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는 인종차별이 심하다', '미국에서 인종차별 당하면 이렇게 받아쳐라', '흑인이 백인한테 당하고 동양인에게 푼다'... 뭐 이런 얘기 한 번쯤은 다들 들어봤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는 인종차별이 은연중 심하다'는 말은 별로 못 들어봤을 것이다.
요즘 코로나 확진자 발생 문자가 종종 온다. 이 문자에서 중요한 건 어느 동에 몇 명의 새로운 확진자가 생겼냐는 거지 그게 여성인지 남성인지는 그리고 정확한 나이는 불필요하지 않을까. 만약 'OO구 OO동 남성/52세'라고 오면 우리는 그 동네에 사는 그 나이대의 남성들을 좀 더 피하거나 조심하려고 할 것이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한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도 '외국인 1명'이라고 알릴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런 알림에서조차 성별, 나이, 국적 여부가 필요한 걸까.
몇 년 전에 한국 영자신문 기자분이 쓰신 블로그 글을 읽는데, 외국인들을 '코쟁이'라고 썼다. 영어로 기사를 쓰는 게 직업인 분이 말이다. 코가 커서 그런 특징으로 부르는데 뭐 어떻냐고? 미국인이 우리나라 사람들을 '납작코' 아님 '검정머리'라고 하면 기분이 어떨까?
인터넷 기사를 읽다 보면 요즘은 거의 일반화된 것 같은 단어를 하나 자주 접하는데, 바로 '파란 눈', '푸른 눈'이다. 파란 눈을 '파란 눈'이라고 하는데 어떠냐고? 상대방의 외모로 누군가를 규정한다는 건 참으로 유아적인 행동이다. 너무나 많은 언론사들이 이런 표현을 아무렇지도 않게 쓰는 것에 나는 좀 충격을 받는다. 우리가 외국에 장기 체류하거나 그곳에 이민 가서 살 고민을 하고 있을 때 '검은 눈'이라고 언급되기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누가 그런 표현을 썼다면 인종 비하, 차별적 발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아무도 자신의 신체적 특징으로 자신이 규정되는 걸 원하지 않는다. 나는 그냥 나로 받아들여지기를 원한다. 그리고, 솔직히 '파란 눈'을 가진 외국인은 생각만큼 많지도 않다.
언젠가 유튜브에서 진짜 유명한 어떤 한국인 영어 강사분이 흑인을 언급하며 '흑형'이라고 공공연히 쓰셨다. (물론, 나중에 몰랐다며 사과하긴 하셨지만) 그건 우리 보고 '갈색형', '갈색 누나' 뭐 이러는 거랑 똑같지 않은가. 더 친근하게 느껴져서 듣기 좋을까? 똑같은 말도 신기하게 '흑형'보다는 '백형'이 조금 더 듣기는 거부감이 없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교대 앞 촛불 하나 이름 모를 백형'으로 불리는 한 '지구인'은 요즘은 좀 유명해져서 조금만 검색해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 '백형' 얘기는 잠시 후에 좀 더 해보자.
자 이제 본격적으로, '외국인'은 어떤가? '외국인'이란 말 우리 모두 다 엄청 많이 쓴다. 그런데, 우리가 누군가를 '외국인'이라고 부를 때 정확히 무슨 뜻으로 얘기하는 걸까? 거기엔 어떤 뜻이 잠재되어 있을까? 그렇지, '당신은 우리와 달라(좋든 나쁘든)', 혹은 '당신은 우리의 테두리에는 들어올 수 없는 선 밖의 사람'이라는 의미가 깔려있다. 우리는 외국인을 영어로 아무렇지 않게 'foreigner'이라고 한다. 그런데 'foreign'은 외국인을 쓸 때만 쓰는 말이 아니다. '이물질' 같은 말을 할 때 쓰는, 외부에서 온 물질 ('a foreign object', 'foreign matter')을 뜻하기도 한다. 그래서 실제로 외국인들끼리는 'foreigner'이란 말을 거의 안 쓴다. 자신의 조국을 떠나서 다른 나라에 장기 체류하는 사람을 일컫는 'expatriate', 줄여서 'expat'(엑스팻)이라고 한다. 앞으로 내가 '외국'인 이라고 할 때 나는 진정으로 무엇을 뜻하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보면 좋겠다.
