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어디에도 집이 없어

by 코리아코알라

이틀 전 처음 만난, 이제 마흔 중 후반이 된 수지.

9살에 호주 시드니로 이민을 갔다. 홍콩에서.


지금까지 호주에 최소 30년은 족히 넘게 살았는데 그녀의 영어에는 강한 중국 액센트가 남아있다.

토박이 호주인이 아니라 얼마 전 중국에서 이민 간 영어를 잘하는 이민자 같다. 그녀는 호주에 이민 갔을 때 사람들에게 놀림을 당했다. 그러니 호주인 친구들보다는 중국인 친구들과 더 많이 어울렸을 것이다. 많은 중국인들이 그러한 것처럼.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언어를 독학으로 지독하게 열심히 공부했다고 했다. 테이프를 들으며 공부하고 또 하고 또 하고. 한자는 정치 경제부분만 빼고는 이해할 정도는 된다고 하니 대단하다. 광둥어를 모국어로 쓰는 한 친구의 말에 따르면 그녀의 광둥어는 액센트가 없이 아주 자연스럽다고 한다.


그녀는 오랫동안 자신의 모국에 돌아가 살기를 바랬고, 20대의 어느 날 결국 그곳에 돌아가 직업을 구하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홍콩인들은 그녀를 그들과는 다르다 생각했고, 결국 그녀는 그들의 일부가 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그렇다고 돌아온 호주에서 그녀가 완전한 호주인도 아니었다.


지금 그녀는 스웨덴에서 스웨덴 말을 배우며, 영어를 쓰는 가이드로 일하며 2년째 살고 있는데 그곳에선 아직 인종차별이라던가 하는 건 느낄 수 없다고 했다. '인종'차별이라고 말하기에는, 그녀가 사는 동네에는 그녀와 같은 '인간'이 너무 흔치 않아서 인'종'이 되기에 역부족이어서일 것이다. 그녀가 사는 부촌에는 그녀와 외모만 중국인인 그녀의 호주인 파트너가 다이기 때문이다. 너무 흔치 않아서 모두들 그 둘을 처음 보는데 뭐 다들 신기하게 쳐다보겠지. 뭘 처음 보는 사람을 차별이고 뭐고 할 수 있을까.


그런 그녀가 내게 그랬다.

부모님은 예전에 이혼하셨고, 엄마는 돌아가셨고, 아빠와는 사이가 별로 좋지 않으며, 형제들은 시드니에 흩어져 살고 있고, 홍콩에서 그녀는 자국민이 아니며, 지금 사는 스웨덴도 계약이 끝나면 떠나야 하고... 그런 그녀는 집이 어딘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다 그녀는 자신의 파트너인 제임스가 있는 곳이 어디건 그곳이 집이겠지라고 했다.


참 오랜만에 나와 비슷한 생각을 나눠 준 사람이어서 깊은 유대감을 느꼈다.


한국의 어떤 지방에 가면 호주인 남편과 함께 서 있는 나를 보면서 사람들은 가끔 "어디서 오셨어요?"라고 물었다. 나는 고향이 부산이고, 호주에서 십 년을 살다가 한국에 왔고, 서울에서 몇 년 살다, 세종에서 잠깐 살고 지금은 인천에서 살고 있다. 그러면 나는 어디서 온 것일까? 그래서 나는 종종 그 질문을 바꿔야 한다. "어디에 사냐구요?", "오늘 어디서 왔냐구요?" 하지만 종종 그분들이 원했던 답은 우리가 어느 나라에서 왔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아 네, 살기는 호주에서 십 년 살았고, 이 사람은 호주 사람이긴 한데 저희는 인천에 살아요." 한다. 그러면 그분들은 "아~ 호주에서 왔구나"하신다. 내 설명이 무색하게도.


요즘 "Where are you from?"에 간단하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이 많을까?


잠시 답을 생각해 보시죠.

"어디서 오셨어요?"^^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차라리 보지 말았으면 좋았을 "당근마켓 후기"