는 첫 5년 정도는 호주를 무척이나 그리워했지만 서서히 한국의 문화에 적응해가는 내 모습을 어느 순간 마주하게 되었다. 내 동생은 반대로 한국의 문화와 언어에 참 빨리도 적응해서 늘 너무나 한국인처럼 사고하고 행동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동생은 거꾸로 호주를 많이도 그리워했다. 넓게 펼쳐진 땅, 깨끗한 공기와 하늘, 물질적이지 않은 사람들, 스포츠를 맘껏 할 수 있는 환경.
한국은 나에게 퍽 흥미로운 곳이다. 나에게 새로운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 곳이고, 나에게 "우리"의 개념을 뼈저리게 가르쳐준 곳이다. 나의 한국 생활 8년 중 가장 힘들었던 해를 꼽으라면 단연 내가 4학년이었던, 한국에 왔던 바로 그해를 꼽을 것이다. 너무도 혼란스럽고 힘들었던, 호주가 지독스럽게 그리웠던 해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