하루는 미국에 자주 가시는 어떤 한국분이 나에게 엄청 씩씩거리면서 미국에서는 한국인을 얼마나 개무시하는지 아냐고 하시면서, 외국인 등록을 'alien registration'이라고 한다면서 막 분개하셨다. 우리는 'alien'이라는 단어를 보면 '외계인'이라는 뜻이 제일 먼저 떠오르고... 음... 사실 그 뜻 밖에 안 떠오른다. 우리는 foreigner이란 말이 alien이란 말보다 더 좋다고 생각하겠지만, 영어에서 foreigner이란 단어가 가장 흔히 쓰일 때는 조금은 무례하고 기분 나쁜 말을 할 때다. 한마디로 어감이 좋지 않다는 거다. 반면, alien은 다른 나라 출신이지만 자기 나라에 살거나 거주하는 사람이란 뜻으로 '법적 용어'로 오랫동안 쓰여왔다. 그래도 여전히 어감은 좋지 않은 건 맞다. 그래서인지 얼마 전에 법무부에서 제1기 '사회통합 이민자 멘토단'이 구성되어서 한국 외국인들의 신분증 명칭을 바꿔달라고 요청했는데... 진짜! 바로 바꿨다고 한다. 이제는 '외국인 등록증'에서 '영주증'으로 바뀌고, 영어도 'Alien Registration Card'에서 'Permanent Residence Card'로 바뀌었단다. 이런 걸 보면 한국의 차별은 알지 못해서 생기는 '악의 없는 차별'같다고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부산 사투리로 유명했던 로버트 할리 씨. 그는 1978년 20살에 처음으로 한국에 왔고, 1997년에 최초로 귀화한 외국인이 되었다. 귀화할 때 '하일'이라는 한국 이름도 가지게 되었지만 (왜 귀화를 하면 꼭 한국 이름을 만들어야 하는지도 사실 좀 궁금하다. 좀 근시대적인 생각아닌가?) 사람들은 아직도 그를 한국어 잘하는 '외국인'으로 생각한다. 방송에서 일관되게 유지하는 그분의 컨셉은 영어를 잘 못하는 건데 사실 가끔 영어 하시는 걸 들어보면 영어를 한국어보다 훨씬 더 잘하시는 거 같다. 그런데 방송에서 극도로 그런 모습을 안 보여주려고 하는 걸 보면 '한국어 잘하는 푸른 눈의 외국인'이 되고 싶지 않은 것 같다. 외국에서 태어났지만 지금은 한국에 사는 '한국인'이 되고 싶으신 거다. 그리고 뇌섹남으로 유명한 타일러 라쉬(Tyler Rasch). 그는 한국사람보다도 더 한국어에 능통하고 한국을 잘 아는 사람이다. 사람들이 타일러가 한국에 와줘서 너무 고맙다고, 한국을 떠나지 말아 달라고 하는 말들을 자주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웬만한 멘탈을 가진 사람이 아니고서는 다~~ 한국을 결국에는 떠날 거다. 한국을 엄청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마저도 결국에는 '외국인', '이방인' 취급을 받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틀을 깨려고 부단히 얼마간 노력을 하겠지. 그러다 지친다. 그리곤, 새로운 기회가 오면 떠난다. 이 땅에 얼마나 오래 살았고, 한국어를 얼마나 잘하고, 한국 문학과 정치를 얼마나 잘 이해하고의 문제가 절대 아니다. 우리 '단일민족'의 엄청난 자부심이 철저하게 외부인을 가려내고, 배척하려고 하기에 그렇다.
우리가 '외국인'을 바라보는 시각과 언어를 바꾸지 않으면 많은 귀한 사람들이 한국을 결국에는 떠날 거라는 건 너무나 자명하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어떤 한국인들은 이렇게 말한다. 외국인들 중 특히 백인들은 한국에서 온갖 특혜를 다 받고 있다고. 물론, 외국인이라 특별대우를 받는 것도 사실이지만, 외국인이기 때문에 존재하는 아주 낮은 유리천장도 있다. 그건 깨기도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 시도를 하다간 프로그램에서 잘리거나, 직장에서 쫓겨나거나, 사람들의 외면을 받거나 할 것이다. 그리고 중요한 건 생각보다 많은 외국인들이 특별대우를 '원하지 않는다'는 거다. 그냥 자신의 있는 그대로를 인정받고 싶어 한다. 앞에서 잠시 언급했던 안코드(a.k.a '교대 앞 백형')도 그게 두려워서 한국을 떠났다고 했다. 그냥 한국어 잘하는 외국인으로 유명해지고 싶지 않았다고, 자신이 정말 자신으로 인정되는 걸 원했다고. '우리'나라의 '우리'말에 '외국인'이 존재하는 한, '그냥- 안코드'는 불가능할 것이다.
호주에는 인종차별이 존재할까? 너무 당연히 존재한다. 그리고 다른 어떤 사회에도 인종차별은 어느 정도씩은 다 존재한다. 다만, 그 사회 안에 공공연한 문제를 인정하고 바꿔가려는 노력과, 그 안의 문제를 인식조차 하지 못하는 것 사이에는 크나큰 간극이 존재한다. 이제 인식하고 인정하는 거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내가 이런 글을 쓰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